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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May 14. 2023

07. 어른들의 저수지

[에세이] 친구, 물고기 그리고 저수지

친구와 몰래 저수지를 가본적은 있지만, 내게 공식적으로 그러니까 합법적으로 어른들과 저수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봄과 가을이면 학교와 가까운 사찰로 소풍을 갔다. 그래서인지 소풍이라는 설렘과 달리 장소는 설렘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의 소풍도 아무것도 바뀐 것 없이 그대로 시작되고 반복되었다. 우리는 거대한 개미 군단이 소풍을 가듯 선생님들의 안내를 따라 병정 개미인 6학년을 선두로 긴 줄을 만들어 이동했다. 차도를 따라 양쪽으로 두줄로 나눠선 우리는 똑 같은 곳을 가면서도 좋아서 몸은 신이 났고 목소리는 달아올랐다. 평상시 같으면 긴 대열이 한번의 멈춤도 없이 사찰을 통과해 위쪽의 넓은 들판으로 곧장 갔지만 그날은 분명 많이 달라 보였다. 학교에서 출발하는 것도 많이 늦었고 사찰 입구에선 선두가 들어가지 못하고 멈추어 선 것이다. 선생님들이 분주하게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더니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행렬은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변화가 일어났다. 행렬의 선두는 예전과 동일한 코스로 움직였지만 뒤쪽의 반정도는 사찰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내가 속해 있던 후미는 사찰 옆으로 난 개울길을 따라 올라 갔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동화 같은 풍경의 조그만 마을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다. 이렇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저수지였다. 그곳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고 맞은편에는 조그만 마을이 보였다. 저수지 제방 위에는 수영금지라 적힌 안내판이 칠판만양 붙어 있었고 선생님은 학교에서 수업을 하듯 이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우리는 저수지 제방 위 평평한 곳에서만 놀 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곳은 어른들의 장소 같았다. 제방 높이까지 가득 차오른 저수지의 물은 파란빛으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또 물의 색이 깊어 그곳에는 하늘도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비추지 않는 무표정한 철판의 표면 같았다. 조그만 창모자를 눌러쓴 나는 같은 반 아이들 틈에 둥글게 앉아 혼자 저수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과거 친구와 산을 넘어 찾아갔던 저수지와 닮은 것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저수지 주변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고 이곳이 금지구역임을 확인시키려는 듯 억센 들풀들이 성인 허리 높이까지 가득 자라 있었다. 친구와 갔던 저수지가 오아시스와 같았다면 이곳은 악어가 출몰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호수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곳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있질 않다. 내가 싸온 김밥을 거기서 먹었는지 내가 무슨 놀이를 했는지에 대한 기억도 남아있질 않다. 고개를 돌려 같이 있는 누군가에게 친구와 갔던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저수지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나는 끝까지 참았다. 그러면서 친구와의 약속대로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저수지에 대한 기억 말고는 그날의 다른 기억들은 모두가 선명하다. 우리는 여러 무리로 나누어 저수지 맞은편에 있는 마을로 갔고 그곳에 있는 목장을 구경했다. 한 명은 바로 짜낸 젖소의 우유를 먹어본 적이 있다 했지만 정말 맛이 없었다고 하면서 별것 아닌 자랑이 되어 버렸다. 개울 근처에는 넓은 마당을 가진 별장이 한 채도 있었다. 파란색 기와 지붕에 하얀색 페인트로 외벽을 칠한 별장에는 널찍한 수영장이 붙어 있었다. 하늘색의 물이 반쯤 채워진 수영장은 운치는 있어 보였지만 너무 조용해 보여 시끄럽고 떠들썩한 우리가 들어가 놀기에는 어색할 것 같이 느껴졌다. 


한번은 커다란 빨간 고무 대야를 가져다 거기에 물을 받아 저수지를 상상하며 들어간 적이 있다. 나는 대야를 창고에서 가져와 마당에 놓았다. 큰 대야는 봄이 시작되면 모내기에 필요한 볍씨를 담그는 용도로 쓰던 것이었다. 나도 그날은 볍씨 마냥 대야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이것은 물속에서 수영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 보고 싶은 충동에서 내가 생각해낸 궁리였다. 나는 대야를 평평한 곳에다 놓고는 시험삼아 먼저 그곳에 들어가 누웠다. 수영을 연습해 볼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몸 전체가 대야 속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우물로 가져가 여기다 물을 채워 태양빛에 물이 따뜻하게 데워 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는 기다리는 내내 물속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나는 신발을 벗고는 대야의 둥글게 튀어나온 가장자리를 두손으로 잡고는 한발 한발 담궜다. 나중에는 얼굴만 뾰족 내민 채 대야 속에서 하늘을 보고 넓게 드러누울 수 있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몸을 앞으로 숙여 몸이 물속에 들어가게 했다. 그런데 별다른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한참을 이렇게도 해보고 또 저렇게도 해보았지만 똑같았다. 결국 나는 시시하게 이 일을 끝내고 그곳에서 나와 그냥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냥 한가지만 가지고 세상을 채워야 한다면 심심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만약 이 넓은 공간이 대지로만 모두 채워져 있다면 답답하고 평평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조금 움푹하게 파인 곳도 있고 그곳에 물로 채워진 저수지들이 있으면 괜찮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중 하나 정도는 한 사람만 아는 비밀 장소로 숨겨져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아는 친구가 이곳을 오아시스라 부르며 혼자 몰래 찾아와 헤엄치던 것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게 말이다.

 

> 이미지 출처: https:// phys.org/news /2020-10-global-lake-trend-threatens-freshwat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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