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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잎클로버에 숨겨진 행복의 열쇠

-  인생의 성공은 '의미'를 찾아 나서는 여정

                                                                            

세잎클로버의 널려진 '행복' 

  

누구나 '긍정'을 말한다. 

그것은 그 말에 농축된 의미가 내 삶의 곳곳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강한 기대심리에서다. 달리 말해서 작게는 주어진 일상에서, 크게는 자신의 삶에서 긍정적인 체험을 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다. 모든 사람이 갈망을 한다. 희망대로 인생의 여정이 모두 긍정적으로 술술 풀려나가면 얼마나 좋을까를.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긍정의 체험을 굵직한 이벤트 같은 사건에만 국한시키는 경향이다. 마치 들판에 수없이 널린 세잎클로버를 제치고 네잎클로버만 찾는 격이다. 자연 상태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을 확률은 1만 분의 1이라고 한다. 사실 네잎클로버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토끼풀속의 변종 현상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걸 찾으면  당장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할듯이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요즘은 미국에서 유전자 변형을 통해 상업적으로 네잎클로버를 대량 인공 재배하기도 한단다. 

그렇다면 네잎클로버를 돈으로 거래하면 행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돈으로 행운도 살 수가 있다면 부자들은 이 세상이 샹그릴라 같을 것이다. 그럼 출세라는 것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쟁취해야 할 일이다. 어쩌다 맞닥트리는 게 행운인데 그것을 상점에서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게 될테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

"세잎클로버가 좋으세요? 아니면 네잎클로버가 좋으세요?"

아마 백이면 백 사람이 한결같이 네잎클로버가 좋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나는 자신 있게 세잎클로버를 선택할 것 같다. 왜냐하면 각각의 꽃말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주어지는 행운보다 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택하지 않겠는가. 

그럼 다시 질문을 바꾸어해 보면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행운을 뜻하는 네잎클로버와 행복을 의미하는 세잎클로버 중 어느 것을 고르실래요?"  

그러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주저할 것이다. 두 종류의 클로버가 지닌 꽃말 때문에 말이다.   


잠시 잠깐의 행운이라는 이벤트


만약 꽃말을 믿는다면 우리는 굳이 그 희귀한 네잎클로버를 찾아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세잎클로버를 선호하게 될지 모른다. 클로버를 떠올리며 요즘 세상을 들여다본다. '왜 우리 곁에 널려져 있는 행복을 마다하고 행운만을 좇는 삶을 사는가?' 비유해서 생각하면, '왜 주위에 숨겨진 성공을 뒤로하고 찾아도 쉽지 않은 출세에 혈안이 되어 있을까?'

이제는 인생의 여정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그에 맞추려면 삶의 보폭을 여유롭게 잡아야 할 터이다. 그런데 오히려 100미터 단거리 경주처럼 질주해 나간다. 그러면서 쉽게 소진감에 시달린다고 호소들을 한다. 물질주의에 매몰된 사람들, 그들은 출세라는 행운의 이벤트를 지상 최고의 목표로 여긴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도록 세상의 가치관이 프로그래밍화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사회적 체질로 굳어져 바뀌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성공이 주는 행복이 우리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지속적으로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분명 손에 넣기 어려운 그 행운을 거머쥐었다 하자. 그 뜨거운 쾌감은 오래가지 않아 식어 버린다. 행운은 어느 순간 사라지는 안개처럼 일시적이다. 이어 헛헛함의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인간은 필요한 것보다 더 큰 욕구를 갖으려 하는 게 본능이다. 

그래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말한다. '사람은 동물적 충족만으로 만족하기를 거부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것은 출세에 목말라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과 같다. 이를 풀어 보면 인간은 대체적으로 출세지향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이 특별하다는 의미다.  

이제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아무 이벤트가 없어도 자신의 내면에 긍정의 물결이 흐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다운 의미로 긍정의 요소란 소소한 것들에서도 큰 의미를 찾아 그것을 내재화시키는 체험들이다. 

그것은 자체 목적적이어서 자기만의 감동이며 환희이며 희열이다. 긍정의 단어가 심어주는 활력감, 칭찬의 말 한마디가 주는 만족감, 격려의 말이 주는 위안감, 대화를 통해 얻는 교류감 등···. 

이 같은 일상의 사소한 일들이나 상황 속에서 강렬한 행복, 황홀, 경탄을 느끼는가? 인생의 진공 상태 속에 있는 것 같은 현실에서 삶을 설레게 하는 충만감이 느껴지는가? 


플로우...긍정 흐름의 체험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긍정의 성공 체험이다. 이러한 영감의 경험들을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플로우’flow라고 했다. 쉽게 풀이하면 '흐름의 체험'이다. 이러한 긍정 체험은 말 그대로 물이 흘러가듯 만사를 형통하게 하는 활력소라는 뜻이다. 

시대 흐름에 따라 세계관이 변하며 참된 삶의 기준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외형적 행운을 갈구하는 물질 중심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면의 행복을 새롭게 찾아 나서는 안녕 중심의 사회다. 삶에 대한 만족의 척도가 과거 단발성 해피니스에서 플로우로 바뀐 것이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중시한다. 인간에게 있어 의미란 무어일까? 사전적으로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일, 행동 따위가 지니는 가치나 중요성’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의미란 삶이 지니는 가치나 중요성이다. 그렇기에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보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인생이 된다.  

누구다 다 이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일상의 생활에서 실행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의미란 아주 주관적인 특질을 갖는다. 그 의미는 남이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남이 판단해주는 그런 성격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느끼고 인식하고 인정하는 생각체계다. 


가치를 강조했던 아인슈타인에게 있어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조국 이스라엘로부터 대통령직을 제의받았을 때 이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가르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 삶의 의미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과학자로 있는 것이었다. 그가 자기를 찾아온 한 젊은이에게 들려준 인생의 충고처럼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삶에 있어서 의미란 바로 가치를 뜻한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빅토르 프랑겔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절망은 삶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 우리는 출세를 향한 세상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아인슈타인과 같은 마음을 꼿꼿하게 가질 수는 없을까? 

성공이란 의미를 실현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다. 우리는 특유의 출세지향적 과시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의 치열한 경쟁 다툼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가운데 기본적으로 삶의 의미와, 또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 때다. 그런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생의 성공 반열에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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