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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Oct 23. 2022

04. 한국 정원에 서먹함이 느껴지는 이유

트렌브랜_내가 만드는 트렌드 브랜드 공식

  이 글을 준비하는 시기에 마침 병자호란에 관한 책을 읽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말머리가 무거워진 것 같습니다. 팔각정과 정자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정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정원은 한옥과 하나로 붙어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정원은 마당에 그늘을 만들어 우리에게 쉴 자리를 만들어 주고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고요하고 정적으로 보이는 정원에서 조차 통한이 서린 역사의 고달픔과 서글픔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작가 김종길의 표현처럼 한국 정원의 서먹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길도의 원림(園林)은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고산 윤선도가 겪은 상념과 회한이 그대로 남은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대의 피해자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의 삶은 곡절이 많았습니다. 그의 짧은 벼슬 생활과 함께 세번의 긴 유배 생활이 보여주듯 그는 모략과 비방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무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 놓고 시끄러운 세상과 작별하게 된 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를 구하기 위해 강화도로 향하던 중 왕이 칸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였습니다. 그는 개탄하며 말을 돌려 속세와 떨어진 제주도로 향했고 그 길에서 만난 보길도의 수려한 풍광은 그의 고단했던 삶을 달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윤선도에게 정원은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삶을 위로해 주었고 교감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정원은 그에게는 낙원이나 다름없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정원에 서먹함이 느껴지는 데는 자연의 것을 가져다 만들면서 보여지는 평범함과 모자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처음의 서먹함이 시간이 지남과 함께 매력을 더해 가는 데는 억지나 재촉이 없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정원의 담장을 낮게 두르면서 주변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게 한데는 정원을 소유욕으로 채우지 않으면서 자연적으로 누리게 된 혜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도 정원 너머에 있는 풍경까지 바라보고 느끼기 위해서는 약간의 여유와 기다림이 필요할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정원에서는 앉아서 사색의 시간을 보내고 낮은 대화를 이어가기에 알맞은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그래서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를 노래한 풀꽃시인 나태주는 공주의 문학관에서 정원에 풀꽃을 직접 키우며 풀꽃을 닮은 시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원을 가꾸는 것에서 아름다운 시를 발견해 내는 것이 시인의 모습이라면, 시인이 만든 시집에서 영감을 받아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가꾸어 가는 것이 정원가의 삶일 것입니다. 한국의 1세대 정원가인 정영선은 끊어진 정원의 맥을 잇고 우리 것으로 키워 내는데 시집에서 그 영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의 미학과 한국적인 것들을 발견해 낸다고 합니다. 비싼 나무에 집착하며 아파트의 등급을 매기고 비교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풀 한 포기, 꽃 한송이, 아침 햇살에 돋아난 이슬 방울에서도 가치를 느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정원이 절망에 잠긴 사람의 시름을 풀어주고, 숨어서 울 곳을 만들어 아픈 마음을 달래 줄 수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의 깊이는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일본 정원이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닮은 둥근 눈을 가진 사슴과 어울린다면, 중국 정원은 궁녀 같은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후투티새가 잘 어울려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문뜩 드는 생각으로 한국의 정원에는 복슬한 털에 두발을 들고 서 있는 다람쥐가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수줍게 피하며 자리를 옮기면서도 쏜살같이 줄행랑을 치지 않고 우리 주변에 머무는 모습도 친근함을 줍니다. 이렇듯 우리의 정원은 누가 들어가 가꾸어도 어색하지 않는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위적으로 가꾸어져도 좋지만 생겨난 땅에 걸맞은 풍경을 담으면서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한국적인 정원의 모습이고 아름다움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보길도 원림(園林)은 윤선도가 속세와 떨어진 제주도로 가던 길에 만난 곳으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위로해 주는 낙원과 같은 곳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 www.wando.go.kr/tour/attraction/main_tour/won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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