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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숙 Jul 05. 2022

안아줘

-목이

2015년. 스물셋의 나는 스무 명의 친구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취업학원이 되어버린 대학사회에 작은 반기를 들고 '대안대학'이라는 프로그램에 지원한 용감한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우리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고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달려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성주의 하늘목장에서 함께했다. 

그 시절은 내게 맑고 청량한 밤으로 남아 있다. 목장의 밤은 계절 상관없이 언제나 깨끗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했다. 청량함이 마치 생맥주가 약수처럼 달게 느껴지는 날의 술맛 같았다. 맥주가 약수처럼 달게 느껴지는 날이면 끝없이 맥주를 들어켜고 끝에 이르러서는 기분 좋은 취기에 불룩한 배를 덤으로 데려와야만 하는데 다행히 바람은 아무리 들이마셔도 배가 불룩해지지 않는다. 매일 밤 청량함을 맘껏 들이마셨다. 

바람을 마시며 고개를 젖히면 별들이 반짝거렸다. 별이 하도 많아서 우리는 경우의 수를 따지듯 이별 저별을 다 이어보며 별자리를 발견하고 아이처럼 즐거워 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아마 그때의 우리는 별자리 발견이 아닌 별자리 창작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발견이었든 창작이었든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반짝이는 별이 흩뿌려진 광경을 매일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과제가 없는 날이면 (특히 글쓰기 과제가 없는 날이면) 너나할것없이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와 이불, 담요를 챙겨들고 불빛 하나 없는 얕은 뒷동산을 올랐다. 우리는 익숙하게 명당에 자리를 깔고 누워 도란도란 고민을 나누기도 했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오래도록 별멍을 때리기도 했다. 아주 운이 좋은 날이면 같은 자리에서 두 번씩이나 별똥별을 보기도 했다. 누군가가 “어? 별똥별!”을 외치면 그것을 놓친 사람은 뒤늦게서야 하늘 이쪽저쪽을 훑었고, 지나가는 비행기 불빛을 가리키며 "저것은 별똥별이 아니냐"고 묻고야 마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춘천, 서울, 대전, 대구,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우리는 청빈한 수도원의 수도사들처럼 매일 노동을 하고 밥을 지었고, 사색을 하고 대화를 하고 글을 썼고, 걷고 뛰었고, 울고 웃었다. 

  

대안대학이 시작된 지 2주 정도 지났을 무렵의 3월 어느 밤, 나는 목이와 거실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웠다. 목이와 나는 모두가 잠든 후에야 숙소에 귀가를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늦도록 같이 별을 보았을까? 아니면 밤산책을 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세미나실에 남아 나는 일기를 쓰고 목이는 커피 테이블 정리를 했을까?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목이 옆에 나란히 누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을 멀뚱멀뚱 응시했던 순간 뿐이다. 

우리 숙소 침실은 4인 1실로 두 방이 마주보는 구조였다. 목이와 나는 각 방의 2층 침대 사용자였는데 사다리 오르는 소리가 룸메이트들의 숙면을 방해할 것이라 생각했고 조용히 창고 방에서 여분의 이불을 꺼냈다. ㅡ렇게 거실에 자리를 펴고 나란히 눕게 되었다. 사람의 눈은 서서히 어둠에 적응한다고 하던데 어떤 불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은 시간이 지나도 어둠일 뿐이었다. 뵈는 게 없어서 그랬을까? 나는 입을 열었고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번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본 적 없는 그날에 대해 말이다. 

“그날 교회에서 소풍 가는 날이었어.”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취한 것처럼, 누군가 내 입을 조종하는 것처럼 한번 시작된 말이 멎을 줄 모르고 줄줄이 이어졌다. 무엇에 취했던 것일까. 밤? 적막함? 아니면 목이?      

처음으로 엄마를 잃은 날의 풍경을 이야기했다.  


"그날 교회에서 소풍 가는 날이었어. 아침부터 신이 난 채로 화장을 했고 새 옷을 꺼내 입었어. 아주 많이 들떠있었어. 예배를 드리고 소풍 장소로 이동을 하는 일정이었는데 멋부리느라 예배에 늦었어. 오빠는 예배 시간 맞춰서 교회에 갔지만 난 방과 거실을 몇번이나 왔다갔다하며 거울 앞에 섰는지 몰라. 여기저기 벗어놓은 옷가지들로 집으 난장판이었지만 상관없었어. 아랑곳도 안 했지. 

그날은 평소 일요일 아침과 딱 두 가지가 달랐어. 사랑에 빠진 것처럼 신이 나 있는 나 그리고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찾아온 막내이모. 

준비를 마치고 교회에 가려하는데 이모가 가지 말라고 했어. 조금 기다려 보라고 했어. 어딘가 초조해 보이기도 하고 신경이 곤두선 것 같기도 한 얼굴을 하고선 자꾸만 기다려 보라고 하는 거야.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붙잡는데 그 말이 들릴 리가 있나. 늦었다고 조금은 짜증을 부리며 방을 나서려고 하는데 이모가 빽 소리를 질렀어. “좀 기다려 보라니까!” 

