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마치 없는 것처럼 존재해 주는 세상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by dkb 하우스

우리 중 자신의 계획대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이 계획을 아무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일을 하는데 남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아마 나는 혼자서는 꿈을 실현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일찍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특히 동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둘이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 이 일은 자주 일어났다. 내가 혼자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그리고 혼자 했다면 시시하게 끝났을 일을 동생은 이것을 도전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결과에도 큰 차이를 만들어 주었다. 동생은 내가 체스판 위에서 킹의 자리에 앉게 해주었고 내가 세상을 향해 체크 메이트를 외칠 수 있게 해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욕심쟁이였고 동생은 항상 그 피해자였다. 동화 속 이야기로 치면 개미와 베짱이 같았다. 동생은 용돈이 생길 때면 이것을 저금통에 넣어 성실히 돈을 모았다. 나도 동생을 따라했지만 저금통의 배를 가르는 건 항상 내가 먼저였다. 그러나 동생은 저금통이 가득 찰 때까지 절대 열지 않았다. 나는 저금으로 돈을 불리는 것보다 용돈으로 이것저것을 하는 게 더 좋았다. 그중 나는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해서 탱크와 배를 많이 만들었다. 모델을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나는 완성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이것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더 좋았다. 용돈을 가지고 어떤 것을 살지 또 무엇을 만들지 고민할 때가 사실 제일 재미있고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보통 만들고 싶은 모델을 미리 점 찍어 놓고는 순서대로 사기도 했지만 제대로 한가지에 필이 꽂히면 이것을 갖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면 작았던 배가 항공모함으로 바뀌고, 모형에 불과하던 탱크가 포탑이 회전하고 모터와 리모컨으로 움직일 수 있게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만들 때면 하루 단위로 일을 나누어 정해진 만큼만 만들고는 상자에 넣었다 꺼내기를 반복했는데 나는 이 과정이 너무 좋았다. 이렇게 하면 똑 같은 부품이 많은 모델을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다.


한번은 우연히 찾아간 친구의 집에서 2층침대를 보고는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이것에 소유욕이 아닌 창작욕에 사로 잡혀 버렸다. 내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든다 생각하니 기분이 엄청 설레었다. 그리고 이것은 프라모델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는 시내 가까이에 있는 제재소에 가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알아보고 비용까지 확인해 두었다. 그런데 돈이 문제였다. 내가 침대를 만들려면 돈이 있어야 했는데 큰 돈이라 지금부터 모은다 해도 꼬박 1년은 걸릴 것 같아 보였다. 내가 그만큼의 돈을 모으는 것도 고통이지만 1년을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베짱이 답게 동생을 찾아갔고 개미인 동생은 자신의 저금통을 깨뜨리는 것으로 내가 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이 시작되자 나는 더 이상 베짱이가 아니었다. 나는 까마귀가 되어 도면을 준비하고 줄자와 톱이며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날랐다. 그리고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경운기를 타고 제재소로 갔다. 치수를 확인하고 고른 아름드리 미송이 지게차에 실려 거대한 작업용 선반 위에 올려졌다. 커다란 띠톱날이 돌아가자 제재소 전체가 진동하는 고음의 기계 소리와 함께 커피를 내리듯 진한 나무 향기가 났다. 이 향기는 나를 오래도록 설레게 했다. 나는 가져온 목재를 크기에 맞추어 자르고 못질을 하고 사포질과 바니쉬를 하는 것으로 꿈꾸던 2층침대를 만들 수 있었다.


보이는 것 뒤에는 다른 더 큰 세계가 숨어 있다. 관객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무대가 있다면 무대 뒤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대를 위해 부족함이 없게 준비를 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곳이 무대 뒤의 모습이다.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에서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피디시절 인터뷰 때 NG가 나서 버려지는 부분을 따로 모은 적이 있는데 이것의 길이가 2시간이 되는 긴 분량이었다고 한다. 아날로그 릴테이프를 쓰던 때의 녹음이라 일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여기에는 한숨소리와 기침소리와 같은 많은 소리들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다시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라 한다. 다시라는 말은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고 우리가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 변신의 기회를 주고 실수를 만회하게 해주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무대 뒤에 존재하며 묵묵히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리의 즐거움이 더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보물 찾기를 즐길 수 있도록 먼저 준비를 해주고 뒤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동생은 내게 톱과 망치가 되어주었다. 내가 대충 시작한 것에 모양을 다듬어 주고 이것을 실현시켜 주었다. 혼자였다면 일찍 포기할 일을 야심 찬 프로젝트로 바꾸어 주었다. 그러면서 나 혼자서는 갈 수 없던 곳을 내가 직접 걸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마운 사람들의 역할로 혼자서는 불가능한 꿈이 이루어지게 한다. 모든 것이 이렇게 묵묵히 도와주는 사람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게 용기를 준 것에 고맙고 세상을 즐겁게 만들어 준 것에 고맙다. 세상에 없는 것처럼 존재하며 우리를 꿈꾸게 하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드린다.



#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집의 한쪽을 창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이 창을 무대삼아 자연을 바라봐도 좋을 것 같다. 그냥 평범하게 생긴 창이 아닌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처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창이면 좋겠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다. 집에 대해서도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바깥의 풍경을 위해 마련된 무대와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 바깥 풍경을 한곳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시간에 따라 이동하며 바라보고 대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의 집에도 필요하다. @네덜란드 듄 하우스 by 마크 코엘러 아키텍쳐2015 (Dune House by Marc Koehler Architects)



# 한옥에 들어서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친근함 때문이다. 집과 마당의 관계가 집을 친근하게도 불편하게도 바꾼다. 집이 낮으면 밋밋해 보여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게 되고 집이 높으면 웅장해 보이지만 막상 다가서기가 부담스러워진다. 이런 부담감을 없애 주고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디딤돌이다. 디딤돌은 공중에 붕 떠있는 집의 마루로 올라서게 하는 특별한 곳이다. 디딤돌이 놓인 공간은 집의 공간도 그렇다고 마당의 공간도 아니다. 이것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집과 주변이 달라진다. 이것을 마루 높이까지 돌로 가득 채운다면 집이 무거워져 오르는 사람의 기분까지도 무거워질 것이다. 하지만 가벼움으로 집을 대한다면 이곳이 더 기분 좋은 공간이 된다. 한옥이 좋은 이유는 이것 하나로도 충분할 것 같다. @브라질 바텔 스토어by 스튜디오 41 2023, NA 하우스 by 돔 아키텍쳐 스튜디오 (Batel Store by Estúdio 41, NA House by Dom Architect Studio)

> 참고자료: 깨끗한 존경_이슬아 인터뷰집 (이슬아, 헤엄,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