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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결혼』

혼인신고의 떨림과 사랑

by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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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결혼

혼인신고의 떨림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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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결혼이란 무엇일까.

화려한 드레스도, 축하하는 사람들도 없이

구청 등록소에서 떨리는 손으로 쓴 이름 석 자.

그것만으로도 사랑은 증명될 수 있을까.

1996년 봄, 두 사람은 알게 된다.

사랑은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이

때로는 얼마나 무겁고 아픈 것인지도.

연재소설 -결혼- Image 2025년 11월 2일 오후 01_16_0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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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96년 봄. 구청 등록소. 윤서와 다영은 혼인신고서를 썼다. 윤서의 손이 떨렸다. 글씨가 삐뚤빼뚤해졌다.

"미안해요. 제가 글씨를…"

"예쁜데요?" 다영이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글씨예요."

윤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떨리는 손으로, 이 불완전한 몸으로, 다영을 평생 옆에 묶어두는 것이 맞는 걸까. 그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다.

결혼식은 하지 않았다. 돈도 없었고, 축하해 줄 사람도 없었다. 다영의 엄마는 오지 않았다. 친구들도 연락을 끊었다. 윤서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짐이 되는 게 싫어서, 연락 안 한 지 오래예요." 윤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족에게도, 이제 다영에게도, 짐이 될 것이라는 걸.

대신, 병원 간호사 두 명이 증인이 되어주었다.

"축하해요, 윤서 씨. 다영 씨." 박 간호사가 말했다. "2년 반 동안 윤서 씨 봤는데, 이렇게 웃는 건 처음이에요."

웃고 있었을까. 윤서는 자신이 웃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다만 다영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꼭 잡고 있었다.

혼인신고를 마치고 두 사람은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뭐 해요?" 윤서가 물었다.

"결혼식." 다영이 미소 지었다. "우리만의."

다영은 손가방에서 작은 꽃다발을 꺼냈다. 편의점에서 산 3천 원짜리.

"이게 내 부케야."

윤서는 눈물을 흘렸다.

다영은 이렇게 작은 것으로도 행복해한다. 3천 원짜리 꽃다발로. 병원 옥상에서의 결혼식으로. 불완전한 남자와의 결혼으로.

"다영…" 윤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당신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요."

"윤서." 다영은 진지하게 말했다. "나 평생 당신 옆에 있을게. 아프면 간호하고, 힘들면 안아주고, 외로우면 곁에 있어줄게."

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저도… 평생 당신을 사랑할게요." 윤서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이 사랑뿐이에요."

"그거면 충분해." 다영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거면 충분해, 윤서 씨."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키스했다. 옥상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만의 결혼식.

바람이 불었다. 3천 원짜리 꽃다발의 꽃잎 하나가 떨어져 허공을 떠돌았다.


그날 저녁

다영은 병원 근처에 작은 원룸을 얻었다.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0만 원. 엄마에게 빌린 돈과 다영이 모은 돈이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윤서는 휠체어를 타고 방을 둘러봤다.

"응. 우리 집." 다영이 짐을 풀었다. "좁지?"

"아니야." 윤서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너무 좋아요. 너무… 과분해요."

과분하다는 말. 다영은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윤서는 늘 그랬다. 모든 것을 과분하다고 여겼다.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듯이.

첫날밤

다영은 윤서를 침대에 눕혔다.

"제가 무거웠죠?" 윤서가 작게 물었다.

"아니. 가벼워."

거짓말이었다. 힘들었다. 하지만 다영은 웃었다. 그리고 윤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다영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윤서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다영…"

"응?"

"당신… 후회하지 않아요?" 윤서는 천장을 보며 물었다. "오늘 혼인신고하면서, 한 번이라도 '내가 왜 이러나' 생각 안 했어요?"

다영은 윤서 옆에 누웠다.

"했어."

"… 역시." 윤서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근데 바로 답 나왔어."

"뭔데요?"

"사랑하니까." 다영이 윤서의 손을 잡았다. "윤서 씨, 나 후회 안 해. 앞으로도 안 할 거야."

"하지만…" 윤서가 말했다. "저는… 평생 이 모습일 거예요. 걷지도 못하고, 당신을 안아줄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래도 괜찮아." 다영이 말했다. "그래도, 나는 윤서 씨가 좋아."

하지만 그날 밤, 윤서가 잠든 후, 다영은 화장실에서 울었다.

무서웠다. 정말 잘할 수 있을까. 30년, 40년을.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윤서의 몸이 점점 나빠지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것. 언젠가는 윤서를 잃게 될 거라는 것.

거울을 봤다. 스물다섯 살.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여자.

"할 수 있어." 다영은 자신에게 말했다. "사랑하니까, 할 수 있어."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할 수 있어야만 해."


다음 날 아침

다영은 6시에 일어나 윤서를 씻겼다. 서툴렀다. 윤서가 아파했다.

"미안, 미안해."

"괜찮아요." 윤서가 참으며 말했다. "제가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요."

"무슨 소리야." 다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서툴러서 그래. 조금만 기다려줘."

