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우주 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는 그의 첫 번째 비행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1995년 11월이었죠. 전 모든 준비가 되어있었어요. 공학 석사 과정, 비행 훈련, 러시아어 공부 등등 필요한 훈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뜬 아침이 우주로 가는 날인 거예요. 조종석에 웅크리고 앉아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이번 임무에서 책임져야 할 것들과 발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천 가지 문제점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말이죠. 발사 6초 전이 되면 엔진에 불이 붙습니다. 액체 연료를 태우는 거대한 소음이 점점 커지면, 잡념은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됩니다. 6초 뒤 엔진 출력이 최대에 도달했을 때, 내 몸을 누르는 힘이 느껴지고 마침내 하늘로 떠오릅니다. … 8분 42초 뒤, 우린 무사히 궤도에 진입했어요. 그때 전 안심했습니다." 수많은 훈련을 견뎌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찌를 듯 높고 길게 선 선체가 천천히 지표 위로 떠오를 때, 그는 불안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야 그럴 것이 불과 9년 전인 1986년,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중 폭발하여 7명의 희생자를 냈었다. 그 후, 당연하게도 우주 왕복선 임무는 2년간 전면 중단되었다. 임무가 재개된 지 7년째에 크리스 해드필드가 비행에 나선 것이다. 그가 탄 아틀란티스호는 아무런 문제 없이 박수를 받으며 하늘로 떠올랐고, 초당 5마일의 속도로 8분 42초간 상승한 끝에 지구 궤도로 진입했다. "이제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만 남아있었습니다. 이제 되돌아갈 수 없어요. 마음속에 남아있는 순수한 기쁨과 안도를 만끽한 후, 제가 해야 할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임무는 러시아 우주 정거장에 도킹 모듈을 비롯한 장비를 설치해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 이제 막 궤도에 올랐을 뿐이다.
우주 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2010년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NAS
지상에서 얼마나 긴 준비 과정과 부단한 노력이 있었건, 우주 탐사 임무의 첫인상은 카운트 다운 후의 10분이다. 엔진에 불이 붙고 고작 10분, 로켓이 우주선을 하늘 위로 올려다 놓는 그 10분이 없다면 모든 임무는 시작되지 않는다. 몇백 톤 무게의 철과 연료 덩어리가 불꽃에 의지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 '발사'다. 로켓 방정식이니 뭐니, 과학적 지식을 따져 묻지 않아도 이것이 엄청난 일이라는 건 로켓 발사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커다란 기체가 떠올라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의 10분은 가장 많은 에너지를 받는 때 중 하나이며, 수많은 변수로 가득한 순간이다. 이 '발사'에 문제가 생긴다면 임무는 전면 중단이다. 발사 당일 날씨라도 좋지 않다면 로켓은 발사되지 않는다. (실제로 크리스 해드필드의 첫 번째 비행 역시 날씨 때문에 하루 미뤄졌다) 이미 로켓이 하늘을 날았어도, 작은 문제 하나가 지구 궤도 진입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원인은 수십, 수백 가지나 돼 하나하나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로켓 발사는 단순히 우주로 가는 과정이 아닌, 그 뒤에 있을 모든 임무를 결정짓는 ‘시작’이기 때문에 해내야 한다. 10분여의 발사 과정이 성공적이지 않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내 목숨이 달린 이번 임무도, 다른 우주비행사가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임무도 순식간에 불투명해진다. 안정적이지 않고 멋지지 않은 우주 탐사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불안정하고 위험하며 아슬아슬한 우주 탐사에 박수를 보낼 사람은 없다. 유일하게 지구에서 일어나는, 가장 화려하고 위험한 10분은 대중들에게 이번 임무가 성공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장이며, 앞으로 있을 우주 개발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며, 더 나아가 연구할 수 있는 예산을 모을 수 있는 화려한 쇼다. 영화 시작이 재미없으면 누가 그 영화를 끝까지 볼까. 시작부터 관객을 사로잡는 성공적인 장면이 있어야, 영화는 계속된다.
불이 꺼지고, 눈앞의 음료수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팝콘 씹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리는 고요한 순간이 찾아오면, 긴장감이 바짝 오른다. 개성 넘치는 제작사들의 로고들이 스치고, 드디어 공간은 빛과 소리로 가득 찬다. 마치 로켓이 화려한 불꽃을 내뿜으며 떠오르듯, 눈앞의 영화는 비장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되고서 약 10분, 막이 오르고 장면들이 이어져 작은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를 '오프닝 시퀀스'라 부른다. 그리고 영화는 그 10분 이내에 결판을 지어야 한다.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의 첫인상이자 관객들에게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이 영화의 장소는, 시간적 배경은 언제인지, 앞으로 어떤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어나갈지, 이 짧은 10분 안에 모조리 쏟아내야 한다. 감독에 따라 각양각색 개성 넘치는 오프닝 시퀀스들이 있지만 목표하는 건 오로지 하나, 관객들의 몰입이다. 재미가 없어도 티켓값이 아까워 엉덩이를 떼지 못하는 '극장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클릭 하나로 다른 영화를 틀어버리는 'OTT의 시대'에 감독들은 매력적인 오프닝 시퀀스로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이 영화 재밌겠죠? 취향에 맞죠? 끝까지 볼 거죠?
관객의 기대감이 하늘을 찌르는 순간,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성공적인 오프닝 시퀀스가 있어야 한다. 영화가 '발사'되고서 10분간 관객들은 이번 시도가 성공적 일지 가늠한다. 실패한다면 거기서 끝이다. 화려한 장면들과 감동적인 대사들, 아주 절묘하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야기 흐름을 보고 내 인생의 2시간을 이 영화에 바칠 것인지 결정한다. 어쩌면 김새는 장면들과 뻔한 연출, 어우러지지 못하는 음악과 삐걱이는 배우들의 연기는 '발사 실패'의 오명을 안고 재생을 멈추게 될 수도 있다. 그럼 뒷부분은 영원히 알지 못한 채로, 아니 궁금하지도 않은 채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재생 바가 10%도 채 가지 못하고 멈춘 영화들이 줄지어 있는 '시청 중인 콘텐츠'. 하나같이 '발사 실패' 판정을 받은 영화들이다.
멋들어진 오프닝 시퀀스를 만나 순식간에 영화에 몰입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그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발사대에서 거대한 불꽃을 뿜으며 오르는 로켓을 봤다면 우주 탐사에 심장이 뛸 수밖에 없다. 두근대는 시작은 언제나 그 끝을 상상하게 한다.
Main Engine Start… 5, 4, 3, 2, 1… 영화가 시작됩니다! 과연 끝을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