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집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나 소문 한가지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집이 오래되거나 사용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제외한다면 집이 직접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문제의 대부분은 집과 관련된 사람들 그러니까 집을 짓거나 수리하거나 또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일 것이다. 내가 집과 관련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된 데는 내가 겪은 사람들의 책임도 크다. 이러한 일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나의 경우 이런 사람들을 연이어 만나면서 오랫동안 키워온 집에 대한 꿈을 접기도 했다. 결국 이런 사람들로 인해 아무 죄 없는 집까지 싫어하게 된 것 같다.
나는 첫번째 집인 신혼집을 산본에다 차렸는데 처음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 사장님도 좋았고 첫째가 태어나고는 아내에게 가깝게 지낼 친구도 생겨 좋았다. 바로 위층 사람과 가까운 사이가 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하지만 이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친구가 이웃집 할머니의 텃새에 시달리게 되면서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우리도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복도식 아파트다 보니 서로에게 양보가 필요했지만 위층 할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집 앞 복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며 현관문을 열어 지나다니는 것을 불편하게 하는가 하면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곳 토박이였던 할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가 외지 사람들로 채워지는 게 싫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먼저 온 사람이 우선이며 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기 일쑤였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지 못한다며 이것이 싫으면 이사를 가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하이에나가 따로 없었다.
이렇게 찾은 두번째 집은 안산의 신축 아파트였다. 우리가 찾은 아파트는 로얄층으로 거실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놀이터가 널찍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거기다 집이 급매로 나오면서 돈이 부족했던 우리에겐 이곳이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급하게 이전 집을 정리하고 나오게 되면서 계약과 함께 필요한 대출금을 마련하느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중도금을 더 줄 수 있느냐는 문의를 시작으로 막대금을 당겨서 달라는 다소 엉뚱한 주문을 매도인이 해왔다. 그러면서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걱정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다 자신의 집에 설치해 놓은 가구들과 집기들을 시공비 정도만 받고 팔겠다고 연락해 오면서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이 제안을 거절하자 분위기가 나빠졌고 결국 좋았어야 할 이사날의 기분까지 망치고 말았다.
부동산 사장님의 부탁으로 우리는 예정보다 서둘러 부동산으로 향했다. 매도인 부부는 우리보다 일찍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가 도착하자 잔금을 달라고 독촉했다. 하지만 은행업무가 시작되기 전이고 은행에서도 대출금 지급을 위해서는 조금의 절차가 아직 남아 있었다. 상황을 설명했지만 젊은 부부는 이것을 참지 못하고 화를 터뜨려 버렸다. 그리고는 돈도 없는 사람이 왜 집을 샀냐며 짜증을 내며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둘은 하이에나가 되어 집요하게 우리를 공격했다. 이 일로 집을 위해 그동안 했던 모든 노력들이 한순간에 후회로 바꿔 버렸다. 그러면서 부풀어 있던 새집에 대한 기대 또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쉽게도 둘은 이혼을 하면서 각자의 몫을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집 앞에 있는 물놀이 놀이터를 즐기는 것으로 두번째 집에 대해 조금의 보상과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무슨 일인지 이 바램마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세번째 하이에나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집을 좀 더 생기 있게 바꾸고 싶은 생각에 거실의 가구들을 내 손으로 직접 디자인하면서 다시 하이에나를 집에 끌어들이게 되었다. 나는 디자인과 도면을 준비해 소규모로 가구를 제작하는 곳에 맡기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미리 답사를 하고 샘플까지 확인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내 요구사항을 잘 반영해 달라는 바램으로 선금을 주고 일을 맡긴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집이 건축업을 하기 때문에 그쪽 일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배려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하이에나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결국 나는 초원에 홀로 버려진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가구를 포장도 뜯지 않고 조립도 하지 않은 상태로 두고 갔다. 판재의 두께와 마감도 달랐다. 판재는 얇아 휘청거렸고 급히 작업을 했는지 이곳저곳이 들떠 있었다. 여러 번 연락 끝에 사장을 만나 사과를 받고 다시 만들기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얼마 쓰지 못하고 이것을 버려야 했다. 이어 이 집에서도 쓸쓸히 나와야 했다. 나는 하이에나들에게 시달린 것에 억울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집을 대할 때면 나는 억울하고 화가 난다. 내가 초원에서 힘없는 초식동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억울하고 이곳이 하이에나들로 들끓는 것이 화가 난다. 우리가 사는 곳이 야만이 공존하는 초원인 것이 나는 싫다. 텃새를 부리는 진상 하이에나가 옆에 있는 것이 싫고, 집에 대해 기분 나쁜 목소리로 훼방을 놓는 하이에나 무리가 싫다. 그리고 남의 먹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하이에나와 같이 있는 것이 싫다. 집과 건축이 있는 곳이 초식동물들로 가득한 초원이면 좋겠다. 더 이상 하이에나가 없는 초원을 기대해 본다.
# 1년 내내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초원과 같은 정원을 꿈꿔 본다. 집에서 밖이 훤히 내다보이고 풀숲을 거니는 기분은 가볍고 상쾌할 것 같다. 바다로 펼쳐진 해변이 일광욕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듯 낮고 넓게 드리워진 초원 또한 바다와 같이 긴장을 내려 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해변에서는 찰랑이는 바다 소리가 들린다면 초원에서는 풀 소리가 찰랑이며 그 소리를 대신할 것 같다. 그러다 바람과 함께 수풀이 타닥이며 멀리서 초식동물이라도 나타나면 오랜 친구를 만나듯 넋 놓고 바라볼 것 같다. @브라질 루아 하우스 by 아르퀴테투라 내셔널2022 (Lua House by Arquitetura Nacional)
# 나는 한번이라도 이처럼 열정을 가져 본적이 있는가? 그리고 나는 또 이처럼 화려하게 꾸미고 누군가를 기다려 본적이 있는가? 내가 꽃을 좋아하는 방식은 이것을 정원에 심고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것에 진심인 집은 달랐다. 집은 홍벗꽃 나무의 분홍빛을 기억했고 이것으로 자신을 화려하게 꾸밀 줄 알았다. 집은 홍벗꽃보다도 더 화려하게 꾸미고 기다려야 함을 알았다. 그리고는 홍벗나무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을 골라 미리부터 나와 꽃이 피길 기다렸다. 이곳에 나와 있으면 기다림이 즐겁다는 것을 집이 느끼게 해준다. @스위스 L 하우스 by 필립 슈테비 2005 (L House by Philippe Stue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