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양면, 동굴벽화, 신전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by dkb 하우스

[충돌, 모든 것의 시작]


쉬울 거라 생각했던 도입부에서 고전하게 되면서 고쳐 쓰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처음에는 집의 기원으로 시작하면서 역사 박물관이 된 듯 글이 지루해졌고, 그 다음은 다르게 한다는 게 그만 원래 계획과는 거리가 먼 어려운 인문학이 되어 버렸다. 새롭게 시작하면서 가벼움과 재미를 놓친 것이 문제였다. 결국 글을 다시 쓰기로 마음먹고는 어떤 것이 가벼울까? 어떤 것이 재미있을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문뜩 생각난 것이 어머니였다. 멋쟁이인 나의 어머니가 일을 즐기는 방식으로 이번 장을 쓰고 엮으면 재미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없던 자신감도 다시 생겨났다.


어머니는 주변의 다른 어머니들과 다른 특별한 것이 한가지 있으셨다. 어머니는 고된 농사일을 다른 어머니들과 똑같이 했지만 즐기는 방식이 달랐다. 농사일을 끝마치고 나면 어머니는 자신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 다른 어머니들이 바쁜 농사철이 끝나면 휴식을 취하거나 다음 농사일을 준비하는 것과는 달랐다. 어머니는 단골로 정해 놓은 가게들을 차례대로 돌며 그동안의 노고를 기쁨으로 바꾸셨다. 피부과에 들르는 것을 시작으로 미용실과 브랜드 의상실을 순서대로 다녀와서는 몇일간 여행을 떠나셨다.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머니가 지으신 농사는 항상 최상품으로 팔렸다. 나도 이것을 따라해 본다는 생각으로 재미있게 즐기며 이번 글을 써 나가려 한다.


내가 생각하는 집의 시작은 충돌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운동 경기에서 공을 대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우리는 경기장에서 공을 감상하지는 않는다. 공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큰지 그리고 얼마나 둥근지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공이 충돌하는 것으로 경기가 시작되듯 우리의 이야기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의 축구 경기도, 우리의 집도 그리고 우리의 지구도 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쯤에서 나의 아버지가 등장해도 좋을 것 같다. 아버지는 많은 일을 발을 사용해 해결했는데 그럴 때면 충돌이 일어나는 걸 볼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물건을 찾을 때도 손 대신 발을 사용했고 정리를 할 때도 가능한 모든 것은 발로 다 하셨다. 내가 어릴 때 방에서 프라모델을 만들고 있으면 아버지는 프라모델이 든 상자를 발로 툭 치는 것으로 내가 무엇을 만드는지를 확인하셨다. 그러면 상자 속에 두었던 탱크의 바퀴들이 바닥 이쪽저쪽을 구르다 부딪쳤다. 아버지가 장난감 상자를 발로 툭 치는 것으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지구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발로 툭 친듯한 정교하지 않은 충돌로 지구가 만들어졌다. 집 역시도 지구가 만들어지듯 그리고 상자에서 빠져나온 탱크 바퀴들이 구르듯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충동하며 만들어졌다.


# 우리가 사는 지구는 충돌로 뭉쳐진 실타래가 구르듯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무디 XMAS by 와이 스튜디오(Moody XMAS by WAY Studio)


[양면으로 존재하는 세상]


충돌은 한 개였던 세상을 두 개로 나누어 놓았다. 충돌로 시작된 경기가 관중을 둘로 나누어 놓는 것처럼 충돌로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달이 생겨났다. 이렇게 세상은 둘로 바뀌었지만 이것을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마치 세상에 충돌이 없었던 것처럼 한쪽 면에서 살아가는 듯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지구가 납작한 평면이라 믿어 왔고 이것이 둥글다는 것을 안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이니 말이다. 바다의 끝이 낭떠러지로 되어 있다는 믿음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바다는 거칠고 거대한 존재였고 그에 비해 우리의 배는 작고 약해 그곳까지 갈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이것이 과거든 현재든 그리고 그게 누구든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어릴 적 살던 집에는 넓은 마당과 텃밭이 있어 여러 동물들을 키울 수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토끼, 오리, 소, 돼지를 길렀다. 그런데 이들이 바라보고 대했던 세상 역시도 작은 평면이었다. 나는 토끼를 얻어와 나무로 된 사과 상자에 넣어 길렀는데 그때 토끼가 바라보는 바깥 세상은 사각의 평면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오리를 기를 때는 우물 모양의 콘크리트 홀에 기르면서 이들의 세상 역시도 평면의 동그라미였을 것 같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 있는 축사에는 소와 돼지를 길렀는데 방을 나누어 쓰게 되면서 둘이 대하는 세상 역시 서로 달랐다. 소는 큰 창을 통해 텃밭을 내다볼 수 있는 곳에 살게 되면서 세상이 반듯한 텃밭 모양으로 되어있다고 여겼을 것 같다. 반면 돼지는 담장과 붙은 곳에 살게 되면서 세상이 콘크리트로 되어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들은 집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살았지만 이들이 바라본 세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몰랐을 것 같다.


