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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Mar 01. 2023

03. 새벽이면, 기억은 낙엽 소리를 낸다

[에세이] 그때 꿈을, 다시 꾸었다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는 날마다 수많은 일들이 끊임없이 도착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인생은 주어진 50 문제를 다 풀어야 하는 시험이나 숙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골라내 열심히 답을 찾는 사람에게 신은 더 큰 기회를 주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 마리아 포포바(Maria Popova)

 


  깊은 새벽녘 나는 추위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하얀 빛의 가로등만이 바깥을 지키는 듯 조용했다. 거실 발코니 앞을 지키고 있던 커다란 정원수의 긴 가지를 몇 일전 아파트 관리실에서 잘라 내면서 그 서먹함은 더해진 것 같다. 아직 바삐 시간을 재촉하며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조용한 이 시간을 기다려 차도를 건너 울타리를 넘는 고양이도 없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인지 하늘마저 가로등 높이로 자세를 낮추면서 바깥은 유난히 좁고 낯설게까지 느껴진다. 무표정해진 얼굴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나는 두 손을 가져다 천천히 얼굴 이곳 저곳을 문질러 보고 달래어 본다. 


  다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번엔 몸을 일으켜 침대를 빠져나온다. 암체어로 자리를 옮겨 앉아 있으니 젊었던 나의 추억이 문뜩 떠올랐다. 라떼의 소재로 알맞을 정도로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이지 눈부시고 찬란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20대는 휘몰아치는 감정과 싸워가며 보낸 시간이기도 했고, 꿈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수많은 호기심들이 나를 이끌며 이곳 저곳을 뛰고 누비게 했고 자신감이 있어 지치지 않고 이일 저 일을 하게 했다. 그때의 일들을 모두 옛모습 그대로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가끔 회상하며 다시 웃고 다시 울고 하게 된다. 이렇듯 쌓인 기억들은 마침내 나무가 낙엽을 떨어 뜨리 듯 뚝뚝 소리를 낸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를 추억하는 것으로 현재를 위안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으로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마음을 멈추고 또 진정시키려 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을 멈추고 멍 때리며 보내는 시간이 요즘 들어 많아진 것 같다. 50으로 숫자가 바뀌면서 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 것 같다. 현실을 뛰면서 보내는 시간보다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실 여유보단 심란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내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바깥은 멍 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속은 온갖 반란들이 싸워 대고 있는 듯하다. 침묵이긴 하지만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모습이 틀림없다. 


  이젠 나의 셈법까지도 예전과 다르게 변하는 것 같다. 언제부터 셈이 무디어지면서 계산에 귀찮음이 공식으로 더해졌다. 낙관과 비관, 옳고 그름으로 양분해 오던 것들을 이젠 낙관과 옳음에 더 후한 점수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따뜻한 인정에 더 많이 마음을 기울이고, 팔을 내밀어 상대가 공허함이 들지 않도록 막고 달래기도 하고, 한마디의 말보다 서로의 술잔을 부딪히는 것으로 속마음을 대신하기도 한다. 돌아보면 나는 불평으로 지난 현실을 바라보고 대했던 것 같다. 오르막을 만나면 불평했고, 내리막해선 다시 있을 오르막을 걱정하느라 즐기질 못했던 것 같다. 그때의 발걸음은 사실 가볍지 못했다.


  여름은 장마와 무더위가 하나로 합쳐진 계절이다. 여름은 장마나 무더위 둘 중 하나로는 제대로 정의 내리기가 힘들다. 만약 두가지가 합쳐지지 않은 상태로 한가지만으로 여름을 표현하게 되면 여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수개월 동안 비가오지 않아 고통으로 쩍쩍 갈라진 강 바닥의 모습, 그리고 순식간에 내린 폭우로 도시 전체가 물바다가 되어 버리는 것은 여름이기는 하지만 정반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같은 것 안에도 반대의 모습이 함께하며 공존한다. 도리어 이것을 억지로 맞추려 하다 보면 전혀 다른 것이 되기도 한다. 처음엔 기를 띄던 것이 이내 기운과 맥박 모두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마치 설명과 그림이 함께 있던 설명이 잘 되던 백과 사전의 내용이 공란으로 바뀌어 버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여름은 장마와 무더위가 함께 놓여야 하고, 산과 바다, 도시와 시골, 강가와 들판이 함께 놓여야 진짜인 여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속에 저마다 한 폭의 꿈을 품고서 살아간다. 그래서 현실은 이 꿈을 꺼내다 직접 대보고 가져다 놓은 공간이기도 한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마주하며 씨앗을 뿌리기를 이어간다면 꿈과 현실을 만나는 장소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마음속 한 폭의 그림이 실체로 눈에 보이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가꾸지 못하거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데는 우리가 느끼는 초조함 때문이다. 현실을 불평하는 것도 이 초조함이 앞서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는 초조함 대신 설렘과 같은 것들이 조금씩 자라나게 해보고 싶다. 다같이 스스로를 조급하게 만드는 시계를 벗어 버리고 대신 꿈이라는 그림을 현실에 꺼내고 펼치는 연습을 이어가면 좋겠다. 


> 이미지 출처 : https:// kddandco.com /2014/05/27/scottish-bluebe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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