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에 대하여

결과가 아닌 결에 대하여

by 쉼표
결에 대한 본문 썸네일 Image 2026년 1월 18일 오후 11_42_39.png 보이지 않는 반복이 쌓여 사람의 방향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결과가 아닌, 결이다.


사람은 흔히 결과로 평가받는다.
얼마를 벌었는지, 어디에 도착했는지, 무엇을 성취했는지.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것들이 삶의 좌표가 되는 세계에서
결과는 언제나 가장 빠른 언어다.


하지만 삶을 조금 오래 통과해 보면
사람을 남기는 것이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을 남기는 건,
눈에 잘 띄지 않고 쉽게 설명되지 않는
결이다.


결은 드러나지 않는다.
성공처럼 환하지도 않고, 실패처럼 극적이지도 않다.
결은 언제나 반복 속에 숨어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선택 앞에서 조금씩 다른 태도를 취하며
서서히 굳어지는 방향성 같은 것.


나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해왔다.
공정과 납기, 단가와 수량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
그곳에서는 결과가 거의 전부처럼 보인다.
오늘 몇 장이 나왔는지,
이번 달 목표를 넘겼는지,
다음 납기를 맞출 수 있는지.
하루의 가치는 숫자로 요약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치열한 공간에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었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끝까지 남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그 차이는 능력에서 나오지 않았다.
속도에서도, 요령에서도 아니었다.
그 차이는
자기 삶을 대하는 태도,
곧 결에서 드러났다.


결이 있는 사람은 속도를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방향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결이 있는 사람은 말을 아낀다.
대신 같은 말을 오래 지킨다.
결이 있는 사람은 매번 이기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쉽게 버리지도 않는다.


나는 결이 타고나는 성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은 선택의 반복이다.
조금 손해처럼 보여도 오늘의 기준을 지키는 선택,
당장 보상이 없어도
자기 언어를 포기하지 않는 선택.
그 선택들이 쌓여
사람의 결이 된다.


글도 다르지 않다.
화려한 문장보다 중요한 건
그 문장이 어디를 통과해 왔는 지다.
삶을 거치지 않은 문장은
아무리 매끈해도 오래 남지 않는다.
반대로 투박해 보여도
시간과 노동, 침묵을 통과한 문장은
읽는 사람의 안쪽에 오래 머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
이 문장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묻는다.
이 생각은 견딤을 통과했는가.
이 말은 반복을 견뎠는가.
이 문장은
나 자신에게도 여전히 유효한가.


결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다만 배신하지 않으면 된다.
자기 삶이 만들어온 방향을
끝까지 따라가는 것.
그게 결이다.


아마도 사람은
자신의 결만큼만 멀리 간다.
그리고 그 결이 닿은 자리에서
비로소
자기만의 문장을 갖게 된다.


What Remains Is the Grain, Not the Result

(남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결이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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