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DaimonCollective Oct 04. 2021

Mirror 03. 존엄과 호기로움 사이

브랜드디렉터 차정훈


모든 곳에 비춰진 나,
내 안에 비춰지는 모든 것.



인터뷰 시리즈

Mirror


장소는 사람을 담고, 사람은 장소에 의미를 줍니다. 

미러는 인터뷰이가 직접 선택한 장소들을 함께 산책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모습과 말을 담습니다.


집 > 한양대병원 > 인왕산




몇 번의 여름을 만날런지,

정훈은 분명 모른다.

그가 앓는 병이 앞날을 흐린다. 모호하게 만든다.

매니악과 대중

존엄과 호기

그리고 갈망과 초연 사이를.


“Surrender what you desire.

You will know nothingness.”


그가 얼마 전에 런칭한 패션 브랜드의 슬로건 중 하나이다.

확신을 버리면 모호함이 길이 된다.




첫번째 장소. 집/작업실


얼마전에 브랜드를 런칭하셨는데 '싱글마인디드' 브랜드를 통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가고 싶은 브랜드예요. 작업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브랜드. 싱글마인디드는 외골수라는 뜻인데요, 특히 싱글마인디드한 크리에이터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싶어요. 사르트르의 ‘앙가쥬망’ 개념처럼, 현대엔 모든 사람들의 참여가 예술을 완성해요. 모든 사람들이 크리에이터죠. 서로 결이 맞닿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존엄하고 소신있게 사는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존엄이 포인트예요. 내가 누구한테 뭘 받아 처먹은 것도 아닌데 왜 굽실거리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누가 뭐래도 내 길을 간다. 나는 나다. my way.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상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개개인들의 생각들이 모여 향유하는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것이 브랜드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해요. 나이키를 입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로고 자체가 승리의 여신이잖아요. 하하 계속 세뇌 하는거죠. 브랜드가 나를.


싱글마인디드에서 사용하는 독특한 개념들과 심볼들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의미인가요?


고군분투 하지 않는 크리에이팅은 없어요. 외골수, 수행자, 물고기 등은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심볼이에요. 이름을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지인에게 물어봤어요, 우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우리 브랜드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그랬더니 외골수 같다고 얘기를 하시더군요. 남들 테크를 타지 않고.. 외골수를 영어로 번역하니까 'single minded' 라고 나왔어요. 재밌었어요. 어렵지도 않고 단어가.  
 
 지금 로고는 그래서 나온거예요. S와 M을 겹쳐서 저런 심볼이 나왔죠. 한국적인 요소들을 넣기로 방향성을 잡고 한국 조각품을 많이 찾아보던 중에 목어가 너무 재미 있었어요. 한국에는 나무 조각이 많아요. 목어는 불교 미술에 자주 등장 하는 형태구요.  
 
 한국 미술에 저 용머리 물고기가 많은 이유를 찾아봤더니,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기에 끊임없이 수행하는 수행자를 상징한다고 해요. 그래서 싱글마인디드의 마스코트로 삼았죠.  저도 눈을 감기 싫거든요.



시각화하시는 대상과 방식이 흥미롭네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차용하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어요. 더 근원적인 것들을 가져오고 싶기는 해요. 개념들을 녹여내고 싶고. 예를 들어 한국 건축의 미는 차경(借景 : 자연의 경치를 빌리다) 같은 것 이잖아요? 미국 건축은 폭포가 예쁘면 중간에 건축물을 세우는데, 한국은 창문을 비롯한 프레임을 통해 경치를 차용하죠.  
 
 차경... 담기 어렵죠. 예술의 전당도 갓 모양을 형상화 했다고 해요. 88올림픽같은 경우는 달항아리 모양을 가져왔고. 그런 선적인 요소들을 가져오지만 차용이라 뻔한 직설로 보여요. 저는 아직 제 디자인이 뻔하다고 생각해요. 개념들을 더 녹여 담고 싶어요.


형식만 따 오는 수준을 벗어나, 어떻게 한국 정서와 개념을 담을 수 있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을지가 고민이죠.


시대정신을 담은 현대화가 필요해요. 물론 이 부분에 있어 대단한 디자이너 분들도 정말 많으시죠. 그렇지만 문화의 말초신경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까지 퍼져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하고 있어요.
 
 원래는 도자기와 의류브랜드로 시작했어요. 최종 목표는 모든 것을 담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였거든요. 그래서 도자기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는데, 저는 좀 투박한 자기들을 좋아해요. 고려와 조선 자기들을 예시를 들자면, 고려 때는 정교한 디테일이 살아있어요.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에 분청 사기들은 빠르게 ‘막’ 만들어야 했다고 해요. 모든 살림이 불탔기 때문에 급하게 만들어서 유통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급하게 만들어진 분청 사기들을 가치 있다 말해요. 투박함에 가치를 두는 것이죠.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개념이 있어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백제 건축물을 보고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남긴 말이에요.
 이러한 개념을 어떻게 시각화 할 것인가.

