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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May 11. 2023

06. 사고와 함께한 자전거에 대한 기억

[에세이] 친구, 물고기 그리고 저수지

어떤 기억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영화관 맨 앞좌석에 앉아 본 것 마냥 장면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그런 반면 또 어떤 것은 분명 내가 직접 겪었음에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 이럴 때는 내가 스스로 그 길을 걸어왔음에도 어둠속과 안개속을 거닐고 헤매다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기억을 회상하게 되면 기분이 별로 좋지가 않다. 꼭 나의 몸이 어둠에 잠기고 안개에 젖어 드는 것 같아 불편하고 싫다. 이러한 것들은 대개 사고에 대한 기억들이다. 나는 어린시절 여러 번의 꽤 큰 사고를 겪었다. 그런데도 그때를 듬성듬성하게 그리고 아주 조금씩만 기억할 수 있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한번은 강에서 심하게 발을 다친 적이 있는데 이것 역시도 나는 사고 때의 기억이 남아있질 않다. 그날은 내가 우연한 기회로 옆집 엘 놀러가게 되었다. 먼저 온 아이들이 그곳 마당에서 놀고 있었고 옆집 아주머니는 신이나 같이 놀아 주기도 하고 간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아주머니는 얼마전 세 딸을 데리고 시골로 이사를 와서는 매일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을 따라 들판을 하루 종일 누비기도 했고, 밭에 앉아 채소를 앞에 두고 긴 시간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아주머니가 곤충기를 쓰기 위해 현실 세계에 나타난 파블로 같이 보였고 또 새하얀 장화를 신고 시골 여기저기를 누비는 모습은 말괄량이 삐삐 같이 보였다.


내 친구가 강에서 물고기 잡는데 집중했다면 아주머니는 어린 딸들을 데리고 시골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아주머니는 산과 넓은 들을 다니며 온갖 종류의 나물들을 소쿠리에 담아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것은 아주머니가 만드는 그날 그날의 음식과 간식의 재료가 되었다. 아주머니는 시골에서 나오는 과일들을 가지고 쨈을 만들기도 했는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모든 과일이 달콤한 쨈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아주머니는 마당 이곳 저곳에서 동물들도 길렀다. 강아지와 고양이부터 닭과 오리 그리고 토끼와 돼지까지 동물이라는 이름과 살아있는 것이라면 뭐든 아주머니집에 모두 가져다 놓았다. 이런 아주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하고 물고기 얘기를 했다. 아주머니는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다가 집에서 기른다고 했다. 물고기 얘기에 이번엔 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내가 그리워하는 친구가 생각났고 친구가 잡아준 물고기를 길렀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고기를 보기 위해 아주머니를 따라 집안 욕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만들어진 욕조가 놓여 있었다. 물이 가득 찬 욕조에는 정말로 물고기들이 많이 있었다. 강속에 있는 물고기를 보는 것만 같았다. 아주머니가 딸들을 데리고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본적은 있지만 이렇게 집에다 그것도 욕조에 갔다 놓을 줄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모두가 이 놀라운 광경에 입이 떡 벌어져 아무 말도 못하고 물고기만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TV속에서 보던 타잔이 현실 세계에 나타난 것이 친구라고 한다면, 밀집 모자를 눌러쓰고 새하얀 장화를 신고 시골 여기저기를 누비는 아주머니의 개구쟁이 같은 모습은 분명 말괄량이 삐삐가 TV밖으로 나와 성인으로 성장한 모습인 것 같았다.  


‘우리 같이 물고기 잡으러 갈까?’하며 아주머니가 제안을 하면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으로 향했다. 모두가 자신이 잡은 물고기로 욕조를 가득 채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기 때문이다. 양동이와 족대를 나누어 들고 강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소풍을 가는듯 즐거웠다. 물고기가 족대에 잡힐 때마다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물고기를 잡는데 신이 났고 더 큰 물고기가 잡힐 때마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갔다. 그러면서 우리는 강의 하구인 보가 있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나는 강가에서 구경만 했지만 이내 같이 신이 나면서 제일 큰 물고기를 잡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쳤다. 그런데 그때 나의 눈에 보 아래 물속에서 커다랗게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커다란 물고기를 찾은 데 나는 흥분했고 이것을 직접 잡고 싶다는 생각에 망설임도 없이 그곳으로 달렸다. 내가 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잊은 채 나는 공중에 두발을 날려 보 아래 반짝이는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실수였고 이미 늦은 선택이었다. 그것은 거대하게 날이 서 있는 투명한 유리병이었고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위에서 기억을 잃었다. 내가 보 아래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곳을 나왔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피를 흘린 기억도 병원을 들락거린 기억도 내겐 남아 있지 않다.


내가 그때를 기억하는 것은 자전거가 유일하다. 어머니가 앞집에 사는 삼촌에게 부탁해 자전거에 나를 태워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삼촌이 태워주는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삼촌의 허리를 꼭 잡고 학교를 다녀야 했다. 여름이 지나고 제법 날씨가 쌀쌀해 질때까지 긴 시간을 나는 삼촌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삼촌의 자전거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삼촌은 튼튼한 핸들과 짐받이 그리고 스탠드를 가진 검정색 신사용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다. 이 자전거는 아침이면 우리집 대문 앞에 서 있었고 또 오후가 되면 교실 옆 정자나무 아래서 나를 기다려 주었다. 이 기억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학교와 집 앞에 자전거가 없으면 무언가 빠진 듯 어색하다.


> 이미지 출처 : https:// www.churchofjesuschrist.org /media/image/rocks-river-62e53ba?lang=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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