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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베트남에 가다』

숨 쉬러 떠나는 용기 — 함께 살기 위한 이별

by 쉼표

[2막: 가족의 갈등과 화해]


쉼표라는 이름을 얻은 뒤, 다영은 계속 글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계속'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글을 쓰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윤서를 돌보려면 돈이 필요했다. 다영에게는 그 모든 게 부족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2025년 10월 중순]


다영은 은행 앱을 켰다.


통장 잔고: 236,000원.


화면의 숫자가 눈앞에서 흔들렸다. 다영은 계산기를 꺼냈다.


수입: 월 220만 원
(파트타임 경리 190만 원 + 윤서 장애연금 30만 원)


지출: 월 300만 원
(윤서 병원비 80만 원 + 약값 40만 원 + 재활치료 30만 원 + 생활비 150만 원)


부족: 월 80만 원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저축은 바닥났고, 카드 빚은 300만 원을 넘어섰다.

3개월 후면 전기가 끊길 것이고, 6개월 후엔 집을 나가야 할지도 몰랐다.


다영은 노트북을 덮었다.


숨이 막혔다.

[새벽 3시 33분]

다영은 잠들지 못하고 티스토리에 글을 썼다.


제목: 문장은 숨결이다.


나는 30년 동안 숨을 참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윤서의 병원 예약을 확인하고, 낮엔 회사에서 숫자를 입력하고, 밤엔 윤서의 재활 운동을 도왔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요즘 자꾸 생각한다.


만약 내가 잠깐이라도 떠나면 어떨까. 한 달만. 아니, 3개월만. 숨 좀 쉬고 오면 안 될까.

멀리 떨어져 사는 은서 생각도 난다. 전화 한 통 할 여유도 없이 살고 있다.


그저 나 혼자만의 시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 숨을 쉴 수 있는 시간.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윤서가 혼자 어떻게 살아.

나는 도망칠 수 없다.


숨이 막힌다.


글을 쓰고 나서, 다영은 울었다.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울었다.


[그날 밤]


다영은 인터넷을 검색했다.


"베트남 한국어 교사 구인"

클릭.

[베트남 다낭 한글학교]

한국어 교사 모집

급여: 월 2,500만 동 (약 100만 원)
숙소 제공
식사 제공


다영은 계산기를 두드렸다.


베트남 6개월: 100만 원 × 6 = 600만 원
한국 생활비 절약: 50만 원 × 6 = 300만 원
━━━━━━━━━
총 900만 원


빚을 갚을 수 있다. 윤서의 병원비를 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숨을 쉴 수 있다.

하지만 윤서를 두고 가야 한다.


다영은 노트북을 덮었다.


"안 돼. 윤서 혼자..."


[며칠 후]


윤서가 물었다.


"다영, 요즘 무슨 걱정 있어?"


"... 아니."


"거짓말. 나 알아."


윤서가 다영의 손을 잡았다.

"돈 걱정이지?"


"... 어떻게 알았어?"


"당신 표정 보면 알지. 30년 살았는데."

윤서가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내가 돈을 너무 많이 쓰지."


"아니야. 그게 아니라..."


"맞아. 병원비, 약값, 재활치료비. 다 내 병원비 때문이야."

윤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짐이야."


"윤서!"

다영이 소리쳤다.

"그런 말 하지 마! 당신은 짐이 아니야!"


"근데 사실이잖아. 나 때문에 당신이 고생하잖아."


다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10월 말]


윤서가 다영을 불렀다.

"다영, 앉아봐."


"... 왜?"


"어젯밤 글 읽었어. 티스토리."


다영의 얼굴이 굳었다.

"... 윤서."


"나 때문에 숨이 막힌다며?"


"아니, 그게 아니라..."


윤서가 다영의 손을 잡았다.

"다영아."


"응."


"떠나."


"... 뭐?"


"베트남이든 어디든. 가."


다영이 놀라 윤서를 봤다.

"무슨 소리야?"


"나 알아. 당신 요즘 베트남 한국어 교사 검색하는 거. 당신 컴퓨터 검색 기록 지우는 거 잊어버렸지?"

윤서가 웃었다.

"가. 가서 숨 좀 쉬고 와."


"안 돼. 당신 혼자 어떻게..."


"나 혼자 아니야."

윤서가 다영의 눈을 똑바로 봤다.


"나 밥 정도는 스스로 챙겨 먹어. 휠체어도 스스로 타. 병원 갈 때 택시 부르는 것도 할 수 있어. 다만 당신이 있으니까 당신한테 기댄 거지, 혼자 못 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다영아. 당신 지금 죽어가고 있어."


"... 뭐?"


"매일 밤 우는 거 나 알아. 새벽 3시마다 티스토리에 글 쓰는 거 알아. 당신이 숨 못 쉬는 거 보면, 나도 숨이 막혀."

윤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 무너지면, 나도 무너져. 우리 둘 다 무너진다고."


"..."


"6개월만 가. 딱 6개월."

윤서가 다영의 손을 꽉 잡았다.


"그 돈으로 빚 갚고, 당신 숨통 좀 트이면, 다시 글 쓸 수 있잖아. 브런치 연재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당신 벌써 지쳐가고 있어."


다영이 윤서를 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윤서."


"미안해하지 마. 당신이 편해지는 걸 선택해. 그게 우리 둘 다 사는 길이야."

윤서가 다영의 등을 토닥였다.

"다영아."


[11월 초]


다영은 베트남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출발일: 2025년 11월 15일.


윤서가 물었다.

"브런치는?"


"베트남 가서 쓸게. 10장부터."


"제목은?"


다영이 웃었다.


"삼겹줄."


[에필로그]


짐을 싸면서, 다영은 노트에 적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된다.


베트남 가기: 9번 망설임. 10번째, 결심.


인생도 그런 거다. 아홉 번 넘어져도, 열 번째는 일어난다.

숨이 막혀도, 다시 숨 쉴 곳은 있다.


다영은 노트를 덮고, 배낭을 메었다.


2025년 11월 15일.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9장, 끝]


[10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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