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행 이후의 나

베트남, 삶, 그리고 결

by 쉼표

엄마와의 마지막 여행이 끝난 뒤
나는 한동안
어디에도 가지 못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마음은 그 병실에 머물러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해도
그 두 달을 지나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멀리 왔다.
이곳, 베트남.


언어가 달라졌고
풍경이 달라졌고
삶의 속도가 달라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에서야 비로소
그 여행 이후의 내가
조용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베트남에서의 삶은
결과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애써도
바로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설명할 수 없는 날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 대신
하루를 버티는 법을 배웠다.
기다리는 법을 배웠고,
말을 아끼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향을 자주 바꾸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와 보낸
그 마지막 두 달이
나에게 남긴 것이
슬픔이 아니라
결이었다는 것을.


결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용히 바꾼다.
조급해지지 않게 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게 한다.


베트남에서의 삶은
내 결을 시험하는 시간이었고,
나는 그 시험 앞에서
속도 대신 방향을 선택했다.


엄마는 늘
꽃들과 대화하시던 분이셨다.
말을 크게 하지 않아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법을
이미 알고 계셨던 분.


나는 이제
그분의 딸로서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다.
화려하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그 여행 이후의 나는
더 강해진 사람이 아니라
더 단단해진 사람이 되었다.


베트남이라는 이 낯선 땅에서
나는 오늘도
그 결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낸다.


논나 쓴쉼표 Image 2026년 1월 19일 오전 06_39_23.png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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