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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DaimonCollective Oct 03. 2021

Mirror 01. 세상의 꽃을 만드는 사람들

배우 권동원


모든 곳에 비춰진 나,
내 안에 비춰지는 모든 것.



인터뷰 시리즈

Mirror


장소는 사람을 담고, 사람은 장소에 의미를 줍니다. 

미러는 인터뷰이가 직접 선택한 장소들을 함께 산책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모습과 말을 담습니다.


집 > 서울극장




배우 권동원은

자신이 원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채찍질한다.

그래서 그의 눈빛은 항상 빛나면서도 흔들린다.

그를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 눈빛만큼은 담아내고 싶었다.

드라마 '배드파파'에서 그가 맡았던 파이터(강상문) 역할은 내가 느끼는 동원과 닮았다.


코너에 몰리고 남들이 말려도 

흰 타월을 던지지 말라 외치는 사람.


나를 던질 테니 타월은 던지지 말라고.



첫번째 장소. 집

자화상
극단 활동 사진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위해 닭가슴살 스테이크를 요리했다. 최근 집을 장만하면서 요리에 취미를 붙였다고.


학생일 때의 동원을 봐왔는데, 이렇게 정리된 공간에서의 모습을 보니 새롭네요.

예전보다 삶에 질서가 생긴 느낌이에요.


맞아요. 사실 처음에는 좀 불편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전에 추구했던 삶과 예술은 질서와 안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질서로 인해서 평범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여느 젊은 예술가들이 그렇듯 제가 끔찍이 두려워하는 건 평범함이에요. 그런데 저도 성장하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예술과 예술가의 모습도 편견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에는 질서 안에서 제 삶을 변화 시키고 새로 발견했을 때 영감을 받아요.


예를 들면 음악은 작가가 부여한 일정한 템포와 음정을 연주했을 때 비로소 곡이 구성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질서를 거부하고 파괴에서 오는 무질서의 불협과 이탈을 추구해왔다고 해야 하나? 요즘에는 제가 창조한 새로운 질서 안에서 어떻게 자유로움과 야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니까요.


그렇죠.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유연하게 태세 전환해서 새로운 나의 계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지녀야 하는 덕목이자 용기인 것 같아요. 세세한 계획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변하는 흐름 속에 몸을 싣는 거죠. 예전에는 그것을 타협이라고 불렀는데 전혀 달라요. 오히려 계획이 틀어졌을 때 다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방향키를 끊임없이 맞추는, 말하자면 무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죠.


계획이 수정되어도, 도착한 목적지가 예상 밖이어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네 맞아요. 그런데 그 가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흐려지게 돼서 기록하고 리마인드 해야 해요. 제 연기 영상을 모두 모아둔 하드디스크가 있는데 최근에 다시 들여다보고 충격받았어요. 물론 얼굴도 어리지만, 눈빛도 살아있고, 무서울 것도 하나 없어 보이고, 훨씬 날카롭고 생생한 느낌, 어설퍼도 멋있는.. 지금은 어설픔이 허용이 안되는데..하하. 프로라고 불리는 모양새가 있잖아요. 상업적인 코드라고 불리는, 마켓에서 잘 팔리는 문법이요. 우리는 일상적으로 주류의 이미지 세팅을 접하고 그것을 나도 모르게 학습해요. 그러다 보면 대부분 추구하는 것들이 비슷해져요.



그래서 저는 요즘 좀 더 아마추어적인 느낌을 보존하고 잃지 않으려 해요. 일을 자꾸 놀이로 받아들이려고 애를 쓰고 있죠. '못해도 된다. 실패하자' 되뇌면서요.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만든 작업들은 스스로를 놀라게 할 작품이 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아마도 무장해제 상태가 두려워서 집요하게 계획으로 무장을 하려는 걸 거예요. 계획은 한마디로 내 주장의 설득이자 논리이거든요. 저는 계획을 세우고 또 가능한 버리려고 노력을 해요.


보통 계획을 세울 때 자신이 세운 계획을 따르길 원하잖아요. 1+1은 2가 되어야만 하는 계획, 모든 것이 차곡차곡 쌓여야만 하는 계획이요. 그런데 이 루트를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1+1=2가 아니더라도, 1.3이나 1.4의 영역을 가보려 하는 사람들. 절대량으로 따지자면 열등해 보이더라도 존재의 질량의 영역에서 본다면 수치상의 우위가 없어요. 그 영역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놀라게 할 만한 작품.. 그 작품들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주세요.


