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이불을 '개' 자꾸나
아들들에게 이불을 개라고 한 지가 몇 달이 되었다. 널브러져 있는 이불들을 보며 집을 나서는 아들을 불러 세운 적도 있다. 엉성하게 뭉쳐져 있는 이불들을 보며, 그래~ 중고딩 아이들이 이불을 개란다고 개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어디냐 싶은 생각이 들어 만족한 적도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에는 슬그머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녀석들이 나중에 독립이라는 걸 하면 아마도 녀석들의 방이 폭탄 맞은 방이 되는 게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라지만, 남편을 보면 충분히 연상이 되는 시나리오다. 혹시나 그게 내 차지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머리를 흔들었다.
막내야, 이리 와봐라…
하며 아들이 개켜놓은 이불을 가리킨다.
아들아, 이불을 갠 게 아니고 밀쳐놓은 거 같구나.
엄마, 내가 열심히 갠 건데요.
엄마가 시범을 보여줄게, 자 이불 넓은 쪽을 잡고 반을 접어, 그리고 바닥에 내려놓고 또 반을 접고 또 반을 접고.
아 귀찮은데….
하면서도 막내는 이불을 조그맣게 접으려고 애를 쓴다.
아유, 잘했어.
위에다 놔두고 베개 올려놔.
궁디팡팡 한 번 해주고, 이번에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둘째를 부른다.
아들아, 이불을 좀 ‘개’ 주면 좋겠구나.
갠 거예요.
밀쳐놓은 거 아니니?
저게 갠 건데요.
둘째는 막내보다 대답이 짧다. 녀석이 이렇게 나올 때는 늘 어이가 없지만, 나는 오늘 반짝하고 떠오른 걸 실행한다.
엄마가 사전에서 찾아볼게. ‘개다’의 정의를.
개다 : 옷이나 이부자리 따위를 겹치거나 접어서 단정하게 포개다.
이야~~'단정하게' '포개다' 라고 딱 나와있네.
아들아… 어떠냐 감이 오지 않냐??? 하며 나는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아들은 눈만 끔벅끔벅하고 있다. 부정이야? 모른 척이야?
그럼 ‘단정하다’를 찾아봐야지.
단정하다 : 깨끗이 정리되어 가지런하다.
그리고 또 이불 개기 실습에 들어갔다. 이불 넓은 쪽을 잡고 반을 접어, 그리고 바닥에 내려놓고 반을 접고 또 반을 접어. 둘째가 툴툴거릴 거 같았는데, 그런대로 수긍하는 눈치다. 아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왜 아들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말을 해줘야 아는 거냐고 지난 십여 년 간 하늘에다 대고 어지간히도 외쳐댔었다. 하지만 방법은 구체적으로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거기다 그럴듯한 근거와 명분이 있으면 아들들을 움직이게 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된다.
하긴 그동안 자기들도 머리가 컸으니 늙어가는 엄마가 이렇게까지 도움을 요청하는데(물론 강요로 들릴 가능성이 크다) 양심적으로 안 움직일 수는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나이 들어가는 엄마의 욕심인 것인가? 아무튼 사춘기 아들과 말씨름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려면 단단한 개념 정의로 무장을 해야겠구나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내일부터 아들들에게 “이불을 ‘개’ 세요!!!!”라고 개념 있게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