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현재는 진화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진화를 통해 변화해 왔다. 이것은 생물뿐 아니라 무생물 역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외부가 주는 변화에 순응하며 각자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어떤 것은 동그란 모양으로 어떤 것은 삼각의 모양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사각의 모양으로 자기 모양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협력하고 공존하며 살고 있다. 새가 도망갈 때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포식자가 있음을 알리기도 하고, 벌의 경우 배를 부풀려 꿀을 담아 나르기도 한다. 거미는 함께 거미줄을 치는 것으로 더 많은 사냥을 하기도 하고, 물고기는 떼를 지어 헤엄치는 것으로 거센 물살을 피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연은 평평한 분지를 만들어 그곳에 문명이 들어설 수 있게 해주었고 곳곳에 집의 자리를 우리에게 내주었다. 이렇게 세상은 동그라미, 삼각형, 사각형이 모여 공존하고 있다. 이것을 둥글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것을 길쭉하게 보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의 뾰족한 부분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첫번째 장난감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이 일은 어린시절 내가 살던 조그만 시골에 가게가 새로 생기면서 일어났다. 원래 담배와 함께 막걸리를 팔던 곳이었는데 과자와 장난감을 한쪽 입구에 갖다 놓으면서 가게의 구색을 갖추었다. 장사는 시작했지만 ‘여기가 가게입니다’하고 알리는 간판이 따로 없었고 그래서 물건을 살 때도 주인을 부르면 그때 나와 계산을 해주었다. 내가 갔을 때도 가게가 비어 있어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구경을 마칠 때쯤 빨간색 장난감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장난감 트럼펫으로 밸브와 마우스피스엔 원색의 칼라가 칠해져 있었다. 나는 갖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트럼펫을 꺼내 들고는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탐이 났지만 비싸 보여 한참을 구경만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아주머니에게 가격을 물으니 생각만큼 비싸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모아둔 용돈을 모두 가져와 트럼펫을 샀다.
나는 하루 종일 트럼펫을 불며 놀았다. 장난감 트럼펫을 가져온 첫날도 신나게 불며 다녔고 둘째 날도 똑같이 놀았다. 그러나 셋째 날부터는 트럼펫을 불 수 없었다. 가게 주인의 아들인 형들이 찾아와서는 싸게 잘못 팔았다며 몇배의 돈을 더 달라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트럼펫을 계속 불고 싶었지만 내겐 그만큼 큰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아무도 못 찾게 꼭꼭 숨겨 놓았다. 그리고는 이 일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이 일은 생각대로 조용히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며칠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하이에나로 변해 있었다. 단단히 작정한듯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밀치고는 급기야 주먹까지 날렸다. 나는 장난감 트럼펫을 좋아했지만 현실은 내 생각과 많이 달랐다. 나는 트럼펫을 끌어안고 방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가게가 비어 있는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갔다. 한참을 주변을 서성이다 가게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레 가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장난감 트럼펫을 계산대 앞 잘 보이는 곳에 두고는 몰래 밖으로 나왔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모든 것이 너무 시시하게 끝나버렸다. 하이에나 같은 형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아끼던 장난감 트럼펫도 잃었고 내가 모은 용돈도 모두 잃었다.
내가 지금 모락산 가까이 살 수 있는 건 행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을 집에서 도보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산세 또한 아기자기 해 부담 없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산의 초입에는 단독주택들이 펼쳐져 있는데 이것을 마주하고 있으면 동화 속 풍경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빨간색 벽돌집들이 담장에 싸여 있는 집들의 모습은 내가 살던 시골과도 많이 닮았다. 막다른 골목 같지만 막상 가보면 다른 길로 이어져 있는 것도 시골과 비슷하고 담장 너머로 집집마다 다른 꽃과 나무들이 자라는 모습까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친숙하게 다가오면서 나중에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것 같던 그곳에 재개발 플래카드가 붙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람들이 떠나고 거대한 아파트에 자리를 내주었다.
우리가 추억하는 장소에는 설렘과 함께 수많은 동심이 숨어 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기 위해 일일이 사진을 찍거나 저장해 놓지 않아도 장소가 대신해 우리를 기억해 준다. 한번은 아내와 함께 우리가 살던 곳으로 보물찾기를 하듯 여행을 한적이 있다. 우리는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를 순서대로 다니며 옛추억을 회상했다. 우리는 10평 남짓한 곳에 우리의 신혼집을 직접 꾸몄다. 그러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좀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여러 번 이사를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예상치 못한 악재들도 많았다. 내가 가진 장난감 트럼펫을 빼앗기 위해 하이에나가 나타났던 것처럼 나는 다시 이들과 마주쳐야 했다. 처음의 위층 할머니는 텃새가 고약했고, 다음은 염색공단의 악취가 밤을 괴롭혔고, 그 다음은 겨울이면 추위로 가족이 한 방에서 비좁게 생활해야 했다. 우리는 그때 살던 아파트며 애들이 다니던 어린이집 이곳저곳을 본능 반 기억 반으로 찾아다녔다. 그런데 이사를 자주하게 되면서 낯섦도 많았다.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기억하는 것이 많지 않았다. 내가 어린시절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막상 아이들에게 장소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지난 것은 후회가 남는다. ‘내가 그때 장난감 트럼펫을 돌려준 것은 잘한 일일까?’ ‘그때 내가 트럼펫을 끝까지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때 모든 것이 시시하게 끝나 버린 게 아쉽고 더 좋은 추억을 남기지 못한 게 후회된다. 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내와 꾸민 신혼집에 우리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이들이 첫번째 집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집에 대한 좋은 추억을 남겨주지 못한 것을 나는 두고두고 미안해 할 것 같다. 시간이 지나 현재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주변의 복잡함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누구는 동그라미, 누구는 삼각형, 누구는 사각형인 각자의 모습으로 진화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누구는 뾰족해도 괜찮을 것 같다. 또 어떤 것은 뾰족해도 괜찮을 것 같다.
# 경사면은 지형이 모난 곳이지만 지면, 호수, 하늘을 품은 곳이기도 하다. 지붕 끝이 뾰족하고 벽의 한쪽이 튀어나와도 괜찮은 것은 이것이 모난 지형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뾰족함은 우리가 실내에 머물게 하는 대신 바깥에 서게 하고 몸을 내밀어 멀리 내다보게 한다. 모나고 뾰족하고 파인 곳이 집과 만나면 이곳이 하나의 접점이 된다. 우리가 이곳에서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게 한다. 치유를 위한 장소가 둥글둥글하다면 앞을 바라보고 꿈을 꿀 수 있는 곳은 이처럼 뾰족해도 좋을 것 같다. @미국 프레임 도크 by 맷 페이커스 아키텍쳐 2019 (Filtered Frame Dock by Matt Fajkus Architecture)
# 동그라미, 삼각형, 사각형을 이으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이것을 담은 집은 즐거운 여행이 된다. 삼각형으로 들어가, 사각형을 거닐고, 동그란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분명 놀라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아름드리 나무를 둥근 창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리고 밤이 되어 둥근 창이 달빛이 되어 비치면 나무를 위로해 준다. 반달은 뾰족하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는 모습이다. 자연 역시도 각각 다르게 진화하며 뾰족해진다. @남아프리카 그레이트 프라이머리 쉐입 하우스 by 그레고리 카츠 아키텍쳐 2022 (Great Primary Shapes House by Gregory Katz Archite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