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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끝에 남은 빛」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걸을 수 있다

by 쉼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밤은 가장 어두운 밤이다.

베트남 땀끼 해변에서

우리는 그날 밤 별을 보았다.

땀끼해변-JS작-문대표 친구분과 함께 한 오후 하늘20251018_220938466_03.jpg

땀끼 해변가 식당.
한국에서 온 두 대표님의 얼굴이 어둡다.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낡은 나무 테이블 아래 작고 좁은 플라스틱 의자가 놓인 식탁. 리(Ly)가 오토바이를 타고 오면서 사 가지고 온 베트남 과일 '밋'이 한쪽에 놓여 있었다. 달콤함이 입안을 간지럽혔다.


저 멀리 야자수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두 대표님은 오늘도 회사 이야기, 자금 이야기, 걱정 이야기로 저녁을 물들이고 있었다.


"내년엔 더 힘들어질 것 같다."
"직원들 월급은 어떻게 주나..."
"투자 회수는 언제쯤..."


익숙한 걱정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짊어진 무게.


나는 그저 듣고 있었다. 3년 전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 온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모든 게 불안했고, 매일이 걱정이었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현지인 친구 리가 그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한국 대표님들과는 정반대의 온도.


"Chị ơi, cuộc sống mà!" (언니, 인생이 원래 그런 거예요!)


리의 말에 친구들이 박장대소한다. 그들에겐 내일 걱정보다 지금 이 순간의 맥주가, 함께 웃는 이 시간이 더 중요해 보였다.


"쉼표 님, 여기 사람들은 참 여유롭네요."


대표님이 부러운 듯 말을 건넸다.


"네, 처음엔 답답했는데... 이제는 배우고 있어요. '지금'을 사는 법을요."


베트남은 현재 우기에 접어드는 시기다. 오전에 내린 비는 오후가 되어서야 조금 그쳤고, 해변가의 파도는 바람에 실려 웅장하게 다가왔다가 옆 테이블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테이블 위에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새우와 바다게, 그리고 베트남 맥주 타이거가 놓여 있었고, 친구들의 대화는 무르익어 갔다. 시간은 파도 소리에 묻혀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 Ludovico Einaudi - Nuvole Bianche
(YouTube 링크: https://youtu.be/kcihcYEOeic)


식사를 마치고 두 대표님은 해변을 걸었다.


하늘이 불타고 있었다.


야자수 잎 사이로 쏟아지는 노을이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와... 진짜 아름답네요."


평소 스마트폰만 보던 대표님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얼굴에서 걱정이 사라졌다.


"회사 운영하면서, 이렇게 하늘 본 게 언제였지..."


친구 대표님이 웃으며 말했다.


두 대표님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어둠이 짙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자연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실적도, 매출도, 성과도 묻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을, 이 빛을, 이 평화를 선물할 뿐이었다.


어둠이 깊어지자, 우리는 서둘러 돌아왔다.


사방이 컴컴했다.
가로등도 별로 없는 해변 길.


"앞이 안 보이네요."


누군가 말했을 때, 대표님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를 가리켰다.

"

저기 보세요. 저 끝에."


땀끼해변-문대표작-한국에서 온 친구와함께 한 저녁시간_20251018_220938466_03.jpg

지평선 끝자락.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을의 불빛일까, 아니면 저 멀리 등대일까.


작았다. 정말 작은 빛이었다.


하지만 그 빛이 있어서, 우리는 방향을 잃지 않았다.
그 빛이 있어서, 우리는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쉼표 님, 오늘... 많이 위로됐어요."


대표님이 조용히 말했다.


"사실 이번에 베트남 온 거, 도망치듯 온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그냥 멀리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여기 와서 봤어요. 걱정하고 불안해하던 게 너무 작게 느껴지더라고요. 저 하늘 앞에서는."


친구 대표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리가 너무 가까이만 보고 살았나 봐요. 발등의 불만 끄느라..."


리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

대표님들, 베트남 속담 있어요. 'Ngày mai trời sáng.' 내일은 해가 뜬다는 뜻이에요. 아무리 어두운 밤도, 새벽은 꼭 와요."


그 말이 가슴에 꽂혔다.


리가 밝은 미소로 제안했다.


"아, 그리고 대표님들! 월요일이 베트남 여성의 날이에요. 다른 곳 여행 가지 마시고, 이 동네에서 현지 축제 구경하실래요? 멋진 풍경은 멀리 있지 않아요. 작은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행복을 보여드릴게요."


리의 따뜻한 제안에 두 대표님의 표정이 밝아졌다.


"월요일 저녁에는 제가 정말 멋진 곳도 소개해 드릴게요. 하하하!"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파도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어둠은 더 짙게 깔렸지만 우리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표님이 말했다.


"쉼표 님, 고마워요. 덕분에 잊고 있던 걸 떠올렸어요."


"희망이요. 그냥... 계속 가면 된다는 거요."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 속을 달리는 차.
하지만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가 길을 비추고 있었다.


몇 미터 앞만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앞의 몇 미터만 보이면, 우리는 계속 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닿아 있으니까.


다음 날 아침, 대표님께 카톡이 왔다.


"어제 사진 다시 보고 있어요.
저 하늘 끝의 빛 같은 사람이 되고 싶네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힘들어도 견디겠습니다.
저 빛이 꺼지지 않았듯이.
쉼표 님이 말해준 대로, 한 걸음씩 가보겠습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대표님,
대표님은 이미 누군가의 빛입니다.
직원들에게, 가족에게, 동료들에게.


지금은 어두운 밤길 같아도,
대표님이 계속 걸어가는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저 사람도 가는데 나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이 됩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하늘 끝의 저 빛처럼,
작아도, 희미해도,
계속 빛나 주세요."


오늘도 나는 새벽 3시 33분에 일어난다.


친구들은 농담처럼 말한다.
"베트남 맥주 333만큼 익숙한 시간이네!"


창밖은 아직 어둡다.
하지만 나는 안다.


조금만 기다리면 하늘이 밝아온다는 것을.
아무리 긴 밤도 끝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새벽을 견디는 사람에게,
세상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준다는 것을.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노을처럼,
어둠 끝에 남은 희망의 빛처럼.


당신도 지금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나요?

괜찮습니다.


계속 걸으세요.
하늘 끝의 빛을 바라보며.


분명, 새벽은 옵니다.
당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Ngày mai trời sáng." - 내일은 해가 뜬다.

베트남 땀끼 해변에서,
희망을 다시 배운 밤

- 새벽 3시 33분, 작가 쉼표


#베트남 #희망 #위로에세이 #땀끼해변 #새벽 333


쉼표,
Comma.

Pause. Breathe. Write.

남쪽 끝 바다마을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단어로 하루를 건너고,
바람으로 마음을 적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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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쉼표.
Pause. Breathe. Writ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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