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를 깎다가 급 웃음이 나왔다.
“얘들아, 이거 봐봐, 원숭이”
“어…개코원숭이다….”
난데없는 키위의 개그에 오늘의 에세이는 과일이 주제다.
아이셋이 생긴것도 성격도 다르지만 과일 취향도 참 다르다. 어쩜 그렇게 셋이면 셋 모두 다를 수가 있는지, 같은 걸 좋아했다면 과일을 한 박스씩 사놓으면 그만인건데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각각 다른 과일을 고를 때마다 ‘이건 큰 놈, 이건 둘째, 이건 막내’ 하면서 아이들 얼굴을 한 번 더 떠올린다는 게 왠지 아이의 특성을 잘 기억하고 있는 살뜰한 엄마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하다.
큰아이는 참외, 토마토를 좋아하고, 둘째는 복숭아, 감을, 막내는 사과와 귤을 좋아한다. 그런데 셋 다 좋아하는 과일이 하나 있다. 키위가 그렇다. 아이들 소화도 잘 되게 하고 각종 비타민에 항산화 효과도 좋다고 하니 동글동글 보송보송한 키위만 보면 눈길이 간다. 특히나 골드키위는 말캉하고 부드럽고 단 맛이 일품이지 않은가? 물론 초록 키위보다 살짝 비싸긴 하지만, 가끔씩 점보키위를 할인할 때면 한 봉지 가득 담아가지고 와서는 키위파티를 벌인다. 물론 요즘의 과일값을 생각하면 한번에 다 깎아내놓지는 못한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늘 밥을 먹고 난 뒤에 후식으로 과일을 챙겨주셨다. 성인들이 식후에 과일처럼 단 것을 먹는게 좋지 않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 알았다. 건강지식은 상관없이 할아버지가 계시니 꼭 과일을 올리신 건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매일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 했던 엄마가 때마다 어떤 과일이든 꼭 내어놓으시는게 나중에 보니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남편은 어렸을 때 생활이 넉넉했음에도 과일이란 걸 자주 먹은 기억이 없단다. 시댁은 경제적으로는 넉넉한 편이었는데, 일하느라 바쁘고 음식에 큰 관심이 없으신 시어머니는 과일과 우유 같은 것을 아이들에게 챙겨주시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후식으로 먹을 수 있었던 과일은 어릴 적 내가 꽤 잘 먹고 자랐다는 뿌듯함이고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키위를 많이 사날랐다. 큰아이가 늦게 집에 오면 골드키위 그린키위를 번갈아가면서 한 두개씩 큼직하게 잘라서 식탁에 올려놓고 나는 잠을 청한다. 장이 예민한 큰 아이는 내켜야 먹는 편이라, 아침에 일어나 깨끗하게 비워진 과일 접시를 보고 나는 조금 위안을 받는다. 원래도 잠이 많아 늦게 오는 아이를 기다리지 못하지만, 최근에는 새벽에 일어나는 버릇을 하느라 아이 얼굴을 볼 새가 없다. 어릴 때부터 자주 배가 아프다고 하는 아이에게 식이섬유도 먹일 겸, 수험생에게 좋다니 비타민, 무기질도 많은 키위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키위를 식탁에 얹어놓고 ‘오늘도 고생했어’의 의미를 담는다. 내 아이가 훗날 키위를 보면 혹시나 나를 떠올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