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은 무언가에 담기면서 간직된다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by dkb 하우스

새벽 6시 나는 집을 나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것은 집 근처에서 출발하는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나서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매일의 기분은 다르다. 내 기분 탓도 있겠지만 그날 새벽에 만나는 것에 따라 이래저래 바뀌기도 한다. 오늘은 시작이 좋지 않았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파트 로비와 엘리베이터 주변이 물을 뿌려 놓은 듯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나섰을 땐 개가 싸 놓은 똥을 발견하고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기분 나쁜 일이 연달아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파트를 빠져나오자 걱정과 달리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그곳에서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은 검정 고양이였다. 내가 새벽에 고양이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처음 내 앞에 나타난 고양이는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이 광경이 신기해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는 영화 '늑대와 춤을'에 나오는 늑대 마냥 하얀 장화를 신고서 호기심에 춤을 추고 있었다. 땅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듯 보였다. 기분 나쁜 아침이 될 수도 있던 것을 고양이가 웃음으로 바꾸어 준 것이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만남이 있는 것처럼 똑같이 기억에 남는 이별이 있다. 이별에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들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다. 내게도 이렇게 특별하게 기억하는 도서관이 있다. 그곳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가 회사에 입사를 하여 자주 찾던 곳이었다. 도서관이 연구소 안에 있다 보니 전문 서적들을 손쉽게 볼 수가 있었다. 그러다 내가 디자인 월간지를 우리 부서에 받아오는 일을 맡게 되면서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책의 종류도 함께 늘어났다. 디자인 서적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도서관에 신간이 들어오면 윗분들이 먼저 열람하게 한 후 비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였기 때문에 길게는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내가 그곳을 자주 왕래하게 되면서 담당 직원이 이 책들을 미리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직원의 배려로 내가 회사 도서관을 찾는 특별한 재미가 생긴 것이다.


많은 것이 그렇지만 이 시간 역시 길지 않았다. 연구소가 통합되면서 부서들이 순서대로 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는 곳도 이곳에서 마지막 프로젝트를 마치기 위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시간이 날 때 꼭 한 번 들러 달라는 것이었다. 이번 통합으로 도서관은 폐쇄가 결정되면서 정리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찾았을 때는 이미 긴 휴식에 들어간 듯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배식이 끝나고 정리를 마친 식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도서관 직원은 내부의 허락을 받아 나에게 줄 책들을 따로 모아 보관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나를 위해 따뜻한 밥상을 따로 마련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도서관은 내가 신간들을 제일 먼저 볼 수 있게 해주고 나중에는 이것들을 선물로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면서 도서관은 내가 이곳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을 추억하고 이것을 설렘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도서관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은 직원의 배려 덕분이다. 따뜻한 배려가 설렘과 특별함으로 남은 것이다. 나는 요즘 특별함을 느끼고자 그에 걸맞는 특이한 가방을 들고 다니고 있다. 이것은 특별한 기억들로 채우고 싶은 바램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중국에서 구매했는데 백화점을 갔다가 우연히 토트백이 여행용 캐리어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첫눈에 반해 가져오게 되었다. 특이한 모양 때문에 내가 이 가방을 들고 다니면 모두가 한마디씩 내게 묻는다. 가방이 녹색이라 고등학교 때 들고 다니던 추억의 가방 같다고 하기도 하고 큰 가방 안에 무엇을 넣어 다니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나는 이 가방이 많은 질문과 이야기를 만들고 다니는 게 좋다. 그러고 보니 이 가방은 먼 거리를 여행해서 나에게 왔다. 가방은 스페인에서 수공으로 만들어져 일본 백화점을 거쳐 분점이 있는 중국에 왔다. 그리고 내가 이것을 중국에서 발견하고 한국으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가방이 좋았던 이유는 이것을 들고 다니면 그곳이 어디든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회사를 가는 것도 여행이 되고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 일이 생겨도 여행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토트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큰 가방에 이것저것을 넣고 다니며 여행하듯 인생을 살고 있다.


집이 우리의 여행과 같으면 좋겠다. 각자에게 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배움을 주는 것이 여행이지 않은가? 우리가 집을 이런 여행으로 대해도 좋을 것 같다. 집이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토트백을 들고 떠나는 것과 같은 설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이것저것을 자유롭게 담아 떠나서는 여행지에서 꺼내 쓰기도 하고 그곳에 있는 것들로 다시 채워 돌아오는 그런 재미가 담기면 좋을 것 같다. 이것이 여행이기에 차가 좀 막혀도, 모르는 길을 찾아가도, 비가 좀 내려도 무심하게 대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선물과도 같은 일들과 만나게 되는 것 또한 여행이 주는 묘미이지 않을까? 우리가 꿈꾸고 향하는 집이 오늘처럼 고양이가 하얀 장화를 신고 나를 향해 춤을 추는 그런 모습이면 좋겠다. 우리의 집과 집짓기가 이런 가벼움이면 좋을 것 같다.



# 여행을 하다 예쁜 집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예쁜 집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나도 이런 집에 살고 싶다는 말이 연이어 튀어나온다. 이런 집은 정감이 있어 좋다. 무겁고 각진 처마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이렇게 가벼운 처마를 보고 있으면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처마를 이렇게 둥글게 말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혹시 정말 과자로 만든 집은 아닐까 하는 장난 어린 상상을 하게 된다. 이런 집은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다. @체코 카사 데 미 루나 by 스튜디오 서클 그로스 2023 (Casa De Mi Luna by Studio Circle Growth)



# 가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가지 지붕을 상상해 보았지만 지붕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곳을 비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것은 어쩌면 틀에 갇혀서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햇살과 바람을 집에 들이지는 못한다. 집을 설레게 만들고 싶다면 무겁고 고정된 성인의 시각을 버리고 가볍고 즐거운 아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연이 가진 빛과 그림자 그리고 반짝이는 것들은 무거움이 아닌 가벼움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파티나 가든 스튜디오 by 마데기인초 2023 (Patina Garden Studio by Madeiguin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