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는 왜 멈추고 싶은가"
프롤로그
누군가 나를 여기 두고 갔다. "기다려." "곧 데리러 갈게."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여기서 걷고 있는 걸까.
무대
빛은 저녁과 아침 사이. 온도는 낮과 밤의 중간. 시간은 오늘 하루가 아니라, 어제도, 그제도, 또 그 전날도 여길 지나간 것 같은 느낌.
Simp는 Road보다 조금 천천히 걷고 있다. 눈빛이 깊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Scene 1 — 기억의 조각이 처음으로 호흡을 가진 순간
Simp: Road.
Road: 응?
Simp: 나… 방금 뭔가 떠오를 것 같았어.
Road의 발걸음이 빠르게 떨린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Simp: 어떤 곳이었어. 이 길이 아닌… 더 밝고, 더 따뜻하고… 무서울 만큼 조용한 곳.
Road는 말없이 Simp를 바라본다.
Simp: 근데… 그 장면이 떠오르려고 할 때마다 마치 누가 뒤에서 조용히 문을 닫는 것 같아.
Road의 눈썹이 떨린다.
Road: 그 문… 열지 마.
Scene 2 — Simp의 마음이 갈라지는 소리
길 위에 이상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바람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미세한 기척이 난다.
아무도 없는 길인데 누군가 숨죽이며 듣고 있는 기척.
Simp는 Road에게 등을 돌려 천천히 길가를 바라본다.
Simp: … 누가 나를 불렀어.
Road: 언제?
Simp: 전에… 기억의 조각이 떠오를 때.
Road는 눈을 돌린다.
Simp: 그 목소리가… 다정하고… 근데 너무… 너무 차가웠어.
Road는 침을 삼킨다. Simp는 Road의 표정을 보고 더 깊이 파고든다.
Simp: 너… 알고 있었지? 그 목소리.
Road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길을 바라본다. 길이 숨을 죽인 것처럼 보인다.
Scene 3 — Simp가 처음으로 자신에게서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Simp는 갑자기 완전히 멈춘다.
Road: 안 돼—
Simp: 싫어. 이번엔 내가 멈출 거야.
Road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Simp는 눈을 감고 천천히 자신의 기억 속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떠오를 듯한 장면이 나타난다.
빛. 계단. 누군가의 손목.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여기 있어." "기다려." "곧 데리러 갈게."
Simp의 숨이 끊긴다.
Simp: 누가… 누가 날… 여기 두고 간 거야?
Road는 아무 말도 못 한다. 대답할 수 없는 표정이다.
세계가 흔들린다. 빛의 결이 부서진다. Simp의 손끝이 차갑게 떨린다.
Scene 4 — EP.9 '이정표의 비밀'로 이어지는 깊은 균열
Simp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가 스친다. 길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
Simp: Road… 나… 여기 오기 전에 멈췄던 적이 있어. 그리고 누군가가 나한테 "기다리라"라고 했어.
Road는 고개를 숙인다. 자신이 숨기던 것들이 더 이상 숨겨지지 않는 순간.
Road: Simp… 그 기억… 더 들여다보면—
Simp: (말을 끊으며) 그 사람이… 날 여기로 보낸 거야?
Road의 목이 굳는다.
더 이상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을 말할 수도 없다.
Road: … 길은 '누군가의 말'에서 시작됐어.
Simp: 누군가의… 목소리?
Road는 대답하지 않는다.
Simp는 또 한 번 멈춘다. 그러자 길이 깊게 숨을 들이쉰다.
지금까지와 다른 명확한 반응.
바람이 없다. 빛이 없다. 그 순간만큼은, 세계가 멈춘 듯한 정적.
Simp: Road… 나… 이 길에 있기 전 어디에 있었던 거야?
Road: (조용히) Simp, 그걸 알고 싶으면…
Simp: …
Road: 이 길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거야.
Simp는 눈을 떼지 않고 Road를 바라본다.
그리고 작게 말한다.
Simp: …근데 나는 이미 알고 있어. 이 길이 날 잡고 있다는 걸.
Road가 숨을 멈춘다.
길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두 사람을 향해 어둠을 한 겹 더 내려놓는다.
Simp는 그 어둠 속에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EP.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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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출발: "왜 걷기 시작했는가"
EP.2 반복: "같은 길을 걷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EP.3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가"
EP.4 시간: "이 세계의 시간은 왜 멈춘 것처럼 흐르는가"
EP.5 멈춤: "멈추면 왜 안 되는가"
EP.6 기원: "이 길은 누가 만들었을까"
EP.7 균열: "Road는 왜 도착을 두려워하는가"
→ 다음 에피소드 EP.9 비밀: "이정표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coming soon)
작가의 말
우리는 가끔 묻습니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부모님이 있고, 고향이 있고, 학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희미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누가 나를 여기 두고 갔는지, 알 수 없을 때.
Simp는 오늘 그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누가 날 여기 두고 간 거야?"
그리고 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길이 자신을 잡고 있다는 걸.
EP.9에서는 '이정표의 비밀'을 이야기합니다. 이정표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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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9 '비밀'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