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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별의 탄생』

by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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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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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생명은 때로 기적으로 온다.

예고 없이, 두려움과 함께, 그리고 희망을 품고.

1997년 여름, 두 줄로 시작된 이야기.

1998년 봄, 작은 울음소리로 완성된 기적.

은서.

우리의 별.

하늘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

하늘이 보낸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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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97년 여름.

다영은 화장실에서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있었다.

두 줄.

"... 임신?"

손이 떨렸다. 다시 봤다. 여전히 두 줄.

거울을 봤다. 스물여섯 살.

결혼 1년 반.

윤서를 돌보느라 정신없이 지낸 1년 반.

아침마다 윤서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그 사이사이 집안일을 하고, 병원에 가고.

밤에는 윤서의 다리를 주무르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세를 바꿔주고.

그리고... 아기.

"어떡하지..."

다영은 주저앉았다. 기쁜 것인지, 두려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기. 윤서와 다영의 아기.

눈물이 났다.

병원.

의사가 초음파를 보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임신 6주입니다."

다영은 화면을 봤다.

작은 점. 까만 화면 속의 하얀 점 하나.

그게 아기라니.

"윤서..." 다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아기야."

휠체어에 앉은 윤서도 화면을 보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 정말요? 정말 우리 아기예요?"

"네." 의사가 웃었다. "보이시죠? 여기."

의사가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다영의 미소가 굳었다.

"... 네?"

"남편 분이 하반신 마비이시고, 원인이 희귀 신경질환이시죠?"

"네."

"유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얼마 나요?"

"정확한 확률은 알 수 없습니다. 희귀 질환이라..."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20~30% 정도로 추정됩니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부인."

"네."

"출산 후 양육이 매우 힘들 것입니다."

의사가 자료를 보며 말했다.

"남편 분 간병하시면서 신생아까지 돌보시려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될 겁니다."

"..."

"주변에 도움을 받으실 수 있나요? 친정? 시댁?"

다영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의사가 한숨을 쉬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도 힘드신데, 아기까지..."

"괜찮아요."

다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할 수 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 다영은 윤서의 휠체어를 잡고 서 있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윤서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집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윤서를 씻기고, 침대에 눕혔다.

그제야 윤서가 말했다.

"다영."

"응."

긴 침묵.

"... 아기 낳지 말까?"

다영이 윤서를 봤다.

"뭐라고?"

"미안해." 윤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근데... 유전될 수도 있어. 20에서 30프로래. 나처럼... 아기도 아플 수 있어."

"..."

"그리고 당신... 너무 힘들 거야."

윤서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나 돌보는 것도 벅찬데, 아기까지... 당신 몸이 견딜 수 있을까.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자잖아."

"윤서 씨."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근데..." 윤서의 목소리가 잠겼다. "난... 난 아빠 자격이 없어. 안아주지도 못하고, 놀아주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데..."

"그만해."

다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만해요, 윤서 씨."

"하지만..."

"당신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다영이 윤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 아기야. 우리 둘의 아기라고."

다영이 울기 시작했다.

"유전될 수도 있어. 맞아. 의사가 그랬어. 20에서 30프로. 근데 윤서 씨..."

다영이 윤서의 손을 잡았다.

"70에서 80프로는 건강하다는 얘기잖아. 안 될 수도 있잖아. 그리고..."

다영의 목소리가 잠겼다.

"설령 유전되더라도. 설령 우리 아기도 아프더라도."

다영이 윤서의 눈을 똑바로 봤다.

"우리가 키울 거야. 당신처럼 사랑스러운 아기를."

"다영..."

"나 할 수 있어. 힘들어도, 잠을 못 자도, 허리가 아파도."

다영이 미소 지었다.

"당신 돌보고, 아기도 키우고. 할 수 있어. 왜냐면..."

다영이 윤서의 뺨에 손을 얹었다.

"사랑하니까. 당신도, 우리 아기도."

윤서가 울었다. 소리 내어 울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할 것 없어." 다영도 울었다. "우리 아기야. 하늘이 준 선물이야."