처음이었어. 이모가 나한테 소리 지른 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집이 싸해졌어. 당황한 채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빨간색 집 전화기가 울렸고 이모가 전화를 받았어. 이모는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고, 아무말 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어. 그리고 엉엉 울면서 말했어. “엄마... 돌아가셨대....” 그것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얼굴이 구겨지며 엉엉 우는 이모 얼굴.

그 길로 집을 나섰어. 잰걸음으로 집앞 4분 거리에 위치한 교회를 향했어. 오빠에게 알려야 했으니까. 오빠를 데려와야 했으니까. 고등부실 뒷문을 벌컥 열었고 오빠를 찾는데 어른들이 심상찮은 얼굴로 둘 셋 몰려오는거야. 그땐 몰랐어. 시간이 지나고 복기해보니 엄마의 죽음은 우리에게만 갑작스러웠던 것 같아.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내가 엄마의 죽음을 알리러 왔다는 걸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거야. 

예배드리던 오빠가 나왔고 나는 말했어. “엄마 돌아가셨대.” 나는 울지도 않고, 그렇다고 씩씩한 것도 아닌 채로 말했어. 죽음에 대해서도, 당장 몇 시간 후 내가 마주할 상황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오빠 엄마가 빨리 집에 들어 오래!"라는 말을 전하는 것처럼 엄마의 죽음을 말했어. “하... 시발...” 예배를 드리다 나온 오빠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욕을 내뱉었고.

집에 돌아온 우리는 옷을 갈아입었어. 검정색깔 옷을 입으라는데 옷장을 뒤적이면서 무슨 생각한 줄 알아?? ‘뭐 입지? 뭘 입어야 하지? 이게 낫나? 저게 낫나?’ 참 철없지? 

이모 차를 타고 장례식장에 갔어. 이모가 전화를 받고 우리가 장례식장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이미 빈소가 마련되어 있었어. 나중에서야 알았어. 이모는 무거운 임무를 맡은 채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온 거야. 언니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어린 조카들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리고 장례식장에 데려오는 무거운 임무...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아주 하얗고 밝은 방으로 데려가졌어.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방이었는데 거기서 아주 오래간만에 엄마를 다시 만났어. 창백한 엄마, 미소를 머금고 잠이 든 엄마, '엄마 우리 왔어'라고 말하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엄마였어. 엄마 머리맡에서 우리는 엉엉 울었어. 죽음이 뭔지, 엄마가 죽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는 엄마를 둘러싸고 엉엉 애처럼 울었어. 아연이는 정말 서럽게 엉엉 울었고, 경은이는 겁에 질린 것처럼 울었어. 누군가 사인을 준 것처럼 우리는 울고 또 울었어. 

그랬어. 그날, 그런 모양이었어.      


마치 오랫동안 이야기를 준비해 온 사람처럼 나는 낮은 목소리로 쉼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영화 속 시간여행을 하는 주인공처럼 그때 그 순간으로 다녀온 것 같았다. 목이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말이다. 오른편에 누워 있던 목이가 안아주지 않았더라면 그 채로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취한 듯 몽롱한 채로 말이다. 그 채로 잠에 들어 아침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 놓았는지도, 그리고 목이와 나란히 누운 그밤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미동 하나 없던 목이, 진즉 잠이 든 것처럼 미동도, 작은 숨소리 조차 없던 목이가 나를 끌어 안았다. 옆으로 돌아 누워 꼭 끌어 안아줬다.  

누군가에게 안겨본 게 언제였을까? 너무 까마득해서 포옹의 감각을 잊고 지낸 나는 목이의 포옹에 얼어 붙었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오른쪽으로 돌아 누워 목이를 끌어 안았다. 그리고 그 채로 목이 품에 꼭 끌어 안긴 채 잠이 들었다. 순식간이었다. 목이의 품을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스르르도 아니고 자장자장도 아닌 '레드썬'의 속도로 순식간에 잠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부스스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목이 품에 안긴 채였고 목이는 깨어 있었다. 

'왜 날 안아주지? 내가 안쓰러운가?' 누군가를 안아준 적 없는 나는 목이의 마음을 알 수 없었고,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이 생겼다. 하지만 질문은 내버려두고 다시 아주 편안한 잠에 들었다. 아주 아주 잘 잤다. 


엄마였을까? 처음으로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을 꺼내본 그곳에서 엄마는 목이의 품을 빌려 밤새도록 날 안아 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아주 간절하고 절박하게 어떤 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때로는 구걸해서라도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어 하는 불쌍한 나를 알게 되었고, ‘안아줘’라는 생경한 말을 가슴 깊은 곳에 꽁꽁 숨기며 살아가게 되었다. 

‘안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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