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은 왜 ‘도착하는 곳’이 아닌가?”
프롤로그
도착은 어딘가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걸음의 끝, 여정의 마침표. 그런데 Road가 말했다. "도착은 도착이 아니야." 그렇다면, 도착은 무엇인가.
무대
빛이 낮처럼 보이지만, 그림자는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발밑에서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마치 여러 길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러나 실제 길은 하나다.
Simp와 Road는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걷고 있다. 공기는 조용하지만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다.
Scene 1 — 목적지가 처음으로 형태를 드러내는 순간
Simp: Road, 아까 말한 거… "도착은 도착이 아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Road는 오래, 아주 오래 생각한다. 그 생각 자체가 길 위에 그림자를 떨구는 것 같다.
Road: Simp. 여기서 말하는 도착은… 어딘가에 '가는 것'이 아니야.
Simp: 그럼?
Road: 어딘가에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Simp의 얼굴이 굳는다.
Simp: 그럼 대체 뭐야?
Road는 숨을 들이쉰다. 이제 더는 피하지 못한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다.
Road: 도착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상태'야.
Simp: 상태?
Road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Road: 걸음을 멈출 때, 기억이 열릴 때, 목소리가 가까워올 때… 그때 도착이 일어나.
Simp는 답을 이해하지 못한 채 더 깊게 파고든다.
Scene 2 — 길 자체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길은 그대로인데, 그 위에 투명한 결 같은 게 보인다. 마치 오래된 화면에 생긴 노이즈처럼.
Simp는 손을 뻗어 허공을 스친다.
손끝이 어딘가 차가운 벽에 닿은 것 같은 감각.
Simp: Road… 여기 뭔가 있어.
Road는 겁을 먹는다. 이걸 Simp가 느껴서는 안 된다고 계속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Road: Simp, 그건—
Simp: 벽이야. 길의 끝은 벽이야?
Road: 아니. 벽이 아니라… 문이야.
Simp는 손끝을 떼지 못한다.
Simp: 문? 그럼 이 길은—
Road: 문까지 가는 '공간'일 뿐이야.
Scene 3 — 목적지가 '공간'이 아니라 '판단'이라는 진실
Simp: 문을 열면… 우리가 나가는 거야?
Road: 아니.
Simp는 멈춘다. Road도 멈춘다. 길도 멈춘다.
공기는 움직이지 않고, 그림자도 흔들리지 않는다.
Simp: 그럼… 문 너머엔 뭐가 있어?
Road의 표정이 처음으로 완전히 깨진다.
Road: 문 너머엔… '선택'이 있어.
Simp의 눈이 흔들린다.
Simp: 선택? 뭘 선택하는데?
Road는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러다 말한다.
Road: 걸음을 계속할지, 아니면— 길에서 '벗어날지'.
Simp의 얼굴이 굳는다. 그리고 Road의 말은 이어진다.
Road: 근데… 벗어나는 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걸 수도 있어.
Simp: 왜?
Road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Road: 이 길은… 너를 붙잡고 있고, 그 목소리는… 너를 기다리고 있고, 목적지는… 너를 판단해.
Simp의 손끝에서 허공의 차가운 결이 조금 흔들린다.
문은 실제로 존재하는 듯 조용히 살아 있다.
Scene 4 — EP.12 '밖의 존재'로 이어지는 마지막 관문
Simp: Road… 그럼 이 길의 목적지는 우리가 가는 곳이 아니라—
Road: (조용히) 우리를 '보는 곳'이야.
Simp의 심장이 크게 흔들린다.
Simp: 그럼… 왜 나야? 왜 나만 이 목소리를 듣는 거야?
Road의 눈이 아주 깊게 흔들린다.
그러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Road: Simp… 너는 이 길의 '손님'이 아니야.
Simp: 그럼 나는… 뭐야?
Road는 침을 삼키고 말한다.
Road: 너는… 이 길을 만든 존재가 직접 데려온 사람이야.
길은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아주 깊고 길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Simp에게서 멀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Simp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서 있는다. 손끝에 닿았던 차가운 결이 아직도 느껴진다.
그리고 아주 낮게, 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중얼거린다.
Simp: …그럼, 나를 데려온 그 존재는… 지금 어디 있어?
Road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길이, 흙이, 그림자가, 그리고 저 멀리 느껴지는 문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숨을 죽인다.
[EP.1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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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출발: "왜 걷기 시작했는가"
EP.2 반복: "같은 길을 걷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EP.3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가"
EP.4 시간: "이 세계의 시간은 왜 멈춘 것처럼 흐르는가"
EP.5 멈춤: "멈추면 왜 안 되는가"
EP.6 기원: "이 길은 누가 만들었을까"
EP.7 균열: "Road는 왜 도착을 두려워하는가"
EP.8 흔들림: "Simp는 왜 멈추고 싶은가"
EP.9 이정표: "왜 이정표의 글자는 매번 지워져 있는가"
EP.10 목소리: "우리는 누구의 '가자'라는 말에 따라 걷고 있는가"
→ 다음 에피소드 EP.12 밖의 존재: "그 존재는 누구인가" (coming soon)
작가의 말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걷습니다.
"저기 도착하면 끝이야." "거기까지만 가면 돼."
그렇게 믿고 걷습니다. 도착이 끝이라고, 도착이 답이라고.
그런데 오늘 Road가 말했습니다.
"도착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상태'야."
도착은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도착은 우리를 보는 곳이었습니다. 도착은 우리를 판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Simp는 알게 되었습니다.
"너는 이 길을 만든 존재가 직접 데려온 사람이야."
EP.12에서는 '밖의 존재'를 이야기합니다. 그 존재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왜 Simp를 데려왔을까요.
당신을 어딘가로 데려온 존재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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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12 '밖의 존재'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