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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May 01. 2023

04. 살던 곳이 사라진다는 것

[에세이] 친구, 물고기 그리고 저수지

유독 여름의 시골길은 밀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정리와 보수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걸핏하면 여기저기가 파이고 날씨마다 한바탕 소란을 치른다. 집채만한 나무가 뿌리 채 빠져나와 도로위로 올라와 누울 때도 있고 강이 넘어 길이 끊어져 오도가도 못한적도 여러 번 있었다. 무더위를 이기고 자란 풀이라는 생명체는 여름이면 도로의 경계를 무시하고 침범하기 일쑤였다. 여름의 시골길은 무더운 날씨 만큼이나 생명의 우여곡절을 같이 품고 있는 듯하다.


한번은 친구가 나를 그가 살던 곳에 데려간 적이 있다. 우리 둘은 아침부터 아스팔트 길을 걸어 그곳에 갔다. 대부분을 친구가 앞서 걸었고 넓은 길을 만나면 서로 어깨를 맞대고 같이 걸었다. 몇시간을 걸었지만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진 않았다. 그냥 길마다 변하는 경치를 감상했으며 가끔씩 풀과 꽃을 꺾어 놀며 길을 걸었다. 우리는 한적해 보이는 시골길을 향해 걸어 들어갔고 마침내 그가 살았던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은 낮고 넓었으며 그곳의 집들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과거에는 그곳에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이라고는 이방인인 우리 둘 뿐이었다. 그가 살던 집은 이웃 집들과 마찬가지로 지붕이 사라진 채 초라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을은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는 마을이 수몰지역이 될 거라 했다. 이곳에 거대한 댐을 짓기 위해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 것이었다. 미리 갈 곳을 정한 사람들은 먼저 떠날 수 있었지만 친구의 집은 그러지 못했다. 친구의 가족은 이곳을 쉽게 떠나지를 못했고 수년을 더 거기서 살다 나중에서야 떠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이곳에 살 수 없게 되자 근처로 살림살이를 옮기고는 이곳에서의 농사일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렇게 지내다 나중에 농사일까지 힘들게 되자 친구의 가족은 인맥이 있는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었다.


살던 곳이 사라진다는 것, 고향이 없어진다는 것 이것은 분명 엄청난 일일 것이다. 터전이 없어진다는 것은 추억할 수 있는 대상의 실체가 사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눈 앞에서 목격하는 것 역시 감당하기 힘든 일이 분명하다. 친구의 가족들은 이주를 해야 했음에도 이곳을 쉽사리 떠나지도 지워 버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떠나는 것을 하루만이라도 더 늦추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들에게 오랜 생각의 시간이었고 복잡한 생각들이 한꺼번에 풀려 날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가족 모두는 어떠한 가닥도 잡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둔 무거운 한숨만 공허하게 밤새 허공에 대고 뿜어냈을 것이다. 미래의 모습이 불투명해 보였을 것이고 마음 속은 취한 듯 몽롱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렇게 쉽지 않고 편히 잘 수 없는 밤을 보내고 가족은 무거운 마음으로 다음날 그곳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눴을 것이다.


친구의 가족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갈 때만 해도 댐의 공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아 그곳에서 농사를 조금씩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는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종종 오곤 했다. 아버지는 사라져버릴 자신의 논에서 한번이라도 더 농사를 짓고 싶어했고 친구는 그 시간 개울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렇게 친구는 물고기 잡기를 시작했다. 친구는 처음부터 물고기를 잘 잡았던 건 아니라고 했다. 처음 몇일은 번번히 허탕을 쳤다. 이후 개울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의 손에 감각이 생기고 실력도 쌓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친구는 물고기를 많이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친구는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친구는 나중이면 들어가 보지 못할 개울에 발을 담그고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생명을 직접 손으로 만지며 추억을 담는 듯했다. 친구의 아버지 역시도 그랬던 것 같다. 그가 가지고 있던 논은 훌륭한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은 적었지만 이 논을 만들기 위해 산을 개간하고 박혀 있던 돌을 실어 나르는 수년간의 고된 시간 끝에 마련한 자신의 땅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논이 완성되고 댐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자신이 일군 땅에서 농사도 제대로 지어보지 못하고 그대로 수몰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농사를 한해 한해 늘려갔고 여기에 메달리는 아버지가 남에게는 집착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친구의 아버지에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땅에 덜 미안했을 거라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이제야 나는 친구가 왜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산속에 숨어 있는 저수지까지 찾아 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그곳을 건너갔다 오고 깊은 물속을 헤엄쳤는지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자신의 집과 마을이 수몰되고 이곳에 댐이 크게 세워지고 나서도 친구는 어떻게든 물속에 들어 있을 자신의 추억들과 이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친구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나는 친구에게 가을에 또 와보고 싶다고 얘기했고 친구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 이미지 출처: https:// education.nationalgeographic.org /resource/s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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