"다영 씨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에요." 윤서는 천장을 보며 말했다. "제가… 이런 몸이라서…"

"그런 말 하지 마." 다영이 손을 멈췄다. "윤서 씨, 그런 말 하지 마요. 제발."

점심에는 죽을 쑤었다. 윤서 혼자 먹기 힘들어해서, 다영이 떠먹였다.

"제가 할게요." 윤서가 말했다.

"아니야. 내가 해줄게."

"하지만…"

"윤서 씨." 다영이 윤서의 눈을 바라봤다.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이것도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저녁에는 윤서를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나갔다. 동네 한 바퀴. 석양이 지고 있었다.

"다영, 힘들면 돌아가요."

"안 힘들어." 다영은 정말로 웃고 있었다. "좋아. 윤서 씨랑 이렇게 걷는 거."

하지만 윤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걷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영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있을 뿐이라는 걸.

"다영…" 윤서가 작게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로."

"뭐가?" 다영이 웃으며 물었다.

"모든 게요." 윤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을 만난 것도, 사랑받는 것도, 이렇게 함께 걷는 것도. 모든 게… 기적 같아요."

다영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윤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한테도 기적이에요." 다영이 속삭였다. "윤서 씨를 만난 게."

일주일이 지났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잘 지내니?"

"응, 엄마."

"윤서 씨는?"

"잘 지내."

긴 침묵이 흘렀다.

"다영아."

"응."

"… 엄마가 미안하다."

다영의 눈에서 눈물이 났다.

"엄마는 네가 고생할까 봐 걱정했어. 근데 너 목소리 들으니까… 행복해 보인다."

"…응." 다영의 목소리가 잠겼다. "행복해. 힘들지만, 행복해."

"그럼 됐다."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반대한 건, 네가 불행할까 봐였어. 근데 행복하면 됐어."

"엄마…"

"힘들면 언제든 집에 와. 알았지?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야."

"…응. 고마워, 엄마."

전화를 끊고, 다영은 윤서에게 말했다.

"엄마가 축하한대."

"정말요?" 윤서의 얼굴에 빛이 들어왔다.

"응."

윤서는 울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엄마가 당신을 미워하실까 봐…"

"미워할 리 없어." 다영이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다영도 울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안았다. 윤서의 팔에는 힘이 없었지만, 그 안김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따뜻했다.

그날 밤, 다영은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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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4월 13일

결혼 1주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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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

정말 힘들다.

아침마다 윤서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화장실에 데려가고,

옷을 갈아입히고.

허리가 아프다.

손목이 아프다.

근데.

행복하다.

윤서가 웃을 때,

내 손을 잡을 때,

"고마워"라고 말할 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이게 사랑인가 보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무서워진다.

윤서의 몸이 나빠지면 어떡하지.

내가 지켜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언젠가 윤서를 잃게 되면…

그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힌다.

그래서 더 사랑하기로 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매일, 전부를 주기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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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ʚ♡ɞ˚‧。⋆

사랑은 거창한 맹세가 아니라

매일 아침 일어나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힘들지만 행복한 것.

아프지만 웃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ʚ♡ɞ˚‧。⋆

ⓒ 쉼표

모든 이야기는 당신의 마음에 쉼표 하나를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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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4장을 쓰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글씨예요."

떨리는 손으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를 가장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1996년, 장애를 가진 사람의 결혼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절.

가족도, 친구도 축하해주지 않는 혼인신고.

하지만 두 사람에게 그것은 세상을 향한 용기 있는 선언이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화려한 결혼식 대신 병원 옥상에서 나눈 서약.

3천 원짜리 꽃다발.

보증금 500만 원 원룸 하나.

하지만 그 안에는 세상 어떤 결혼식보다 진실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 장을 쓰면서 저는 계속 물었습니다.

진짜 사랑이란 무엇일까.

힘들지만 행복한 것.

아프지만 웃을 수 있는 것.

두렵지만 매일 선택하는 것.

윤서의 떨리는 손으로 쓴 혼인신고서.

다영의 화장실에서 흘린 눈물.

두 사람이 서로를 안은 석양 무렵.

그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습니다.

다영의 일기 마지막 문장을 쓰면서,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래서 더 사랑하기로 했다.

매일, 전부를 주기로."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됩니다.

그 두려움 속에서도, 오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진짜 용기가 아닐까요.

다음 주 5장에서는 두 사람의 일상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아침을 여는 방법, 함께 웃는 순간들, 그리고 작은 행복들.

하지만 어느 날, 윤서의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월요일이, 사랑으로 가득하기를.

-ㅡby쉼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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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5장. 일상

"아침을 여는 방법"

매일 아침 6시, 다영은 윤서를 깨운다.

씻기고, 옷 입히고, 밥을 먹인다.

"힘들지 않아?" 사람들이 묻는다.

"힘들어. 근데 행복해." 다영이 대답한다.

결혼 1년 차, 두 사람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상.

그리고 어느 날, 윤서의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다...

"다영… 숨이 안 쉬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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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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