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콘크리트의 오래된 아파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디자인과 컬러가 다양하게 바뀌어 옛날과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다. 얼마전에는 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오래된 아파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크게 자란 나무들에 둘러 쌓인 낮고 오래된 아파트를 보는 순간 나는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지붕이 달린 오래된 아파트는 산골에 있는 외가집을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나의 외가집은 2002년 개봉된 영화 ‘집으로’ 촬영지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는 산골의 버스 종점에 있다. 초등학교 시절 외가집을 가려면 평상시 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이렇게 서둘러 준비를 하면 읍내 터미널에서 정오에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비포장 길을 한시간 정도 달리면 외가집이 있는 종점에 도착할 수 있다. 버스 종점을 알리는 안내판조차 없는 이곳은 앞이 산비탈로 막혀 있고 커다란 호두나무만이 좁은 산길을 따라 몇 그루 자라고 있었다. 오래된 집 한 채만 그곳을 지키고 있을 뿐 주변 어디에도 집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호두나무가 있는 경사진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그곳에 외가집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주한 외가집은 반가움과 어색함이 같이 느껴졌다. 긴 시간을 들여 오랜만에 찾아온 외갓집이 반가우면서도 이같이 외진 곳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집이 있다는 게 어색해 보였다. 경사가 심한 바위산에 축대를 쌓아 지은 것도 어색했고 콘크리트에 스레트 지붕의 집들을 똑같이 일렬로 세워 놓은 것도 이상해 보였다. 크고 높고 삭막해 보이는 집들은 이곳 시골에 어울리지 않았다. 사람조차 살지 않는 세상 제일 깊은 산속에 이런 집이 존재한다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외가집이 이주를 하게 되면서 다시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때의 기억만큼은 내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때문인지 도시의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오래된 아파트의 모습을 보면 나는 외가집에서 느꼈던 어색함이 되살아 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쉬움은 더해지는 것 같다. 여기에는 필요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가치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사리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해졌다.
나는 도시의 덜컹거리는 길이 못마땅하다. 내가 산골에서 경험한 덜컹거림을 도시에서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외가집은 시골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 놀지 못했다. 밖을 나가면 기울어진 경사와 돌들로 울퉁불퉁한 바닥을 경계하며 걸어 다녀야 했다. 비탈길로 이어진 길은 돌들이 달아 미끈거려 다니기가 힘들었다. 지름길로 만들어 놓은 곳은 경사가 심하고 계단까지 비좁아 걷는데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도시의 길도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평평하고 깔끔하게 마감을 해 놓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새로 공사를 마친 곳을 지나가게 되면 급하게 마무리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은 산길 마냥 불편했다. 형식과 구색에만 갖춰 놓은 곳은 오히려 이전만 못하게 바뀐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길이 복잡해지고 경사와 층이 새로 생기기도 했다. 이것을 모두가 감당하기에는 분명 힘들어 보인다.
시간이 지나 기억에서 조차 잊고 지내던 외갓집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외가집이 얼마전 팔렸다는 얘기였다. 사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나에겐 이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이 먼 곳에 집이 있는 것을 알고 찾아온 것도 놀랍고 40년 넘게 비어 있던 집이 팔린 것도 놀라웠다. 무엇보다 모두가 떠나버린 이곳에 다시 들어와 살겠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어찌 보면 이곳이 세상에서 제일 구석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으로 치면 동맥 혈관의 제일 끝부분이고 동굴로 치면 제일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차로 편하게 갈 수 없는 곳이고 설령 갔다 하더라도 왔던 길을 후진으로 되돌아 가야 할 만큼 좁고 힘든 곳이다. 그런데 이 집을 산 사람은 또 이곳에서 제일 먼 곳 그러니까 반대편인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또 한가지 놀라운 건 이곳의 집값인데 집과 땅에는 가격이 따로 없어 집안에 있는 호두나무 세 그루로 집값을 대신했다고 했다. 그렇게 외가집은 아쉬움을 남기고 쓸쓸히 세상에서 사라졌다.
집에 대해서도 후진이 필요하다. 우리는 집이 어두운 미래로 향하게 두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집이 돌들로 울퉁불퉁하게 덮인 길로 향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은 더 좋은 현실이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면 좋겠다. 우리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시간이 아닌 우리의 삶과 주변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미래로 나가는 과정이면 좋겠다. 그리고 이 시간이 한쪽 방향으로 기울며 빠르게 움직이는 대신 평평하게 우리 모두가 세상을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길을 걷더라도 마음이 덜컹거리거나 숨통이 막히지 않으면 좋겠다. 길과 함께 우리의 집 역시도 지금보다 더 많이 폭신해지면 좋겠다. 우리가 기분 좋게 걷고 또 아무렇게 툭 던져도 아프지 않을 그런 발걸음이면 좋을 것 같다.
#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집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친 몸을 이끌고 소파나 침대로 향하는 대신 상상을 하며 나의 동선을 그려 보고 싶다. 행거에 옷과 여행 가방을 내려 놓고 새로 사온 비누를 가지고 따뜻한 목욕을 하면 어떨까! 그리고 여행지에서 고른 예쁜 티셔츠로 갈아 입고 침대 모서리에 누워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를 떨어 보면 어떨까! 이렇게 상상하며 실행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가 가고 싶은 동선대에 맞춰 미닫이문을 열고 닫는 것으로 집의 레이아웃을 바꾸어 보는 것이다. 조금 걷고 싶을 때는 작게, 도도하게 걷고 싶을 때는 길쭉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벨기에 스트로젠 하우스 by 아틀리에 노마드 아키텍쳐 스튜디오 + 데브스페이스 (Strawen House by l'atelier Nomadic Architecture Studio+Devspace)
# 우리가 자유롭게 놀도록 허락된 공간은 어디까지일까? 우리가 이것을 집안과 놀이터로 한정하지 않으면 좋겠다. 집의 바깥이 우리의 놀이터가 되면 어떨까? 이곳을 좀 더 나은 공간으로 바꾸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건축이 좀 더 평평한 곳으로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도로와 주택 사이를 통로가 아닌 공간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곳을 바쁘게 움직이는 통로가 아닌 정지된 상태로 편하게 쉬고 앉아 놀 수 있는 여백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이곳에 테라스를 놓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를 공간에 담으면 좋겠다. 통로가 멈추지 않고 빠르게 지나다니는 곳이었다면 이젠 평평하고 정적인 공간으로 비워 놓아도 좋을 것 같다. @스페인 바로 타워 하우스 by 다테+나르크+마리아 아키텍쳐 2022 (Baró Tower Housing by DATAAE+Narch+Maira Arquitec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