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그날 밤, 우리는 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멈춰 섰다.
바닷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가로등 아래 번지는 별빛이 공기를 한층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그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오랜 시간 바다를 등지고 있던 사람의 눈빛은, 이 순간만큼은 나를 곧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었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동안 건너온 계절과, 지켜낸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게 내게 놓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들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마침내 내가 조심스레 한 문장을 꺼냈다.
"그날,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났어?"
별빛이 그의 눈동자에 스며들었고, 그 빛 속에서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났어?"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긴 시간 묻어둔 파문이 일렁였다.
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가로등 빛이 그의 어깨 위에서 흔들렸고, 바람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마치 그 순간을 조금 더 미루고 싶은 사람처럼, 그는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
"말하면… 넌 기다렸을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그게 더 잔인하다고 생각했어."
나는 숨을 삼켰다. 기다림을 막으려 떠났다는 말은, 기다림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걸 그는 몰랐을까.
"네가 결정해 버린 거잖아. 나에겐 묻지도 않고."
내 말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은은한 불빛 속에서 마주한 그의 눈동자는, 미안함과 단호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때 난… 나 자신도 지킬 수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너를 지킬 수 있었겠어."
그의 말은 조용히 떨어졌지만, 내 안에서는 큰 울림이 되었다. 나는 그 말이 변명인지, 고백인지 알 수 없었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어왔다. 차갑지만, 이제는 견딜 만했다.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별빛이 우리 사이를 가르고, 바닷바람이 그 틈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동안 궁금했던 또 다른 질문을 꺼냈다.
"그럼, 돌아온 이유는…?"
그는 미소 아닌 미소를 지었다.
"네가 아직 이 자리에 있을 것 같아서."
그 말은 단순했다. 하지만 오래도록 내 마음을 잠식해 온 그리움의 무게와 정확히 맞닿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옆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바다는 여전히 파도를 밀어내고 있었고, 별빛은 우리 둘을 함께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대화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의 첫 문장이, 지금 별빛 아래에서 쓰이고 있다는 것을.
#별의 눈 #별빛아래 #첫 대화 #마음 쓰기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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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Comma.
Pause. Breathe. Write.
남쪽 끝 바다마을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단어로 하루를 건너고,
바람으로 마음을 적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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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쉼표.
Pause. Breathe. Write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