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서, 숨을 고르며
한 해의 끝에서
나는 마침표를 찍지 않기로 했다.
이 글은 끝이 아니라,
잠시 남겨두는 쉼표에 대한 기록이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시간
연재가 끝나간다는 사실보다
요즘 나를 더 오래 붙잡는 것은
글을 올리지 않아도
무의식처럼 브런치를 열어보게 되는 밤이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상태에
조금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무엇인가를 증명하려 했다.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이 시간이 헛되이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 역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금은 문장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문장을 통해 얻기보다
문장을 통해 내려놓는 쪽에 가까워졌다.
답을 쓰기보다는
질문을 남기게 되었고,
설명하려 애쓰기보다
침묵이 머무를 자리를 남겨두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한 해는 많은 글을 쓴 시간이 아니라
글 앞에서 서는 자세가 달라진 시간이었다.
조급함은 옅어졌고,
침묵을 견디는 호흡은 길어졌다.
쓰지 않는 날에도
나는 여전히 문장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을
‘마지막’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마침표를 찍기엔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이 너무 많고,
쉼표를 두기엔
지금의 호흡이 가장 정확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정리도, 결론도 아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기록이다.
나는 여전히 쓰고 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쓰지 않는 날에도
나는 여전히 문장 곁에 있다.
이 글이 닿은 자리에도
각자의 쉼표 하나쯤 남아 있기를.
이 글을 쓰고 나서야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브런치에서 처음으로
‘작가’라는 이름을 건네받았던 기록은
이 글이다.
[지친 당신에게 보내는 라벤더 향기]
— 다시, 처음의 자리로.
이 글은 연재의 끝이 아니라
쓰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를 기록한 한 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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