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네요. 컥...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방학에 돌입했다. 어제 오늘 연이어 방학식이다. 아직 중2인 막내가 제일 신이 났다. 어렸을 때야 방학 때 놀러라도 다녔으니 그렇지만 지금은 왜 저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뜻 그대로 ‘공부를 놓을 수 있’는 시간이라도 된다는 건가. 입시에 똥줄이 타는 큰아이만 빼고 둘째 셋째는 방학이라고 쾌재를 부르며 친구들과 우루루 몰려가 피씨방 세리모니를 하고 돌아왔다.
어쨌거나 방학의 시작은 아이들의 희망이요 엄마들의 절망이 교차되는 시점이다. 안그래도 아이들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엄마 오늘 점심은 뭐예요?”라는 물음이다. 들을 때마다 아주 살이 떨릴 지경인데, 앞으로는 하루에 얼마나 많이 그 말을 들어야 하는지 참으로 절망적이다. 심지어 둘째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저녁 메뉴는 뭐예요?”라고 물어본다. 지금 먹고 있는 쫄면이 맘에 안드는 눈치다. 그래, 엄마란 어렸을 때부터 너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너희의 살과 피를 구성해줄 그 메뉴가 궁금한 것에 대해 숭고하게 받아들여야 하건만, 괜시리 속짜증이 슬슬 일어나는 건 왜일까. 나도 모르는 그 메뉴를 애들은 왜!!! 자꾸!!! 물어보느냔 말이다. 대답 대신 “음, 그래. 넌 뭘 먹고 싶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미리 말해~”하며 슬쩍 바톤을 넘겨준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에게도 하소연을 했다. “어떡해. 애들이 지금 다 방학했다고!!!!” 남편은 “힘들면 대충 사먹어~” 라고 나름의 해답을 내놓는데 어차피 엥겔계수가 높은 우리집 생활비를 생각하면 결코 만족스런 대답이 아니다. 미성년 남자 셋의 메뉴에 대한 집착과 어른 남자의 성의없는 대답에 여자 하나는 가슴이 답답해 온다.
급기야 나는 어제 새벽배송 주문을 시켰다. 일단은 갈비탕과 찹스테이크를 주문해 가뿐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요리에는 관심이 없으나 입맛은 예민'한 엄마를 닮아 아이들도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 아니니 나름 열심히 고민해서 결정한다. 우선은 할인 혜택이 크고 후기가 좋은 메뉴라야 한다. 몇 번 내 취향대로 시켰다가 망한 적이 많았으므로. 나는 아이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했다. "이번 방학은 마켓**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먹고 싶은 거 있음 미리 말해라.” 아이들이 멀뚱 쳐다본다.
엄마가 차려주신 손맛나는 반찬들을 먹고 자란 나는 아이들의 한끼를 간단히 해결하는 것이 괜시리 미안해진다. 대신 자주 웃음을 건네보리라 다짐한다. 엄마의 여유와 마음 건강이 너희의 몸과 정신의 건강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니 하며. 다행히 여름방학이 길어야 삼 주라고 한다. 개학의 희망을 기다리며 새벽배송으로 건강한 방학 생활을 시작해보련다.
희망을 매일 갱신하기.
희망은 갱신 가능한 옵션이다. 하루가 끝날 무렵 희망이 바닥나면 다음 날 아침 다시 갱신하면 된다 – 바버라 킹솔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