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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May 19. 2023

08. 우연히 만난 것에 감사하며~

[에세이] 친구, 물고기 그리고 저수지

긴 시간이 지나 혼자서 다시 찾은 친구의 고향 마을은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매년 낙동강 지류에 홍수 피해가 심해지는 상황에 국가적 사명이 더해지면서 미래 자원인 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댐이 건설되고 있었다. 근처에 다다르자 나의 기억이 내 가슴보다 앞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공사 준비를 위해 좁았던 마을길이 넓게 확장되면서 이곳이 다른 곳일지도 모른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공사로 인해 초입을 막아 놓아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먼지와 함께 넘어오는 기계음이 그곳에 남아있던 과거의 기억을 달아나게 하는 듯했다.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대형 포크레인이 산자락 여기저기를 움직였고 덤프트럭은 여기서 나오는 돌과 흙을 다른 곳으로 실어 나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옛날길이 없어질 것에 대비해 멀리 보이는 두개의 산봉우리에 다리를 놓는 공사도 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게는 콘크리트의 웅장한 구조물들이 이곳 골짜기와는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물이 가득 찬 댐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나는 그제서야 이곳이 거대한 바다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음을 깨달았다. 순간 아쉬움이 나를 툭툭 치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과거의 추억들이 나의 바램과는 별개로 변하고 사라질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공사로 발갛게 속살을 들어낸 친구의 마을과 산자락에 온 신경을 집중했고 최대한 많은 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분명 다음번엔 이것들도 댐 속에 잠겨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운명은 참 쉽게 바뀌고 또 쉽게 결정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이 내게는 운명이라 하기보다 우연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우리가 태어나서 자랄 때를 보면 부모님을 따라 이동하고 살게 되면서 친구며 학교가 결정되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우연이라 할 수 있다. 이 일은 마치 찰스 다윈이 비글호에 오를 때와 비슷해 보인다. 그가 탄 비글호 역시도 명확한 계획이나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떠난 항해가 아니었기에 다윈 역시 어린 아이처럼 어떤 우연과 마주하게 될지 알지 못했다. 비글호가 갈라파고스로 향했지만 그때까지 만해도 종의 기원과는 어떠한 연결 고리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이것을 우연으로 바라보면 한 신부가 우연한 기회로 한 배에 우연히 올라탄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탄 배가 우연히 한 섬에 도착해서 우연찮은 다윈이 그곳에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또 정말 우연찮게 이것을 글로 쓴 것일 수도 있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하는 것일까? 이것은 내가 간직하고 싶은 것에 대한 소망이 아닐까? 아니면 잊혀지기 싫은 것에 대한 나의 바람이고 간절함은 아닐까? 내가 느끼는 기억이라는 것은 마치 시계와 시간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시계가 현실의 지나가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라면 시간은 머리속에 남아 있는 나를 두드리고 흔들어 깨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은 옛날 그대로 한곳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새롭게 각색되고 창조되어진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영감을 받기도하고 새로움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억이 바뀌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꿈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꿈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꿈에 대해 초심을 지키면서 동시에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그리워하는 것이 있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거대한 시계의 바늘을 꺼꾸로 돌리고 또 지구가 자전하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서라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 노력할 것이다. 모든 게 되돌릴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고 다 부질없는 망상인줄 알면서도 우리는 잃어버리거나 놓쳐버린 시간들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분명 우리의 기억에는 다시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가치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과거 투명하게 웃던 친구의 모습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친구와 물고기도 잡고 수영도 같이 해보고 싶다. 나는 친구와 저수지를 하나로 묶어 기억할 것이다. 별들을 바라보듯 나는 저수지의 반짝임을 보면서 어릴 적 친구를 기억할 것이다. 그을린 얼굴에 해맑게 웃던 친구는 이제 중년의 모습으로 변해 저수지 대신 도시의 높다란 빌딩들 속을 유영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내가 친구와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듯 현실 깊숙이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기를 꿈꿔 본다. 내가 반짝이는 친구와 저수지를 우연히 만난 것에 감사하며~ 


> 이미지 출처: https:// twitter.com /spann/status/1310755051468738566/phot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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