다영이 속삭였다.

"우리 별이야. 하늘에서 온 별."

그날 밤.

윤서가 다영의 배에 손을 얹었다.

떨리는 손. 힘없는 손.

"... 별?"

"응. 이름 은서로 지을 건데, 별이라고 부를래."

"왜 별?"

다영이 윤서를 봤다.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얼굴로.

"당신은 하늘을 못 보잖아."

"..."

"휠체어 타면, 고개를 뒤로 젖힐 수가 없잖아. 별을 볼 수가 없잖아."

다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서 하늘이 당신한테 별을 보낸 거야. 우리 아기."

다영이 윤서의 손을 꼭 잡았다.

"당신의 별. 우리의 별. 은서."

윤서가 울었다.

"고마워요, 다영."

"내가 더 고마워."

다영이 윤서의 이마에 키스했다.

"우리 셋이서 잘 살자. 응?"

1997년 가을부터 1998년 봄까지.

다영의 배가 점점 불러왔다.

아침마다 윤서를 씻기는 일은 더 힘들어졌다.

허리를 굽히기가 힘들었다.

무거운 것을 들 수 없었다.

하지만 다영은 웃었다.

배 속에서 아기가 움직일 때마다, 윤서의 손을 배에 갖다 댔다.

"느껴져요? 별이가 움직여요."

윤서는 손을 배에 대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 느껴져요. 우리 별이."

병원 검진 때마다, 두 사람은 초음파를 봤다.

점점 커지는 아기.

손가락이 생기고, 발가락이 생기고.

"건강합니다." 의사가 말할 때마다, 다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998년 3월 21일.

진통이 시작됐다.

"으윽..."

새벽 2시. 다영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영?" 윤서가 깼다. "괜찮아요?"

"아니... 배가..."

"병원 가야 해요!"

"아직... 괜찮아..."

"안 돼요! 지금 가야 해요!"

윤서가 휠체어로 전화기로 갔다.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눌렀다.

"여보세요! 제 아내가... 진통이... 네, 네! 주소는..."

구급차가 왔다.

다영을 들것에 실었다. 윤서도 함께 탔다.

"으... 아..."

"괜찮아, 다영. 곧 도착해."

윤서는 다영의 손을 잡았다. 그게 전부였다.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병원 도착.

간호사들이 다영을 분만실로 옮겼다.

"남편 분은 여기서 기다리세요."

"아니요! 같이 들어가야..."

"죄송합니다. 보호자는 안 돼요."

문이 닫혔다.

윤서는 복도에 혼자 남았다.

휠체어에 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

"으아아아아!"

분만실에서 다영의 비명이 들렸다.

윤서는 주먹을 쥐었다. 손이 떨렸다. 온몸이 떨렸다.

'제발... 제발 무사히...'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다영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휠체어에 앉아.

복도에.

혼자.

"으... 으윽..."

다영의 신음이 들렸다.

윤서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울었다.

'미안해... 다영... 미안해...'

1시간.

2시간.

3시간.

"으아아아!"

"힘내세요! 조금만 더!"

간호사의 목소리.

그리고.

"으아아 앙!"

아기 울음소리.

윤서의 심장이 멎었다.

"... 별?"

시간이 멈췄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간호사가 웃었다. "건강한 딸입니다."

"... 딸이요?"

"네. 3.2kg. 아주 건강해요."

윤서가 울었다. 소리 내어 울었다.

"아... 아내는요?"

"산모도 건강합니다. 출혈도 적었고요. 조금 있으면 만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윤서는 휠체어에 앉아 울고 또 울었다.

30분 후.

윤서는 병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다영이 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 젖은 머리카락.

그리고 품에... 작은 아기.

"윤서..."

다영이 지친 목소리로 웃었다.

"우리 별이야. 은서."

윤서가 가까이 갔다.

아기를 봤다.

작은 얼굴. 꼭 다문 입. 작은 손. 작은 발.

온 세상이 이 작은 생명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 별."

윤서가 속삭였다.

아기가 눈을 떴다.

그리고 윤서를 봤다.

맑은 눈.

