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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Apr 15. 2023

01. 피라미로 시작하는 친구 이야기

[에세이] 친구, 물고기 그리고 저수지

나의 친구 이야기는 피라미로 시작된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까맣게 반짝이는 눈을 가진 친구는 TV속에서 보던 타잔이 내 앞에 나타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강둑에서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기도 하고 다리 위해서 목을 내밀어 강물 속을 유심히 바라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강가로 내려가 강물 바로 앞까지 갔다. 나는 그곳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강물에 햇빛을 받으며 서 있었고 조금 전 내린 소나기로 강은 더 푸르게 보였다. 그 때문인지 친구는 더 눈부시게 보였다.


내가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물가까지 나온 데는 그가 잡은 물고기를 보고 싶어서였다. 반바지와 반팔 차림을 하고 그는 강줄기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가 잡은 물고기는 강가 커다란 깡통에 담겨 있었다. 나는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그렇게 잡힌 물고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내가 한걸음에 달려가 그의 물고기를 들여다본 것은 아니었다. 멀찍이 한참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더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중에 서야 용기를 낸 것이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그곳까지 가 있었다는 표현이 더 그럴싸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물가로 다가간 날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친구와 물고기를 볼 수 있었다.


강가에 놓아둔 깡통속에는 그가 잡은 물고기들이 있었고 나는 여기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빠끔히 얼굴을 내밀어 깡통속을 들여다보았다. 물고기들은 한데 모여 한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꼭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강둑과 다리 위 멀찍이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본적은 있지만 이렇게 한 뼘 거리에서 물고기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고기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한참을 보다가 조용한 인기척에 나는 그제야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친구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두 손에는 새로 잡은 물고기가 들여 있었다. 친구는 웃는 얼굴로 한참동안 조용히 나를 기다려 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조금 뒤로 물러서자 그는 손에 있던 물고기를 깡통에 넣고는 다시 강으로 갔고 물고기 잡기를 이어갔다. 


그는 커다란 돌 사이에 천천히 손을 움직이며 물고기를 찾았다. 마치 물고기가 알아서 친구의 손으로 들어오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이제 깡통속의 물고기가 아닌 그가 물고기를 잡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친구는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물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전과 달랐다. 친구는 잡은 물고기를 깡통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걸 내게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분명 “가지고 싶으면 너 줄게”하는 목소리였다. 마치 그가 내게 질문을 한 듯 나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을 내밀어 물고기를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충동을 참고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는 오래되긴 했지만 조그만 깡통을 주워서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잡은 물고기를 내가 들고 있는 깡통에 물과 함께 넣어 주었다. 피라미였다. 나는 신이 나서 그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은 채 집으로 향했다.


높다란 제방을 걸어올라 뚝방길을 걸었다. 나의 모든 신경은 물고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걸음에 물이 쏟기지 않을까 물고기가 놀라 튀어나오지 않을까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을 담아 걸었다. 그런데도 깡통 속의 물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거의 중간쯤 왔을 때는 물이 넘치지 않게 천천히 걸었음에도 깡통속의 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물밖으로 드러나면서 물고기 또한 살려 달라 요동치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고 나중엔 달리면서 코를 박고 물고기를 살펴야 했다. 조급함에 마음은 계속해서 타 들어 갔다. 어린 마음에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물고기는 물에서만 살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 내게 깡통은 모레시계와 다를 게 없었다. 이내 깡통속에 있던 모든 물이 사라졌고 물고기는 이제 마지막 몸부림을 처댔다. 물고기의 마지막 몸부림은 나의 심장을 보는 듯했다. 나도 물고기도 이젠 남은 시간이 없어 보였다. 


내 머리속은 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달리는 내내 머리속에는 집마당에 있는 우물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집까지는 아직 몇 분의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한여름의 찌는 더위와 땀으로 미끄러워진 샌들은 울통불통한 비포장길을 달리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때 길 위에 소나기가 만들어 놓은 커다란 물웅덩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이것이 실수였음을 조금 후 알게 되었다. 나는 물고기가 들어 있는 깡통을 바닥에 내려 놓고 깨끗해 보이는 물을 손으로 퍼 담았다. 열기로 물이 데워졌음을 느끼긴 했지만 나는 의심을 하지는 않았다. 갈증에 시원한 물이 최고겠지만 따뜻한 물도 차선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깡통속에서 몸부림치던 물고기들이 순간 움직임을 멈추더니 하얀 배를 뒤집고 물위로 떠올랐다. 정말이지 눈깜짝할 순간이었다. 생각해 본적 없는 결과였기에 나는 그 장면을 한참을 멍하니 바라봐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깡통을 그대로 둔 채 나는 공허하게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혹시 친구가 물고기에 대해 물으면 어떡하지 많이 걱정을 했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일은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비밀이 되었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강가에 나가지도 친구가 물고기 잡는 것을 보러 가지 않고 피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처음 만났다. 친구는 물고기에 금손이었고 나는 물고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 이미지 출처: https:// www.pexels. com/ko-kr/photo/alam-air-hutan-pohon-5667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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