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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성공을 가져오는 아침 독백

- 자신에게 주어지는 가장 값진 '오늘'


아침을 깨우는 생리적 자명종  

  

일상의 절대적인 시간은 영겁의 세월 속에 변함없이 흘러간다. 

그런 가운데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부터 시간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의식했다. 그래서 가장 오래전 발명한 것이 시계다. 기원전 3500년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만든 해시계로부터 14세기에 최초 발명된 기계식 시계에 이르기까지다. 그 후 수천 년 동안 시계라는 문명의 이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간을 구분해 왔다. 

아침 6시. 

늘 똑같은 나날의 시간이지만 내게는 기대에 찬 하루를 새롭게 여는 순간이다. 그 시각, 사계절이 바뀌어도 나의 생리적 시계는 어김없이 스스로 자명종을 울린다. 한겨울에는 아직도 짙은 어둠에 온 세상은 정적에 휩싸여 있다. 그렇지만 여름을 향해가는 절기에는 벌써 온 누리에 광명의 빛이 살랑인다. 

자연의 섭리대로 또박또박 바뀌는 절기다. 그런데 사람들은 낮이 길던 짧든 간에 그에 맞춰 잘들 적응을 한다. 인간에게는 환경 탄력성이라는 것이 있는가 보다. 어쨌든 내가 그 시간에 저절로 일어나게 되는 것은 평소 물을 많이 마시는 습성 때문이다. 


나의 신진대사 체계 중 방광이 수문을 열어 아침을 깨우는 기상나팔인 셈이다. 변기에 시원하게 폭포수처럼 방수를 하고 나면 욕실의 큰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과 마주친다. 하루 중 최초로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다보는 찰나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상태로 가장 적나라한 나의 자태가 거울에 투영돼 있다.  

나의 자아상이 생기게 된 이래 오늘도 일상의 통과의례처럼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또 다른 '나'라는 인격체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첫 대면이다. 어떻게 보면 새날에 처음으로 내가 나를 만나 하루의 경주에 나서는 힘찬 출발점이다.  


그리고는 거울 속에 비춘 나에게 작은 소리로, 그러나 강렬하게 외친다. 지금까지 몸에 배어온 습관대로다. 

 "성공! 성공! 성공!" 

그런 이상한 버릇은 젊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아마 내가 자신에 대한 의식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던 때부터였을 것 같다. 때로는 그 습관을 버려야겠다고 생각도 하고 각오도 해봤다. 하지만 한번 젖어버린 버릇인지라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무엘 존슨이 이런 말을 했을까.

"습관의 사슬은 너무나 미소하여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마침내는 끊어버릴 수 없을 만큼 강대한 것으로 된다. 습관은 처음에는 거미줄 같다. 그러나 최후에는 굵은 밧줄이 된다."


나의 그런 행동을 세밀히 지켜보아온 가족들은 그 행동을 우수개 거리로 자주 놀려댔다. 아니 흉내를 내기도 했다. 심지어는 나더러 거울왕자라고까지 불렀다. 여자도 아닌 남자가 거울 보기를 좋아하니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주위에서는 내가 외양 챙기기에 집착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을 법하다. 

어쨌든 거울을 들여다보며 성공을 읊조리는 습성은 나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렸다.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실천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왠지 가슴속이 허전하고 뭔가 휑함을 느낀다. 분명 그것이 특이한 행동임에는 틀림이 없다. 


성공을 부루 짖는 모닝 모롤로 그


습관으로 치면 선현들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습성도 유별났다고 한다. 그는 주위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철저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매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시간에 기계처럼 기상을 했다. 그리고는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를 심지어 같은 속도로 산책을 했다. 

그뿐 아니다. 음료수를 마셔도 정확하게 일정한 양을 마실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내가 아침을 열며 늘 하는 일과日課, 곧 거울을 보며 성공을 외치는 루틴이 그렇게 색다를 것도 없다. 칸트처럼 그렇게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람에게 습관이란 하지 않으면 배기지 못하는 행동의 지속성이다. 좋은 습관이란 동기가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공학의 대가 지그 지글러는 동기부여는 오래가지 못하기에 날마다 권하는 것이라고 했다. 좋은 것을 체질화하려면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해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일 거다. 