그 순간, 윤서는 깨달았다.

자신이 왜 살아있는지.

자신이 왜 사고를 당했는지.

자신이 왜 2년 반을 병원에서 보냈는지.

자신이 왜 다영을 만났는지.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있는지.

이 아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별아."

윤서가 아기에게 속삭였다. 눈물을 흘리며.

"아빠가... 아빠가 많이 미안해."

윤서의 목소리가 잠겼다.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고, 높이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놀아주지도 못할 거야. 다른 아빠들처럼..."

다영이 윤서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우리 은서는 알 거야."

다영이 미소 지었다.

"아빠가 얼마나 별이를 사랑하는지."

다영이 아기를 조심스럽게 윤서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앗, 위험해요!"

"괜찮아. 내가 잡고 있을게."

윤서의 무릎 위에 아기가 있었다.

윤서의 떨리는 손이 아기를 감쌌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적.

"별아..." 윤서가 속삭였다. "아빠야. 사랑해."

아기가 작게 소리를 냈다. 마치 대답하는 것처럼.

다영은 그 모습을 보며 울었다.

윤서와 은서.

남편과 딸.

자신의 온 세상.

그날 밤, 다영은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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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월 21일

은서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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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탄생-Image 2025년 11월 4일 오후 04_29_07.png

새벽 5시 23분.

3.2kg.

52cm.

건강하다.

의사가 말했다.

"유전 검사 결과, 이상 없습니다.

완벽하게 건강한 아기입니다."

기적이다.

70에서 80프로의 확률.

우리 은서는 그 확률 안에 들어왔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선물.

윤서가 은서를 안았다.

떨리는 손으로.

힘없는 팔로.

"별아, 아빠야."

그 말을 하는 윤서의 얼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눈물과 미소가 섞인 얼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

우리는 이제 세 명이다.

다영.

윤서.

은서.

별의 고향이 되어주자.

이 아이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이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셋이 함께라면.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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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ʚ � ɞ˚‧。⋆

생명은 기적으로 온다.

예고 없이, 두려움과 함께,

그리고 무한한 희망을 품고.

별이 될 수 없는 사람에게

하늘이 보낸 별 하나.

그것이 은서였다.

⋆。‧˚ʚ � ɞ˚‧。⋆

ⓒ 쉼표

모든 이야기는 당신의 마음에 쉼표 하나를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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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5장을 쓰면서,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당신은 하늘을 못 보잖아. 휠체어 타면."

이 한 문장을 쓰는 데 한참이 걸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어떻게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윤서는 말합니다.

"아기 낳지 말까?"

자신이 짐이 될까 봐.

아기가 자신처럼 아플까 봐.

다영이 더 힘들까 봐.

하지만 다영은 답합니다.

"할 수 있어. 사랑하니까."

20~30%의 유전 확률.

그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은서(별)는 이 소설에서 희망의 상징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

힘든 삶 속에서도 피어나는 웃음처럼,

은서는 이 가족에게 살아갈 이유가 됩니다.

"별의 고향이 되어주자."

다영의 일기 마지막 문장을 쓰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고향이 필요하다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 필요하다고.

윤서와 다영이 은서에게 그런 고향이 되어주듯,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 주 6장에서는 은서의 첫 돌, 첫 발걸음, 첫 말.

세 사람의 행복했던 시간들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그 행복 뒤에는...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월요일이 별빛처럼 반짝이기를.

-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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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이야기]

� 4장. 결혼 - "혼인신고의 떨림과 사랑"

→ : 4장으로 이동 https://brunch.co.kr/@39d166365bd047c/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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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6장. 은서의 시간

"별이 웃는 날"

"엄마... 엄마..."

은서의 첫 말.

한 살이 된 은서의 첫 발걸음.

휠체어 아빠를 향해 걸어가는 작은 다리.

"아빠! 아빠!"

윤서가 운다.

다영도 운다.

은서가 웃는다.

세 사람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

하지만 그 행복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어느 날, 윤서가 말한다.

"다영... 숨이 잘 안 쉬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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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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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정원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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