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의 폭력

정상이라는 함정

by 승환

여기 정상적으로 잘 닦인 길이 있다.

모든 이가 이 길 위를 질서정연하게 지나간다.

그런데 한 사람이 길 밖에 난 예쁜 꽃 한송이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길 위에선 보이지 않던, 형형색색의 꽃송이들이 만개한 풍경이 펼쳐졌다.

길 위의 사람들은 그 꽃들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본 것은 단 한가지,

질서에서 벗어난 ‘일탈’ 뿐이다.

그리고 그 일탈을 향해 무언의 압박이 담긴 시선과 비난이 날아든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선 바깥으로 나간 발끝이다.


간단하게 급조한 이야기지만 아주 익숙한 듯 읽힐 것이다.

[사회와 군중은 표준과 정상을 강요한다, 우리는 시선을 조금 돌릴 필요가 있다.]

라는 의미가 아주 뻔히 보이지 않는가

요 근래에 내 블로그에 뻔한 이야기들만 올라온다고 스스로도 느끼고 있지만, 이것들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우리네 일상을 ‘잠식한’ 이야기들이다.

창의력과 개성을 키워야 한다는 말은 살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책상과 침대에서 교육을 듣고 책을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는 말들이지만, 현관 밖을 나가거나 온라인 인터넷을 유람하다 보면 결국 사회의 표준에 맞추어 ‘정상’을 재단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회는 왜 창의력과 개성을 키우라고 말하고 교육할까?

표면적으로는 미래 사회의 필요성이니~ 자존감이니~ 유연성이니~ 하는 이유들을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본다면 대부분 현실적, 경제적 동기에 가깝다.

기존의 틀 위에서 새로운 가치(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그리고 차별화된 상품… 인플루언서, 디자이너, 예술가, 기획자 등 소비사회에서 개성 있는 사람을 판매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사회는 사실 ‘통제’ 가능할 정도로 차별화된 사람만 원한다.

너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인간은 관리하기 어렵고, 예측이 어렵고, 통제되지 않는다.

교육과 조직은 수백명을 관리하기 위해 표준, 규칙, 일관된 절차가 필요하고 개성은 시스템 효율성과 충돌되기에 자연스레 핍박을 받고 배척을 당한다.

결국 모순은 간단하다.

창의적인 인간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간만을 안전하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창의력과 개성을 키워야 할까?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냥 닥치고 조용히 사회의 부품으로 살아가면 편할 텐데?

사람은 ‘의미’를 먹고 산다.

자신의 존재에 이유가, 의미가 없다면… 인간은 우울증 걸려서 신경안정제를 털어먹거나, 천장에 매달 매듭 묶는 법을 연습할 것이 분명하다.

부품으로 사는 삶에서는 의미가 스스로 생성되지 않는다. 오직 외부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뿐이며, 그 마저도 나이가 차면 다른 부품으로 교체되어 의미가 사라진다.

하지만 창의력과 개성은 의미를 스스로 생산하는 능력이다. 이는 타인에게서 부여 받기를 갈망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닌,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육장에서 도축되기를 기다리는 돼지가 아닌,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내부 구조를 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력과 개성을 기르는 중인 존재에게, 사회와 군중이 표준을 들이밀며 핍박을 한다면 그 존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일단 절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금물이다.

“너는 틀렸다.” 라는 말에 “나는 옳다.” 라고 반박한다면, 관무불가침을 어긴 무림고수를 제압하려 드는 명나라 관군의 기세에 맞먹는 역풍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정면충돌은 에너지 소모만 있을 뿐
패배로 끝난다.
왜냐하면 군중은 언제나 숫자로 이기기 때문이다.

좀 유명한 예로 2차대전 당시 독일이 있다.

독일은 당시에 민족이라는 ‘표준’을 내세웠다.

모든 군중은 그 표준에 따라 폭력을 휘둘렀고, 그것은 당시 독일 내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 이였다. 심지어 독일 내에서 유대인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가 교수형 당한 독일인도 있었다.

그러니까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하책이다.

이유를 찾고, 정당성을 부여하고, 표준과 아예 대척이 아닌 평행선으로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

뭐… 사실 창의력이고 개성이고 이런 거 키우려는 인간은 알아서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창의력과 개성을 키우려는 존재를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사회와 군중이 그 존재를 핍박하려고 물타기를 할 때 참여하지 말고 중립기어를 박거나, 이 글을 기억해서

“우리의 이 여론 물타기가 사실은 폭력이 아닐까?”

하는 새로운 물타기를 만들어주면 된다.

경각심을 깨워주는 텐스맨전술을 직접 펼쳐주어도 좋지만, 그게 안된다면 그냥 닥치고 있으라는 말이다.


어 시벌 취한다.

이거 쓰면서 위스키만 세 잔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