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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라 말하고 '출세'로 행동한다

- '출세'와 '성공' 개념의 재정립 필요

출세인보다도 '가치 있는 사람'  

   

저명가수이자 작곡가이며 연예기획사를 경영하는 박진영 대표는 방송에 출연해 성공하는 사람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말한 '성공하는 사람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돼라'는 충언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성공한 예술 기업가가 되고 보니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박 대표는 성공을 “점점 더 성능 좋은 확성기를 갖고자 하는 것”에 비유했다. 그처럼 출세 지향적인 삶은 외적인 물욕들 이를테면 재력, 권력, 명예에 급급하게 되어 인생의 참된 성공을 이룰 수가 없다. 그 모든 세상의 정욕(情欲)들은 지나고 보면 그야말로 남가일몽일 수가 있다. 


요즘 한국사회의 세태가 어지러운 것은 출세에 탐닉했던 과정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들이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출세주의가 시대변화에 역행하여 사회 전체를 패역무도적인 풍토로 퇴행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에만 오르면 된다. 그러면 승자독식을 누릴 수 있어서다. 


이제야말로 한국 사회가 전근대적인 수직적 출세주의에서 벗어나 수평적으로 가치 있고 존경받는 사람들이 사회를 선도하는 문화체계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공(success)과 출세(careerism)를 동일시하는 과거의 개념도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 출세가 반듯이 성공이라는 등식을 버려야 한다. 


통속적인 출세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잔잔하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출세를 해야만 사회적 인정을 받기에 잔잔한 영향력은 사회적 주류에 녹아들지 못하는 구도가 되어있다.


성공은 내면적인 보람이며 출세는 외형적인 충족이다. 그래서 인간적 성공은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로 다가올 수 있지만 사회적 출세는 한정된 부류에게만 주어진다.  


앞서 말한 대로 외형적으로 권력, 재력, 명예가 주어지는 사회적 출세는 세월이 지나고 환경이 변하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출세를 이뤄야 소수의 지배세력이 될 수 있기에 작금의 한국사회가 이전투구에 물들어 있다. 


내면적으로 체험하는 만족, 배려, 보람, 긍정, 자긍심이 중심이 된 인간적 성공은 어떤 여건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출세는 상대적인 비교가 되지만 성공은 절대적인 자기만의 가치이기에 그렇다. 출세는 외부적인 자만감을 가져다 주지만 진정한 성공은 내면에 자존감을 심어준다. 


높은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바로 이 성공보다 출세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출세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쟁취하는 것이기에 출세하지 못하면 박탈감과 상실감에 젖어들게 되어 있다. 달리 말해 행복을 내면적인 가치의 성공보다 외형적인 조건의 출세에 두다 보니 그렇다. 


경쟁에서 뒤지면 출세하지 못해 불행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세태가 되어 있다. 사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 행복은 세상의 출세가 아닌 개인의 성공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거슬러 오면서 하루가 달리 더욱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에 맞춰 이제는 범사회적으로 아인슈타인이나 박진영 대표가 제시하는 참다운 삶의 방향성을 잡아나가야 한다.  


이 시대 우리의 가치관은 올바른 의미의 성공하는 인간 곧 ‘호모 석세드레’(Homo Succedere)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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