 이 시대 한국이 풀어야할 과제라 생각해요.
 저도 그래서 이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형태와 내용을 연결한다.

늘 어려운 과제죠.

전통적인 요소들을 많이 차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늘 서양 복식에 대한 반골 기질이 있었어요  지금 입는 셔츠나 자켓은 필요 없는 카라들을 쓰잖아요. 정말 추우면 깃을 세워서 다니지만, 기능적으로 도태한 느낌을 받았어요. 깃이 없는 옷들을 찾아보니 한복이 보였어요. 왜 결혼식장에서 예복으로 입는 옷은 한복이 아닌가. 한복을 입어도 지나치게 한복스럽게 입어요. 저는 한복을 기성복처럼 입고 싶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고등학교 졸업식 때 한복을 입고 갔어요. 다들 양복에 코트를 입고 갔는데 저는 우리 것이 있는데 왜라고 생각한거죠.  
 
 촌스럽지 않게 한복을 입고 싶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입었으면 좋겠고.


그런데 ‘촌스럽다’는 기준이 뭘까요?


저는 그렇게 정의를 해요. 현대에 적용되지 않는 것. 한복을 보면 소재부터 지금 입지 않는 소재들로 많이 만들어요. 견소재나 마소재 같은 것들. 기성복 소재들은 보통 청바지나 시어서커며 면이며 이런 것들인데, 왜 실크 소재를 계속 쓰는지 모르겠어요. 한복이 가진 분위기를 만들어주지만 제가 생각엔 시대정신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요. 같은 맥락으로 셔츠 카라나 깃들도 시대정신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해요.  한때 기능을 가졌지만, 지금은 스타일의 고정관념으로 굳혀진 것들이죠.


고정관념이 허물면서 이전의 틀에 의해 딱 떨어지지 않는 것들이 매력이 있어요.

저는 좀 애매한 것들에 끌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중간하거나 중성적인 것이 매력있다고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유니섹스의 시대를 살고 있어요 우리는. 저는 한국의 요지 야마모토가 되길 원해요. 요지 야마모토가 처음에 파리에서 이슈가 된건 여성적인 실루엣을 없앴기 때문이에요. 유려한 실루엣을 없애고 직각으로 떨어지는 실루엣을 여자들이 입으면서 굉장히 매니시하고 중성적인 것을 이끌어갔거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디자이너도 요지 야마 모토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모델을 남녀 페어로 가져가요. 젠더가 중요한가? 옷은 옷인데. 그리고 남자들이 입었을 때랑 여자들이 입었을 때, 다른 맛이 나는 것이 재미라고 생각해요.


애매한 것들이 예뻐요, 명백한 것보다.


애매한게 오묘할 수 있죠. 저도 그 지점에 많이 끌리는데, 디자인을 하다보면 애매한 것을 가장 피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저 또한 유진처럼 오묘한 매력을 좋아해요. 그게 깊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싱글마인디드의 브랜드 철학은 ‘깊이’에요. 깊이에 대한 강박이 있거든요. Paranoia about depth.




두번째 장소. 한양대병원


루푸스 난치병을 정훈씨의 단어로 정의를 한다면?


블랙 스완이죠. 의외성. 병 자체가 그래요. 시시각각 변해요. 처음에는 탈모나 피부 증상도 없었고, 관절통만 있었는데, 점점 다른 증상들이 하나씩 더해졌어요. 심장도 탱탱볼처럼 커지고 아파오네요. 루마티스 관절염은 자기 면역체계가 관절을 외부의 적이라고 인식해서 공격을 하는 거에요. 근데 루푸스는 장기, 피부, 중추신경, 머리 등에 전부 공격이 갈 수 있어요. 군대에서 첫 증상이 왔어요. 레이노 증상이라고 해서 손 색이 변하는 증상이었어요. 아예 노란색이 돼요. 마디가 잘린 듯이. 동상 초기 증상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면역 때문이라는걸 알게 됐고, 피검사를 했더니 루푸스 확진을 받았어요.


2014년, 23살. 8년 전이자 벌써 9년차네요.



전에 이 병에 대해서, '이건 나의 컨디션이자 환경이고, 평생 다독여서 잘 데려갈 모래주머니 같은 친구'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각자 다른 컨디션과 환경을 가지고 살죠.

정훈의 컨디션은 아까 언급했던 '앙가쥬망', 창작물로써의 삶을 만드는데 어떤 영향이 있나요?


