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열정과 관중들의 응원으로 한껏 달아오른 경기의 열기가 심판의 오심으로 망쳐 버리기도 한다. 이것으로 페널티 킥이 되거나 아웃으로 인정되면서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이것이 잘못된 판정이라도 한번 내려진 결정이 다시 바뀌기는 힘들다. 재미있던 경기를 심판이 망친 격이다. 이렇듯 심판의 시각으로 보는 경기는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재미있게 바꿀 수는 없을까? 순위를 다투는 경쟁에서는 어렵겠지만 상대와 친해지기 위한 경기에서는 축제 같은 재미를 넣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심판이 경기에 재미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정해진 스트라이크 존의 크기와 위치도 바꾸어 주고 잘못 친 공은 이것을 가져오면 다시 치게도 해주는 것이다. 업사이드에서는 경기를 멈추는 대신 코끼리 코를 도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우리도 세상을 한가지로 고집하는 대신 다양한 모습으로 하루를 대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얻는 것이 더 많을 것 같다.
중학교 때였다.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반 친구들과 학교에 남아 늦게까지 공부를 한적이 있다. 한여름이라 오후의 더위는 창문을 열고 듬성듬성 거리를 두고 앉아도 피할 수가 없었다. 공기조차 미동이 없는 교실안은 시간이 멈춘 듯했고 우리는 그곳에서 공부와 함께 더위와 싸워야 했다.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돌풍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창문이 큰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커튼이 벽과 전정을 부딪치며 펄럭였다. 우리는 갑작스레 들이치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뛰어가 창문을 닫아야 했다. 우리는 창틀과 책상 위로 뛰어올라 매달리듯 창에 붙어 물바다로 변해 가는 바깥을 바라봤다. 그런데 대각선으로 길게 놓인 운동장 끝에 축구 골대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고 그대로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빗속에서 축구를 했다. 옷과 신발은 입고 있던 그대로였고 팀도 포지션도 없었다. 이렇게 반친구들 모두가 참가한 경기는 비가 그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축구라기 보다 신나게 웃고 즐기는 축제의 시간이었다.
이렇듯 호기심은 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만들고 이것을 즐거운 기억으로 남긴다. 이렇게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취향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취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버스가 연상된다. 버스는 직사각형으로 된 박스 안에 정해진 크기와 순서로 의자가 배치되어 있어 모양만으로는 취향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좋은 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것이 모든 자리를 공평하게 좋아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중학생이 되어 좋았던 것 한가지는 학교에 스쿨버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대중교통 대신 스쿨버스를 탄다는 것은 교복을 입는 것과 같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외국 영화에 나오는 멋진 모습을 상상했지만 아쉽게도 그때 내가 탔던 스쿨버스는 붐비고 낡아 멈추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버스의 좌석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했다. 타는 순서대로 자리를 골라 앉기 때문에 나중에 타는 사람은 좋아하는 자리에 앉지 못할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버스를 타면 앞쪽에서 서너 번째 자리에 주로 앉는다. 안쪽까지 걸어 들어가는 것도 귀찮고 뒤로 갈수록 심하게 흔들리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누군가 버스의 제일 뒷자리 그것도 정가운데인 39번 자리에 가서 앉는 것을 보면 정말 멋져 보인다. 이 자리는 누가 앉더라도 다 멋있어 보인다. 그리고 뒷좌석 창이 있는 곳은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리였다. 이곳에서는 버스가 만원이 되면 창문을 열어 친구들의 책가방을 받아주고 버스가 도착해 내릴 때가 되면 순서를 기다리는 대신 창문으로 멋지게 내리기도 했다. 버스의 앞쪽은 실용성을 따지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타고 내리기도 편했고 여기에 탁 트인 시야까지 즐길 수 있으니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스쿨버스에는 엑스트라 스페이스가 하나 더 있었다. 내가 타던 스쿨버스는 지금과 달리 엔진이 앞에 달려 있어 운전석과 출입문 사이에 넓고 볼록하게 튀어나온 엔진 룸의 공간이 있었다. 여름에는 엔진이 소음과 함께 열기를 내뿜기 때문에 인기가 없지만 겨울이면 이곳만큼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추위가 시작되면 학생들이 버스에 타서는 난로에서 불을 쬐듯 여기서 몸을 녹이고 자신의 자리로 가기도 했다. 그리고 몇몇은 아예 이곳을 차지하고 앉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 모습은 꼭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따뜻함을 즐기는 고양이 같았다.
집 역시도 내가 경험한 스쿨버스와 닮은 것이 많다. 집의 모양까지 버스와 똑같이 닮을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가 버스에서 취향에 맞춰 좌석을 고르듯 집 또한 다양한 경험과 즐거움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버스에서는 불편하면 좋아하는 자리로 다시 가서 앉으면 되지만 집은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버스 좌석을 여러 장 사서 기분 따라 바꿔가며 앉지 않는 것처럼 집 또한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취향을 고려하여 집에 대해 더 많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과 가족의 취향을 비교해 보며 집에 담으면 좋을 듯하다.
집은 우리를 그 안에서 휴식하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활동하게 한다. 집이 우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동력을 발견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빗속을 향해 걸어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은 빗속을 통과하고 나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의 변화가 이 모든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 백수의 왕으로 불리는 사자는 사바나의 초원을 누비며 생활한다. 이렇게 빠르고 활기찬 사자라 할지라도 항상 혹독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사자들은 수풀에서 잠복하여 사냥을 하기도 하고 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리나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의 사자들은 침입자들의 공격을 피해 버스의 뒷좌석과도 같은 나무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우기 기간 동안 이들 사자에게 가장 좋은 쉼터가 되는 곳은 아카시아와 시카모어 나무의 가지이다. 이것은 분명 이 높은 곳까지 오르는 아찔함을 경험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휴식이고 행복일 것이다. 이 또한 빗속을 통과하고 나서 만나게 되는 것들이다. @우간다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 (Queen Elizabeth National Park, Uganda)
#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보낸 시간은 우리의 기억에 깊이 박혀 있다. 유치원은 집 밖으로 나온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살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주변과 관계를 맺고 즐기는 장소이기도 하다. 처음이라는 것은 각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대하게 한다. 이것은 내가 아닌 상대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하나의 모토가 되어 성장한다. 우리는 각자의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만들어 간다. 각자가 좋아하는 행성이 다르듯 우리의 꿈 역시도 취향이 더해져 내 것이 되고 스스로 빛을 낼 수 있게 된다. @체코 야블로네츠나트니소우 몬테소리 유치원 by 몰크 아키텍쳐 +데이비드 아틀리에 2020 (Montessori Kindergarten Jablonec nad Nisou by Mjölk architekti + Projektovy atelier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