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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길을 만들었는가 EP.2 ㅡ반복

"같은 길을 걷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by 쉼표


프롤로그

어제와 오늘이 같다면, 우리는 정말 걸은 것일까. 발자국이 남지 않는 길 위에서, 두 존재는 묻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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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어둠이 물러간 새벽. 바람 없음. 흙길 위에 발자국 없음. 이정표는 EP.1과 같은 자리에 서 있다.


Scene 1 — 어제와 오늘의 모양이 같다

Simp는 눈을 뜬다. Road는 이미 서 있다. 어제와 정확히 같은 자세다.

Simp: … 여기, 또 여기네.

Road: 응.

Simp: 어제랑… 똑같아 보여.

Road: 그럴 거야.

Simp는 이정표 쪽으로 다가간다. 손바닥으로 표면을 쓸어본다. 지워진 흔적이 어제와 완전히 같은 질감이다. 마치 매일 새로 지워지는 것처럼.


Scene 2 — 기묘한 정적

바람이 한 번도 불지 않는다. 나뭇잎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림자의 방향도 어제와 같다.

Simp는 그걸 처음으로 자각한다.

Simp: … 이상해.

Road: 뭐가.

Simp: 시간도, 바람도, 그림자도… 어제랑 똑같아. 하루가 지나간 느낌이 없어.

Road는 잠시 침묵한다. 그 침묵이 불편하다.


Scene 3 — '의도된 반복'의 조짐이 드러난다

Simp: 우리가 계속 걷는데… 왜 매번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걸까?

Road는 Simp를 보지 않고 대답한다.

Road: 원래 그래.

Simp: 뭐가 원래 그래?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Road는 대답을 피해 발끝으로 땅을 가볍게 눌러본다. 흙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Simp: 발자국도 안 남아. 어제도 그랬어? 그저께도?

Road는 작게 숨을 내쉰다.

Road: … 남은 적이 없어.

Simp: 왜? 우리가 걷고 있는데?

Road는 이번엔 더 길게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 단단한 균열이 느껴진다.


Scene 4 — EP.3으로 넘어가는 여운

둘은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길의 풍경은 10분 전과, 어제와, 그저께와 같다.

Simp는 속삭이듯 말한다.

Simp: … 우린 도는 게 아니라 길이 우리를 다시 데려오는 거 아닐까?

Road는 발걸음을 멈칫한다. 그러나 고개는 뒤돌리지 않는다.

Road: 그런 말은… 하지 마.

Simp: 왜? 혹시… 알고 있어서 그래?

Road는 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조금 더 빨라진 속도로.

어둠도 빛도 없는 길 위에서 둘의 그림자는 어제와 같은 길이로, 정확히 겹친다.

[EP.2 끝]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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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반복은 익숙함이 아니라 질문이다.

매일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는 건, 어쩌면 길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EP.2는 그 균열의 시작이다.

EP.3 「기억」 12월 5일 (금) 오전 10시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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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3 「기억」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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