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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Jun 02. 2023

직업으로써 나를 대한다는 것

PLANSANT 칼럼

봄이라는 기분에 시작한 책 정리가 그만 일이 커져 버렸다. 조금만 정리한다는 게 책꽂이의 모든 책들을 꺼내어 다 다시 배열하게 되면서 결국 몇 주가 걸려서 끝이 났다. 물론 주말 시간을 비워서 하게 되면서 오래 걸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해오던 분류와 보관 방식에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한곳에 따로 모아 보관을 했는데 이것이 예전만큼 좋게 느껴 지질 않았다. 고민하다 결국 이것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모든 작가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글쓰기에 수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출간하는 게 최고이겠지만 최소한 작가들이 집필을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독자로서 책을 통해 작가들과 평생토록 친구와 동반자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면서 나의 생각과 삶까지도 정체하지 않고 변화하고 발전하면 좋을 것 같았다.


직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때 나는 책장을 정리하면서 작고 희미하게 나마 밝은 빛을 찾을 수가 있었다. 발단은 내가 아내에게 선물했던 책 한권을 우연히 책장에서 발견하게 되면서 였다. 그렇게 나는 델리아 오언스(Delia Owens)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오래 두었던 글을 다시 꺼내 들 수 있었다. 그리고는 예전의 길고 지루했던 이야기를 짧은 에세이로 다시 다듬어 카카오 브런치에 올렸다. 이렇게 결론 없이 미루어 오던 일을 마치고 나니 숨통이 트이고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책읽기를 끝마칠 때쯤에는 내가 긴 시간을 두고 고민해 오던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늪에 빠져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의 글은 나를 놀래 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출장을 가는 버스 안에서도 읽고 또 쉬는 시간에도 틈나는 대로 읽었다. 내가 이처럼 그의 책에 신이 난 데는 우연하게도 생물학자인 앨리스 로버츠(Alice Roberts)의 책을 바로 전에 읽어 생물학자의 유사한 글의 감성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70세의 무명 작가로 시작한 델리아 오언스는 그의 첫 소설을 제대로 사고 쳤다. 야생 동물을 연구하며 생물학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삶과 경험이 작가로의 변신을 유리하게 작용했다. 만약 야생의 자연에 대한 그만의 지식과 경험이 아니었다면 소설이 표현하고자 했던 그 외로움의 깊이만큼 파고 들지도 사실적으로 전달하기도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직업에서 마치 진화가 생존율을 높이고 유리함을 차지하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하나의 직업으로도 충분하지만 최고를 유지하거나 혁신을 주도하고 싶다면 이러한 변화에 가치를 두어 볼만하다. 생물학자는 생명력 넘치는 스토리를, 건축가는 탄탄한 구성에 여러 소재가 배합된 감각적인 스토리를, 음악가는 음색과 리듬감을 채운 충만한 스토리를, 디자이너는 빨갛고 파란색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평범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글이 될 것이다.


지난해 11월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하면서 AI의 전성시대가 열린 듯하다. 챗GPT의 업무 혁명이 시작된 만큼 우리의 업무 환경도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생성AI의 등장으로 인해 회계사나 작가들이 큰 영향을 받게 되고 근로자의 반 이상이 AI기술로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 한다. 오픈AI의 챗GPT가 만들어 낼 변화 앞에서 직업과 그 가치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다름은 우리가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창조해 내는 기회가 된다. 이렇듯 직업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도전이 마중물과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 여러 다른 컬러가 합쳐져 깊이 있는 색이 만들어지듯 직업에서도 이 같은 성장을 기대해 본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onthebookshelf.co.uk/2016/06/superman-bookshelf.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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