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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Jun 06. 2023

01. 우연을 가장한 계획

[에세이] 우연히 나란히 여행하다

이 글은 15년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선배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선배와 다시 여행을 하게 되면서 선배와의 인연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15년전 첫번째 여행의 좋았던 추억을 다시 재현해 보는 여행을 기획하게 되었다. 선배와 했던 여행에 대한 간단한 얘기에 더해 여러가지 생각도 함께 다듬어 보았다. 그래서 이 글은 여행지와 관련된 답사나 추천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같은 직장에서 디자인 업무를 하다가 우연히 출장을 함께 가게 되면서 겪은 얘기이다. 나는 선배와의 두번의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유사한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로 해 보려 한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있다. 그리고 여행이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여행이 세상에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에게 잊지 못할 소중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다. 누가 내게 여행에 관련된 소중한 기억 몇 가지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나는 우연한 기회로 갈 수 있었던 일본 출장이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만난 선배는 출장기간 동안 나와 동행해 주고 많은 좋은 얘기들을 들려주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내게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선배의 제안으로 우리는 그 때를 기억하며 두번째 여행을 갈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다른 부서로 가기 위해 사내 공모를 신청하고 면접까지 마친 때였고 선배는 내가 잘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부서로 가는 것을 그리 반기질 않았다. 그러던 중 선배가 먼저 전화를 했다. 선배는 모든 것을 함축했고 ‘바쁘지?’하며 내게 물었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였지만 선배는 이 일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고 나도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몇일 후부터 선배가 연차 휴가를 계획하고 있어 다음날 내가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된 나의 업무는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 일을 마치고 보험갱신을 위해 잠깐 만나기로 했던 보험사 직원과의 미팅이 예상과 다르게 시간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 먼저 해 놓은 약속이라 취소하지 못하면서 일이 커져 버렸다. 결국 선배와의 약속을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가질 수 있었다. 다행히 선배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와준 덕분에 시간이 더 늦어지진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편안한 분위기에서 우린 많은 얘기들을 나눴을 태지만 그날은 서로의 기분을 알기에 두꺼운 외투를 걸친 듯 무겁게 내려 앉았다. 우리는 그저 짧고 조용한 얘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자신의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이야기는 15년전 우리 둘을 만나게 해준 첫번째 여행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선배와 나는 가끔씩 이렇게 우리의 첫만남이었던 일본 출장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특히 출장 마지막날 신주쿠에서 히라주쿠까지 우리 둘이 도보로 했던 여행은 잊을 수 없을 만큼 멋진 추억을 남겼다. 그런데 문뜩 선배는 내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을 건넸다. ‘우리 이번 주말에 같이 일본 갔다 오자!’하며 선배가 갑작스런 제안을 한 것이다. 그리고는 선배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내게 지어 보였다. 이것은 우리가 일본 여행 마지막날 했던 약속이기도 했고 우리가 그동안 계속 미루어오던 얘기이기도 했다. 우리가 두번째 여행을 가지 못하고 미룬 데는 서로 다른 일을 하느라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이것에 부합할 만한 성과를 이루고 나서 가고 싶은 바램도 있었다. 이렇게 미루다 결국 오늘이 된 것이다. 


우리는 하루나 이틀 정도 일정으로 예전에 갔던 곳을 다시 걸으며 과거를 회상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그런데 내가 선배의 제안을 무색하게 했다. 내가 여권을 만료된 상태로 두면서 주말까지는 사진을 찍고 여권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보였다. 좋은 제안이기에 두번째 여행을 미루고 싶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소중한 추억을 찾는 일을 서둘러 처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을 조금 바꾸어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대신 직접 운전해 교외를 천천히 여행하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에 출발하여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architonic.com/en/story/time-style-kengo-kuma-takes-a-seat/2012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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