그래서 한결같은 길을 걷기 위해서는 매일매일을 다짐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습관으로 굳어지게 말이다. 그래야 두뇌 자율신경계가 내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단계가 이르게 된다. 보기에 따라 내가 거울을 보며 말을 하는 행동이 집착증, 아니 강박증일 수도 있다. 

강박증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특정한 사고나 행동을 떨쳐버리려는 데도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상태다. 내 행동이 그게 아닌가. 하지만 거울 속의 나 자신을 향해 성공을 외쳐야 마음 든든히 새로운 하루를 꾸려갈 것 같으니 어쩌랴.  

어쨌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성공을 되뇌는 것은 나만의  아침 독백이다. 바로 나를 바로 세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겠다는 모닝 모놀로그다. 그 독백의 요체는 성공이라는 말의 본질이다. 여기에서 성공은 요즘 세상이 최고의 목표로 규정짓는 출세가 아니다. 이른바 돈, 권력, 명예로 상징되는 그런 출세와는 다르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오직 출세만을 노린다. 세상에 나면서부터 이 땅의 영혼들은 출세를 향해 인생 항해의 닻을 올린다. 그러면서 이미 '출세! 출세! 출세!'라는 DNA를 후천적으로 이식받는다. 그에 따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주어진 삶을 다그쳐 나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출세가 곧 성공이라고 등식화 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냉정히 따져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파헤쳐보면 출세라는 뿌리에 있다. 


그러나 출세와 성공은 다르다. 물론 출세가 성공일 수도, 성공이 출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출세에 대한 세속의 관념과 인식이 모두를 옥죄고 있어 초조감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출세는 물질적 소유나 사회적 위상이나 정치적 세권勢權이라는 외적 표징으로 재단되고 있는 게 지금 세태다.  그렇지만 성공은 가치 있는, 그러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거움으로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치라는 말은 공익성과 공의성을 행동으로 구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내면의 마음가짐이다. 출세라는 개념 속에는 이런 외적 요소와 내적 자세가 담겨 있지 않다. 

한 젊은이가 인생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세기적인 물리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을 찾았다.

"선생님,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에 아인슈타인은 '가치 있는 사람'person of value이 되라고 일러주었다. 그 가치의 대상은 개인 각자의 재능과 취향과 분량에 따라 다 다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우리식으로 말해 출세지향적 성공보다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이 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매일매일 공표하는 사명선언서 


내가 읊조리는 성공은 바로 그런 뜻이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매일 아침 나 자신에게 보내는 사명선언서이다. 오늘도 가치를 좇는 삶으로 성공하겠다는 내적인 공표다. 그렇게 해 나의 존재감을 높이며, 내 인생에서 오늘이라는 삶의 퍼즐 조각을 끼워 넣는 것이다.   

그 선언은 어느 구체적인 목표를 겨냥하지 않는다.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이나 예상하지 않는 일에 맞닥트렸을 때 선한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다짐일 뿐이다. 어찌 보면 그날의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겠다고 확정하면 그 자체가 압박감이다. 

흔히 성공하려면 미래에 대해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설정한 미래의 목표가 뜻한 대로 이뤄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의 삶은 인간의 힘으로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는 오늘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의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착실한 노력을 할 뿐이다. 그게 바로 성공의 가치다. 


그런 점에서 성공을 입으로 증거함으로써도 좋은 느낌이나 활기찬 기운이 생성된다. 그럼 나의 생체 시스템은 최상의 상태가 되고 긍정적이게 되어 있다. 주어진 오늘이 내게 가장 값진 하루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일생을 오늘이라는 하루하루를 쌓아 이루어내는 놀라운 성취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하는 오늘이 되어야 한다.  그 나날이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 나아가 10년, 20년, 30년···요즘은 그렇게 100세 시대를 살아 한평생을 보낸다. 

오늘이라는 말은 영어로 'present'다. 이 단어는 동시에 선물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에게 주어진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오늘을 가치 있고 값지게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성공을 외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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