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I@home
외계인은 존재할까. 난 늘 그 물음에 YES를 외친다. 드넓은 우주, 수많은 행성에 지구 생명체만이 존재한다면 너무 큰 공간의 낭비라는 칼 세이건의 말에 수십 번이나 고개를 끄덕여왔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없지만, '지구에도 생명체가 있는데, 이 넓은 우주에 또 다른 생명체가 하나쯤은 있지 않겠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외계인의 존재를 어린아이처럼 믿어왔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외계인의 모습이 좀처럼 그려지질 않는다. 매체 속에 등장하는 유명한 외계생명체가 아닌, 진짜 외계인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결국 눈앞에는 ET나 에일리언 같이 흔하디 흔한 모습만 그려질 뿐이었다. 아이들에게 물어도 대답은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다. 초록색 피부에 커다란 눈, 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머리는 단골처럼 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TV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표현한 외계인을 접했다.
저는 음악이 외계의 존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에게 바이러스처럼 스며들어서, 발현하면 퍼져가고...
음악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게 깃들어 살고 있는
어떤 존재일 수도 있잖아요.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들이 어디선가 왔고,
소리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사람에게 깃드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그의 상상은 커다란 둔기가 되어 내 머리를 세게 한 대 쳤다. 같은 곳만 맴돌며 막혀있던 내 머리를 시원하게 뚫어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로선 닿지 못할 상상이었다. 과학적인 팩트는 잠시 내려놓고 감탄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말이 너무 반가워 미소를 지었다.
내게 음악 감상은 절대 가벼운 취미가 아니다. 어느샌가부턴 돈도 시간도 순식간에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취미가 되어있었다. 집 안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방마다 스피커를 마련했고, 종류별 무선 이어폰과 만일을 대비한 유선 이어폰까지 가방 한편에 늘 넣어 다녔다. 자주 듣지도 않는 레코드 판은 햇살이 밝은 주말 아침을 위해 반드시 사야만 했고, 중고 서점에 들러 우연히 만난 브라운아이드소울 앨범은 절대로 지나칠 수 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취미는 주말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주일 간 들을 새로운 음악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여야 한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듣기 때문에 늘 새로운 음악을 충전할 필요가 있다. 만약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지 못했다면, 나는 마치 덜 충전된 아이폰처럼 저전력 모드로 일주일을 보낸다. 돈도 시간도 많이 쓰지만 때에 따라선 삶의 만족도도 떨어뜨리는 취미라니, 가끔은 음악 감상에 너무나도 진심인 건가 싶다.
김영하 작가의 말이 반가운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만약 음악이 외계의 존재라면, 주말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운 음악을 찾아내는 나는 천문학자가 되는 셈이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잠시나마 천문학자의 꿈을 꾸었던 나에겐 잠깐의 미소를 심어주었다. 방 안에서 외계인을 찾아내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니, 너무 멋진 취미 아닌가!
실제로 2000년대 초반에는 방 안에서 외계인을 찾는 멋진 취미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준비물은 컴퓨터 한 대. 1999년 5월, 버클리 대학교는 SETI@home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외계인 탐사를 허락했다.
SETI는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지적 외계 생명체 탐사)의 앞글자를 딴 줄임말이다. 외계생명체를 찾기 위한 천문학자들의 행위를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탐사의 대상을 '지적인' 외계 생명체로 특정한 것이다. '지적인'의 정도는 전파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을 의미한다. 그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한 외계 생명체는 현재 인간의 기술로는 찾을 수 없다.
오스트레일리아에만 서식하는 캥거루와 북극에서만 사는 북극곰을 상상해 보자. 그 두 집단은 인간의 도움 없이 절대 만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존재 역시도 알 수 없다. 배를 건조할만한 지능도, 만들어진 배에 탑승해 서로를 향할 판단력도 부족하다. 그들의 지능에 비해 지구는 터무니없이 크다. 마찬가지로, 광활한 우주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외계 생명체를 직접 만나거나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천문학자들은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수단, 전파 신호를 이용했다. 전파 신호는 빛의 속도로 우주를 누비며 품고 있는 정보를 배달한다. 만나거나 관측하는 것은 포기하고, 신호를 통해서라도 소통할 수 있는 '지적인' 외계 생명체를 탐사하는 쪽으로 타협한 것이다.
SETI는 안테나를 통해 밤하늘을 휘젓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문학자들은 우주로부터 오는 수많은 전파 신호를 포착하고, 그중 외계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선별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신호는 분명 생명체의 흔적이 남을 것이다. 사방으로 뚫려있는 지구에는 수많은 신호들이 드나들지만 그중 특별한 신호를 찾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아쉬운 문제가 발생했다. 전파 데이터는 끊임없이 관측되고 있었지만, 그 신호를 선별할 컴퓨터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한 천문학 연구팀은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신호 분석팀으로 포섭하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라면, 온라인을 통해 컴퓨터 성능의 일부를 할애해 전파 신호를 분석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는 것이다. 이것이 SETI@home, 집에서도 편하게 외계인을 찾을 수 있는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약 20년 동안 프로젝트는 계속되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본인의 컴퓨터를 기꺼이 외계 신호 분석을 위해 할애했다. 외계인을 찾아내는 건 전 세계인들의 공통된 염원이었던 걸까. 어딘가엔 존재할지도 모를 이웃을 위해 모두가 힘을 보탰다. 그리고 2020년 3월, SETI@home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종료되며 전 세계인의 외계인 찾기 프로젝트에 마침표가 찍혔고, 외계 신호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수 시간 동안 음악을 찾아도 결국 허탕을 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늘 듣던 음악을 들으며 일주일을 달랜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다 보면 우연히 멋진 음악이 내 귀를 파고들 때가 있다. 얼른 휴대폰을 꺼내 제목을 검색하고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한다. 역시나 세상은 넓고 좋은 음악은 많다. 아직 내가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주는 넓고 어딘가에는 생명체가 있으리라 믿는다. SETI@home은 끝이 났지만, 외계인을 찾기 위한 우리 모두의 관심은 끝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