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해? 아니면 한 번 더?
세상이 “이제 그만 포기해”라고 말할 때 희망은 “한 번만 더 해 봐”라고 속삭인다.
-하루 쓰기 공부
잠이 부족해 누워있는 큰아이를 조금 더 자게 내버려두었다가 그만 시간이 늦어져버렸다. 떡만둣국을 끓여주었는데 반도 채먹기 전에 스쿨버스를 타러 가야했다. 졸려서 눈이 꿈벅하는 아이가 안스러워 엄마가 데려다주마 하고 밥을 더 먹고 집을 나섰다.
늘 가던 길로 차를 몰았는데 오늘 아침 비는 오고 도로에 차도 많았다. 학교에 늦지는 않았으나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다. 아는 길이라 네비게이션으로 찾아볼 생각을 안했었는데 그제야 제일 가까운 거리를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신호등에 멈춰선 사이 네이버지도를 켜고 집에서 아이학교 가는 길을 찍어보니 내가 온 길과 다른 길을 알려준다. 순간 ‘아~ 이 길이 있었지’ 왜 깜박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에서 우리집으로 들어올 때면 늘 오는 길이었기에 이 길이 가까운 걸 알고 있었는데 왜 나는 집에서 시내로 나갈 때는 생각을 못했을까? 우리집에서 시내를 나갈 때 처음 갔던 길이 아마도 가로수가 많은 그 윗길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은 내 머리 속에서 이미 굳어진 습관이었던 것이다.
‘습관적으로’라는 말이 이래서 무섭다. 습관이 들었다는 건 최적화된 상태에 놓였다는 말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래서 뇌가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이미 몸은 그걸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하고 나서도 자기가 했다는 것을 까먹을 만큼 몸에 밴 행동들이다. 그러니 '습관적으로 한다' 는 말은 대체적으로 좋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갔던 길이 다소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처럼 '그냥 하던대로 한다'는 것이 때로는 불편한 것일수도 있다.
포기를 자주 하는 것도 습관이다. 어떤 일을 하다가 중단했던 경험이 많다면 그만큼 다음 일도 습관적으로 중도포기할 가능성이 많다. 내가 자주 부딪혔던 일들이다. 그리고 내가 극복해 가야 할 일들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중도포기가 없고 삶도 중도포기가 없다. (물론 극단적인 선택을 제외하고 말이다) 끝까지 가봐야 아는 길이지만 가는 길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니 어떤 길을 선택해서 갈지는 습관적으로 내맡기지 말고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여유가 있을 때는 조금 먼 가로수길을 선택해 흥취를 높일수도 있고, 시간이 급할 때는 조금이라도 빠른 길을 선택해서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다. 그건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포기’도 익숙해지면 습관이 되어버릴 테니 그것보다는 ‘한 번 더’ 라는 희망을 선택하는 것도 오로지 나의 자유인 것이다. 오늘 하루도 그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