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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끝에 남은 한 문장》

"불 꺼진 방에서 쓴 한 줄"

by 쉼표


프롤로그

하루가 끝나면, 나는 한 줄을 쓴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남기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늘의 나를 증명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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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을수록 문장은 길어진다.

단어 하나마다 하루의 잔상이 묻어나고,

쉼표 하나에도 숨겨진 마음이 머문다.

나는 오늘도 잠들기 전, 책상 앞에 앉았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모니터의 희미한 빛이 내 얼굴을 비춘다.

'오늘은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을까.'

그 질문이 하루의 끝에 내게로 온다.

대답은 언제나 느리고,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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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견딜 수 있었던 감정들이

밤이 되면 형태를 바꾼다.

괜찮다고 눌러 두었던 생각이

불빛 아래에서 슬그머니 깨어난다.

그래서일까.

나는 밤마다 조금씩 울음의 모양을 닮아간다.

누군가의 말 한 줄,

스스로에게 던진 문장 한 조각이

내 안에서 천천히 녹아내린다.

그렇게 한 줄을 쓴다.

"나는 오늘도 나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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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문장을 바라본다.

짧지만 진심이 닿은 문장.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나를 버티게 하는 문장.

그건 기록이라기보다, 내 안의 증언이다.

문장을 남긴다는 건

결국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일이다.

누구도 읽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도,

그 문장은 나를 다시 세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렇게까지 솔직하게 써도 괜찮을까?"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문장은 솔직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나에게 닿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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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끝에서 나는 나에게 편지를 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울었으니, 내일은 조금 웃을 수 있겠지.'

그런 문장들이 나를 건너 다닌다.

가끔은 글을 쓰다 멈춘다.

단어가 너무 많으면 마음이 흐릿해지고,

단어가 너무 적으면 마음이 닿지 않는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나는 늘 머문다.

멈춰서 숨을 고르고, 다시 천천히 쓴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한때는 가까웠지만 이제는 이름조차 낯선 사람.

그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이

밤마다 내 곁을 서성인다.

"그땐 미안했어요."

"당신의 말 한 줄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어요."

시간이 흘러도 어떤 문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문장은 내 안에서 낡지도, 잊히지도 않는다.

그냥 조용히 머물러 있다.

밤이 오면, 가장 먼저 찾아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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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밤마다 글을 쓴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무엇을 남기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오늘의 마음을 무덤덤하게 적어두는 일.

그게 나의 방식이다.

하루의 끝은 언제나 조용하다.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고,

시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그 속에서 나는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꺼내고, 다시 덮는다.

그 모든 과정을 마치 의식처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다.

그 틈으로 따뜻한 바람이 스며든다.

그건 아마도 나 자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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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오늘도 마지막 문장을 쓴다.

짧지만 진심이 닿은 한 줄.

"나는 오늘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 한 문장을 남기고 불을 끈다.

어둠 속에서 글씨가 아직도 빛나고 있다.

그건 단어가 아니라, 내 하루의 온기였다.

이제 나는 안다.

밤이 끝나도 문장은 남는다는 걸.

그리고 그 문장이 내일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걸.

나는 오늘도, 내일도, 문장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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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당신의 밤에는 어떤 문장이 남아 있습니까?

어쩌면, 그 문장이 누군가의 새벽을 열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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