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마침표가 아니다 부족함으로 시작해야 한다.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by dkb 하우스

많은 사람들이 노후를 생각하고 집을 지으려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집이 조용해지는 것 같아 본심 나는 이것이 아쉽다. 이렇게 지어진 집은 기념관 같은 느낌이 들고 집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집짓기는 마침표가 아니다. 집이 우리를 머물게 하고 쉬게 하는 것은 맞지만 집은 우리가 꿈꾸는 세계 여행과 같은 설렘들로 가득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세계 여행을 꿈꾸지만 실제로 이 꿈을 실현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세계 여행을 가고 싶지만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여유롭게 가겠다는 게 대부분의 생각이다.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돈도 시간도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 여행의 꿈도 사라지게 된다. 꿈을 미루면서 간절함과 용기 또한 같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다르다. 이들은 틈틈이 여행의 계획을 짜며 준비를 이어간다. 북미를 먼저 갈 건지, 유럽으로 떠날지, 아프리카를 포함시킬 건지 루트를 수정하며 계획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가고 싶은 나라들의 순서가 정해지고 날짜와 기간도 정할 수 있게 되면서 계획대로 꿈꾸어 오던 세계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조금씩 시작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


세계 여행에는 비교가 안되지만 내가 미루기를 반복하며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음악이다. 악기를 배우고 싶어 기타를 여러 번 샀지만 막상 배우지는 못했다.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바램만큼 겁이나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린시절 내가 겪은 음악에 대한 트라우마를 생각나게 했다. 그날은 가창부 특활활동의 학년별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6학년 형들과 누나들이 먼저 합창을 했고 막내였던 우리는 순서가 되어 교실 앞 단상에 올랐지만 아무 노래도 부르지 못했다. 나와 세 명의 친구들은 앞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그곳에 서 있어야 했다. 몸은 떨렸고 숨조차 들이 쉬기 어려웠다. 합창곡을 친구들과 상의해서 오라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교실 밖으로 나왔을 땐 그냥 그대로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정말이지 나는 학교의 담장은 물론 앞에 보이는 경사진 높은 산도 단숨에 타고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꽃밭에서, 초록바다. 바닷가에서와 같이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운 노래는 많았지만 우리는 앞에서 부르질 못했다. 결국 우리는 합창부에서 배운 노래 대신 어린이 방송의 ‘뽀뽀뽀’를 풀 죽은 목소리로 부르고는 무대를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네 명이 가창부가 된 데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특활활동을 선택할 때 선생님이 과목을 부르면 순서에 맞춰 손을 들어야 했지만 우리 네 명이 제때 손을 들지 못하면서 인원을 채우지 못한 가창부에 배정되었다. 처음 하는 특활활동 수업이라 망설이다 그만 일을 망쳐 버린 것이다. 미술부나 과학부라도 신청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뒤늦게 다시 바꿀 수는 없었다. 내성적인 성격이다 보니 눈에 띄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4명은 특활활동이 있을 때면 수업 시작 종이 울리고 나서야 반에서 나와 제일 늦게 가창부 교실로 들어 갔다. 그리고 합창을 할 때면 음악 선생님의 건반에 맞춰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우리는 합창도 열창도 하지 않았다.


나는 최근 새로운 결심을 했다. 세계 여행과 같이 내가 꿈꾸는 멋진 꿈들을 이제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예전처럼 그냥 기다리지 않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손을 들고 이것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그동안 미루기로 일관해 오던 음악에 대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먼저 오래전에 사 놓은 기타를 꺼내 악기점에 가져가 점검을 받았다. 그리고는 집 근처에 있는 음악 학원에 등록했다. 이것으로 시간과 함께 조용히 포기할 뻔했던 세계 여행과도 같은 나의 음악에 대한 꿈을 마침내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엔 투박하다. 정리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생각 또한 처음엔 투박하다. 그러나 투박한 생각이 조금씩 모양을 잡으면 달라진다. 우리가 꿈꾸는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생각에 작은 살들을 이어 붙이면 자전거의 바퀴가 되고, 생각을 잘 접고 연결하면 매끄러운 자동차가 된다. 우리의 여행에 필요한 탈것이 되는 것이다. 세계 여행의 꿈이 실현되게 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집짓기도 지금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호기심에 시작할 수 있어야 하고 부족하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작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집짓기 여정은 자신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떠나는 여행과 같아야 한다. 가볍게 떠나는 여행을 무거운 짐으로 챙길 필요는 없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그 안을 채우면 된다. 어떤 것이라도 좋다. 누구든 짐을 완벽하게 챙겨 떠나는 사람은 없으니! 집짓기 또한 이렇게 여행 가방을 챙기듯 부족하게 시작하면 된다. 여행 가방을 가지고 가볍게 떠나 듯 우리도 씩씩하게 떠나면 되는 것이다.



# 부족하게 시작하는 여행과 작게 시작하는 집에는 많은 의미와 가치를 담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여행이나 생활을 선택한다면 숲과 바위가 가득한 곳까지 다가 갈 수가 있는데 이런 곳에서의 휴식은 독특하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작은 우드 하우스와 같은 미니멀한 생활을 즐기기에 알맞을 것 같다. 오히려 작게 시작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을 좋아 한다면 작은 공연을 생각할 수 있고 제대로된 명상을 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작게 시작하는 것이 작은 결과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작은 텃밭에서 우리가 필요로하는 채소와 과일이 길러지는 것과 같다. @체코 포레스트 힐링 by 울릭 아키텍쳐 2013 (Forest Retreat by Uhlik architekti)



# 우리 모두는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지만 집안이 수영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자연을 동경하면서도 집에서 녹색의 꿈을 꾸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집은 우리가 꿈꾸는 세계 여행과 같은 설렘들로 가득해야 한다. 우리가 좋아는 것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집짓기는 집을 자유롭고 즐거운 여행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집을 특별한 것들로 채우는 상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꿈꾸는 여행처럼 집에 대해서도 우리가 모든 것을 0으로 놓고 상상하면 좋을 것 같다. @이스라엘D 하우스 by 라반 아키텍쳐 2022 (D House by Lavan Archite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