지금 아니면 못할 걸 아니까 좀 더 추진하게 되죠. 상태가 언제 나빠질 지 모르니까. 아프기 전에 해야 한다. 뒤에 아플 수 있으니 무리를 하게 되고.. 근데 또 무리를 하면 악순환에 빠지게 되요. 무리를 하지 않고 기대치의 80퍼센트를 하면 선순환에 빠지죠.


좀 더 명확해지려고 해요.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 샷일 수 있으니까. 몇 번의 여름이 남았을까 생각해요. 몇 번의 여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갈까. 서른 번이지 않을까.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세번째 장소. 인왕산


슬로건이 독특하네요.


“Surrender what you desire.

You will know nothingness.”


공(空)으로 가는 거에요. 불교사상인데요, 갈망과 갈망하지 않음 사이에 균형이 온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뭔가를 절실히 원하면 이뤄진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럴 때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모든 것에 초연할 때는 평안한 궤도에 오르고 싶어요.  


홀리 마운틴이라는 영화에 이 문구가 나왔어요. 조도로브스키가 만든 이 영화는 정말 괴랄해요. 70년대 작품인데,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윤리적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는 수준이죠. 정말 매니악하고 컬트적이에요. 지금 나와도 여러 의미에서 독보적일 것이라 생각해요.



고등학교 때 영화광이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전공으로는 영상을 선택하셨구요. 영화나 영상은 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일단 영화를 많이 봤던 이유는 예술을 하려는 사람으로써 인풋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해야한다 생각한거죠. 제가 영화에서 가장 많이 보는 건 미장센이에요. 항상 붉은 색이 들어가야해요. 블러드죠. 박찬욱 감독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항상 피가 튀어서에요. 시각적으로 재미있어요. 실상은 너무 끔찍할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무뎌지고 색이 너무 예뻐요. 피는 곧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하니까요. 왕가위 감독도 그래서 좋아해요. 왕가위 감독 영화는 어떤 장면을 스틸컷으로 써도 화보가 된다고 하죠. 프레이밍이 엄청 좋고 시각과 청각으로 특유의 감성을 이끌어내는 것 같아요.


특히 왕가위 감독 영화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별게 없어도 영화 같고, 감수성 있고, 낭만적이었던 내 인생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되는거에요.

맞아.. 삶이 저럴 수도 있었데.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들어요.


제 브랜드를 통해 하고 싶은 얘기도 그래요.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이렇게 살았던 때도 있다. 사이비죠. 하하. 감성을 주면서 이렇게 살고 싶게 만드는 거에요. 롤랑바르트 책에 나오는 푼크품 개념을 좋아해요. 푼크툼은 제 경험과 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고 스투디움은 대중의 취향이죠. 책에서는 30:70이 푼크툼과 스투디움의 황금비율이라 하는데, 제 푼크품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거에요. 푼크품으로 대중을 이끌고 싶어요.


그런 인물로 한국에서는 봉준호와 빈지노가 떠오르네요. 대중화 전략을 쓰지 않고, 자기만의 것을 대중화 시켜서 정말 멋져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봉준호가 인용하고 증명한 것. 풍크툼으로 스투디움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어요.



정훈이 말하는 존엄과 소신이 그럼 모습이겠지요? 

‘존엄하다’는 표현에 대해서 더 말해주세요.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yes라고 할 수 있는 것이요. 반골 기질 말고. 스스로 엄청난 검증을 통해 그것이 맞으면 그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틀릴 수도 있고 또 모두가 옳을 수도 있죠. 판단을 내릴 때 휩쓸리지 않는 태도가 존엄인 것 같아요. 존엄과 호기로움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데, 패기가 넘치거나 객기가 발동하면 몸이 탈나요. 몸으로 나타나고 아파와요. 아픔이 너무 커지면 삶이 고꾸러지고. '나 이정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안되는거야?' 라고 자만하다보면, 삶이 곤두박질 치더라구요.


불교에 나오는 화신이라는 개념을 좋아해요. 네가 느끼는 것도 아바타, 내가 느끼는 것도 아바타. 너의 아바타가 느끼는 것이니 너의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바세계를 살아가라. 사바 세계도 고통받는 삶이라는 뜻이잖아요. '현실은 원래 힘든 세계다'라는 개념이 위로가 돼요. 



오늘 인터뷰 제목 정해주시죠. 
 
 넘침과 모자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는 오묘함을 찾아서.




photographed and written by

Yu Jin



@singleminded_cha

@singleminded_official


#미러 #아티스트 #더다이몬콜렉티브 #TheDaimonCollective

#브랜드 #패션 #디자인 #전통 #한복

작가의 이전글 Mirror 02. 녹는-점,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