대학교 2학년 때쯤 세월호가, 그리고 3학년 때 국정 농단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 4학년 때 연극계 미투 사건이 있었어요. 이 충격적인 세 가지 사건들에 영향을 받아서 여러 작품들을 만들었어요. 그전엔 사회에 무관심했고 큰 아픔도 없었어요. 그러다 세 가지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멘탈이 다 나가버렸죠. 특히 연극계 미투 사건은 그 당시 저에게 가장 큰 아픔이었어요. 그들을 보면서 연극의 꿈을 키워왔는데, 내가 쫓아온 꿈이 무엇이지?라는 회의감이 들었죠. 제게 꽤 힘든 시간을 보냈던 시기, 서 있기조차 힘겨운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연극이 저에게 도피처가 되어주었고, 그곳에서 위로를 받았는데 그 탈출구를 잃어버린 느낌이었죠.


그 이후로는 극장이라는 깜깜한 어두운 공간이 답답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거리로 나가서 거리극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서커스 퍼포머로 꾸준히 활동 중인 ‘김선혁’이라는 친구와 '매거진'이라는 집단을 만들었어요. 매거진은 잡지라는 뜻도 있지만 총이라는 뜻도 있어요. 월간 윤종신에서 모티브를 얻어 한 달에 한 번, 그 달에 나를 사로잡는 사회적 이슈로 한 작품을 만들어 거리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거예요. 이때 정말 재밌는 실험들을 많이 했어요. 바라보기만 하고 방관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담긴 <Look, See, Observe>, 4.19 혁명의 뜨거웠던 청년들을 기리는 퍼포먼스 <뜨거웠던 그날> 그리고 예술대학 학과 통폐합에 저항하는 <위대한 독재자> 퍼포먼스까지. 이 공연 때문에 여기저기 불려 다녔는데 그때는 무서울 것이 없었고 '나는 예술가’라는 자긍심에 차있었어요. 그렇기에 당당했고요. 덜 익어서 뜨겁고 떫었죠. 하하하.



두번째 장소. 서울극장

동원의 떨림의 장소는 극장이다. 오늘 관람할 영화는 '중경삼림’
왜 오늘 중경삼림을 보고 눈물을 흘렸나요?
영화가 좋고, 극장이 좋고,
 양조위의 눈빛이 너무 좋아서요.
 저는 빛나는 배우들의 눈을 쫓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배우들의 눈빛을 사랑하지만,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면 그 광대의 눈빛이 가난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굉장히 괴로워져요.

그런데 오늘 중경삼림 속 양조위처럼
 빛나는 눈빛을 마주하면,
 다시금 저를 안내하는 시그널이 느껴져요. 그리고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새로운 장르가 되고, 인간이 되고 싶다고 저한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새로운 관점은 어떻게 해서 가능할까요?


그건 체험에서 나오는 관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과 유튜브로 인해 손쉽고 빠르게 지식이 오픈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지식을 다루게 되었어요. 헌데 안전한 도시 한가운데 앉아서 핸드폰으로 모든 지식들을 접하다 보니 체험에서 오는 지혜들이 부족해요. 이건 실제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걸 머리에 두고 있어서 현실에서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그래서 점점 감각이 둔해져요. 감각은 체험에서 나오고 몸으로 개발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컴퓨터로 예를 들면, 하드웨어는 한참 떨어지는데 소프트웨어만 고사양이어서 호환이 안되는 거죠. 그러면 오히려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을 할 수 없어요. 서로 상호보완되어야 하죠. 저 역시 그런 시대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말과 논리, 계획에 집착하기보다는 비논리와 행동, 도전에 삶의 포커스를 두고 살아가려 합니다.


이건 제 연기론과도 연결이 되어요.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스스로를 무장해제 상태로 만드는 것이에요. 무장해제 상태가 되려면, 가장 두렵고 보여주기 싫은 것부터 보여줘야 해요. 가장 보여주기 싫은 그것이 그 인물을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한 사람이 맨몸으로 저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온다면 어느 누가 단숨에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요? 우선 궁금할 거예요, 누구인지, 뭘 하는 것인지,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지.. 이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방아쇠가 당겨질지를 결정하겠죠.


사람은 가장 보여주기 싫은 그것을 감추고 보완하기 위한 소프트웨어의 집합체로 형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방어기제를 통해서 절대로 그것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논리 시스템이 머리에서 엄청나게 돌아가요. 그것에 속지 않아야 돼요. 그것에 속으면 뭐든 자기가 옳게 돼버리거든요. 그 기준에 맞춰서 모든 정보를 왜곡시켜버려요. 그것을 보완하려면 합당한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 체험은 모험에서 채워져요. 나 이상의 환경에 놓였을 때. 쉬운 예로는 여행이나 안 해본 일에 도전하는 것 등이 될 수 있겠죠.


오늘 인터뷰 제목 정해주시죠.

세상의 꽃을 만드는 사람들.



photographed and written by 

Yu Jin



@dong_dong_y


#미러 #아티스트 #더다이몬콜렉티브 #the daimon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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