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것이 아름답다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by dkb 하우스

뾰족한 것이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뾰족한 것에 예찬론자가 되기로 했다. 나는 글을 쓸 때면 팬을 바꿔가며 쓰는데 그 중에서 나는 뾰족한 연필을 좋아한다. 뾰족한 연필은 특히 미술과 건축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조그만 연필깎이를 테이블 한 켠에 놓아두고 깎아가며 쓰고 있다. 나는 이것으로 단락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연필을 뾰족하게 깎는데 그러면 연필은 새것 같이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나는 연필깎이를 어릴 때 쓰기 시작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초등학교때는 가깝게 지내는 분이 중동을 다녀오면서 선물로 사다 준 것을 사용했다. 튼튼한 고정 클립이 달린 철재로 된 진녹색의 예쁜 연필깎이였다. 나는 이것으로 연필을 깎기도 했지만 이곳저곳에다 클립으로 고정시키거나 몸통을 열어 톱니가 붙어 있는 기어를 돌리고 노는 것을 더 재미있어 했다. 대학생이 돼서는 색연필로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되면서 덩치가 큰 전동 연필깎이를 따로 사서 사용했다. 전동 연필깎이는 한 손으로도 쉽게 다룰 수 있어 그림의 디테일한 부분을 그릴 때는 뾰족하게 깎아가며 쓸 수가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많았다. 색연필은 연필심이 물러 잘 부러졌고 주변에 방해가 될 정도로 소음까지 심해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엔 위에 작은 칼날이 붙어 있는 휴대용 연필깎이를 사용했다. 작은 연필깎이를 손끝으로 잡고 연필을 돌리면 사각사각하고 나는 소리가 좋았다. 그러면 예쁜 색깔과 함께 연필 껍질이 길다랗게 말리면서 카네이션 꽃 모양을 만들었는데 나는 이것을 따로 모아두기도 했다. 지금은 아예 수동 연필깎이에 휴대용 연필깎이가 일체형으로 붙어 있는 것을 사다 놓고 기분 따라 바꿔가며 사용하고 있다.


어린시절 겨울이 되면 동네에 있는 아주머니들이 우리집으로 모여 들었다. 이때가 되면 바쁜 농사일이 끝나면서 따로 모이는 날짜와 시간도 정하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어 보였다. 보통 저녁시간에 모였지만 어떤 날은 아침부터 모이는 날도 있었다. 이렇게 아주머니들이 모이면 실바구니에서 뾰족하고 길다란 대바늘을 꺼내 스웨터를 만들었다. 그러면 각자 다른 색과 모양의 옷들이 마술처럼 만들어졌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의 옷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놀다 가도 어머니가 부르면 달려가 옷의 크기를 몸에다 대보곤 했다. 그러면 처음에는 허리 품에 대보던 것이 금세 앞판이 만들어지고 나중에는 팔이 붙으면서 옷의 모양이 갖춰져 갔다. 어머니는 손도 빠르고 손기술까지 좋아 다른 사람들이 한 벌을 만들 때 나와 동생 것까지 만들면서 앞면에는 예쁜 무늬도 넣어주었다. 아주머니가 바늘을 잘못 꿰거나 모양이 이상한 곳이 있으면 대신해 실을 풀어주고 고쳐 주기도 했다. 이렇게 뾰족한 대바늘에 아주머니들의 길고 많은 얘기들이 실과 함께 엮이면서 한벌 옷이 된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되면 만들었던 옷을 풀어 새로운 실타래와 섞어 다른 이야기를 담아 옷을 새로 만들었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뾰족함이다.


만약 우리 주변이 한가지로 되어 있다면 재미가 줄어들어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뾰족한 것이 있어 세상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세상에는 내가 기억하는 뾰족한 것이 참 많다. 뾰족하게 연필을 새것처럼 깎아주는 수동 연필깎이와 뾰족하고 길다란 대바늘을 실로 엮어 만든 스웨터가 어릴 적 기억으로 남아 있고, 뾰족한 머리를 하고 지구를 지켜주던 로봇과 심술이 나면 입을 뾰족하게 내밀었던 추억이 있다. 자연에서는 뾰족하게 날며 예쁜 소리를 내는 새와 뾰족하게 이곳저곳을 헤엄치는 물고기, 그리고 뾰족하게 나와 있어 가장 먼저 해를 맞이하는 호미곶이 있다. 나는 또 뾰족하게 자유롭게 서있는 나무를 좋아하고 뾰족하게 손을 들어 웃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뾰족함이 있어 우리가 이것을 개성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전 집에서 기르는 나무가 자라지 않아 분갈이를 하게 되었다. 근처 꽃집에서 사온 것인데 화분을 비워보니 바닥에 깔아 놓은 스티로폼 때문에 뿌리가 자라지 못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나무의 가지를 자르고 배양토에 다시 심어 베란다로 자리를 옮겼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렇게 나에게 화분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한 하루 일과가 되었다. 이렇게 두 달이 조금 더 지나자 기다렸던 싹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생기를 되찾았다. 뿌리가 뾰족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나무가 잠에서 깨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뾰족해지자 곧바로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뾰족하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뾰족함은 나무의 뿌리처럼 자유롭게 자라는 것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이렇게 나무처럼 잎을 틔우고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이 뾰족한 것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내가 집에 있는 뾰족한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것이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밖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오면 세상과 거칠게 부딪쳐야 하지만 이곳의 공간은 무엇보다 평온해 보인다. 뾰족한 곳에 생겨난 공간 역시 비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죽거나 생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 사용을 마친 물건들이 놓이면서 과거를 기억하고 지키는 보물창고가 되기도 한다. 집의 다른 부분은 우리가 미리 갖춰 놓고 사용하는 공간이라면 뾰족한 곳에 존재하는 공간은 반대로 처음엔 비워져 있다 우리의 자취들로 그 속을 채워 간다. 뾰족함은 그 속이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닌 우리의 추억들로 꼭꼭 채워져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



# 세상에는 뾰족한 게 많고 뾰족한 것에도 종류가 많다. 지붕을 예로 들면 정직하게 뾰족한 것과 삐딱하게 뾰족한 것이 있는가 하면 창모자를 놀러 쓰고 있는 뾰족 지붕과 가르마와 웨이브로 멋을 낸 뾰족 지붕이 있다. 그런데 뾰족한 것에는 복잡함을 찾을 수 없다. 다른 모양의 지붕들을 한데 모아 놓아도 복잡하거나 더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뾰족한 것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공평하다. 그러나 뾰족 지붕이 담고 있는 공간은 모두 다르다. 우리가 개성에 맞게 모자와 헤어스타일로 꾸미듯 지붕도 그렇게 용도에 맞게 공간과 사람을 대한다. @프랑스 사이트 베리에 드 마이센탈 by 소일 + 플릭스 아키텍쳐 2021 (Site Verrier de Meisenthal by SO-IL + FREAKS Architecture)



# 나는 뾰족한 것을 그저 바라만 보는 대상으로 알고 지냈다. 뾰족한 것은 위험하니 멀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누구나 그렇게 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모자에 꽃을 꽂지만 지붕 위에 꽃과 정원으로 올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태양과 비를 제일 가까이에서 대할 수 있는 것이 지붕인 것을 보면 지붕이 정원에 제일 잘 어울리는 곳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영국 가든 하우스 by 헤이허스트 2015 (Garden House by Hayhurst and 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