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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May 05. 2023

05. 강에 있던 친구를 기다리며

[에세이] 친구, 물고기 그리고 저수지

덩치가 커서인지 겁이 없이 보이는 까치 한 마리가 내가 앉아 있는 바로 앞까지 다가온 적이 있다. 분명 까치는 유리로 된 창문 때문에 나를 보지 못한 듯했다. 그러면서 나는 운 좋게 까치에 정신이 팔려 한참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까치를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고 그와 같은 높이에서 마주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중에 까치는 누군가의 인기척에 놀라 날아갔다. 그런데 내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긴 시간을 까치와 가까이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리 만치 까치의 생김새가 정확지가 않았다. 머리가 검정색이었는지, 배가 하얀색이 있었는지, 하얀색이 날개 끝에 있었는지 꼬리에 있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결국에는 까치와 제비가 심지어는 팬더와 팽귄의 칼라 배치가 혼돈되기에 이르렀다.


까치가 시골 나무 꼭대기서 울 때면 신기하게 그날 손님이 찾아왔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까치를 제법 간지 나게 했던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나는 친구와의 만남에 까치에 대한 기억이 없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백 마리 정도는 까치들이 몰려와 그 친구와 만남을 내게 알려줬어야 했다. 우리 둘의 만남이 이렇듯 어떠한 예고도 없었듯 친구와의 이별 역시도 어떠한 징후도 없이 찾아왔다. 친구가 부모님을 따라오면서 우리가 만난 것처럼 이별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만남을 몰랐던 것처럼 이별을 몰랐기에 아무런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친구와 나는 평소에도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니라 처음엔 그냥 넘겼지만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소문으로 친구의 행방을 알 수가 있었다. 아버지가 공장에 새롭게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도와오던 농사일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떠났다고 했다. 나는 이별이란 공항과 같은 공식적인 장소에서 예정된 수순으로 화려하게 진행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연했던 걱정이 나중에는 이별이 되고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지금하고 있는 많은 일들 또한 나중에는 할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었다. 친구가 내게 이별을 말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친구도 이별을 모르고 가족을 따라 갔을 게 분명해 보였다. 둘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이라 모든 것이 아쉽게만 느껴졌고 세상 또한 무심하기만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강가를 서성거렸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걱정과 그리움으로 변해갔다. 동네 어귀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뾰족한 지붕의 교회 옆으로 과수원이 있었다. 그런데 누가 이곳을 에덴 동산이라 한다 해도 내가 믿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곳에서는 계절마다 다른 향기를 품은 꽃과 과일을 가지고 담너머에 있는 현실 세상에 보여주곤 했다. 내가 친구를 그리워하며 걷기 시작했을 때는 새까만 포도향이었던 것이 어느덧 빨간색 사과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면서 강도 친구를 따라 멀어져갔다. 나는 이제 강가로 가는 대신 동네 안쪽 마름모꼴로 움푹 파인 우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우물에는 반달 모양이 합쳐진 동그란 콘크리트 뚜껑이 덮여 있어 그 틈사이로 우물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우물은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깊어 보였다. 우물안에는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몇 마리의 송사리가 살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어둠 속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송사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마치 강에서 친구가 잡아 놓은 깡통 속 물고기를 바라보듯 나는 그때 했던 것들을 그대로 따라했다. 물고기를 보느라 이렇게 머리를 우물 입구에 바싹 붙이고 엉덩이를 뾰족하게 공중으로 내밀고 있으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무릎이 쑤시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친구를 만난 듯 기분이 좋아져 자주 그렇게 했다.


그때쯤 나는 예전에 꾸어 본적 없는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꿈에서 더 이상 사람이나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조그만 유리구슬로 변해 있었고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존재들은 나와 확연히 비교될 만큼 엄청난 크기와 깨지지 않는 금속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공중에 묶여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서 거대한 구슬들이 나를 향해 달려 들었다. 공포가 느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대한 구슬들에 내가 부딪히지 않도록 비는 일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무섭게 했다. 나는 결국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내가 의지하던 친구가 없어져서 일까? 나를 조용히 지켜주던 상대가 사라지면서 나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내가 친구와 가까워졌지만 사실 나는 친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부끄러울 만큼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그의 옆에 있으면서도 강과 물고기 그리고 저수지와 그의 고향에 대해 아주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궁금한 것을 서로에게 물은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상대의 집에 놀러가 본적도 없었다. 우리가 만난 곳 역시 강과 저수지가 전부였다. 이렇게 친구와의 인연은 모두 끝이 났다. 관계가 무르익으려던 찰나에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친구는 뚜껑을 잃어버린 향수병처럼 진한 추억을 계속해서 담아 두지 못하고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그대로 두어야 했다.


> 이미지 출처: https:// www.rmdevelopments.com.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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