세상은 양면으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고 대하는 것은 한쪽면의 세상인 것 같다. 이렇게 우리가 한쪽에 집중하고 익숙해지면서 반대편을 대할 기회 또한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이렇게 마주하는 반대편은 혼돈의 세상으로 느껴 지기도 한다. 청력을 잃었던 사람이 처음 보청기를 끼게 되면 혼돈의 시간을 거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것은 처음 보청기를 끼면 듣고 싶은 상대방의 말보다 주변의 소음이 더 크게 들리면서 패닉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뇌가 목소리와 소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로 인식하면서 생긴 문제라고 한다. 소리와 소음을 하나가 아닌 둘로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반대편의 세상은 목소리와 소음의 차이만큼 크다. 그리고 대비가 클수록 소음도 더 크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편을 걱정으로 바라보는 대신 축구를 하듯 뻥 차고 앞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 당신은 공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으로 이것을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충돌을 일으키며 뻥 차고 골문을 향해 달려 나갈 것인가? @독일 축구 뮤지엄 by HPP 아키텍쳐 2015 (German Football Museum by HPP Architects)


[동굴벽화, 긴 관찰의 시간]


우연이지만 내가 어릴 적 처음 지은 집은 동굴과 많이 닮았었다. 나는 창고에서 접이식 비치 벤치를 방으로 가져와 놀곤 했다. 이것의 다리를 펴고 그 위에 올라 앉아 바닷가를 상상하며 놀았다. 벤치는 파란색 망사로 되어 편안했지만 그냥 누워만 있는 것으로는 금세 시시해졌다. 그러면 나는 벤치의 양쪽 끝을 위로 올려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놀았다. 이렇게 놀다가 저녁을 먹으면 놀이가 끝나는 게 아닌 다시 2차전에 들어 갔다. 이번에는 삼각형의 벤치 위에 얇은 이불을 덮어 텐트를 만들었다. 그러면 텐트는 작은 동굴이 되었다. 나와 동생은 여기에 들어가 노는 것이 좋았다. 우리 둘은 팬티와 런닝 차림으로 잠자리에 들기전까지 놀았다. 그곳은 좁았지만 몸이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답답할 때면 창문을 열듯 이불을 젖히고 얼굴을 밖으로 내밀고 있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방에 불을 끄고 랜턴을 가져와 안에서 놀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만화책을 보기도 했고 장난감 카메라 속의 사진을 불빛에 비추어 보기도 했다. 이렇게 놀면 우리가 있는 동굴이 어두운 영화관이 된 듯 모든 것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관찰의 시간이고 사귐의 시간이다. 처음엔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상대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으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 그리고 상대와 친숙해지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즐거움도 커진다. 인류가 최초로 그렸던 동굴의 벽화도 이렇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들은 자연의 모습을 동굴로 가져오기 위해 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들은 먼저 낮 동안 대상을 찾아 다니며 관찰의 시간과 사귐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무엇을 그릴 것인지 또 어떻게 그릴 것이지에 대해 다시 긴 사고의 시간을 거치며 수많은 디테일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관찰하는 것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사귐의 과정을 통해 그림의 디테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관찰과 사귐의 시간은 결국 그림의 주제와 재료, 그리고 그림의 표현을 바꾸어 놓으면서 최초의 동굴 벽화에서 현대 미술로 이어지게 했다.


관찰이 잠들어 있는 우리의 기억과 감각을 깨어나게 했다면 사귐은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렇듯 동굴은 위험을 피하는 어두운 피난처가 아닌 우리가 많은 상상을 하게 하고 용기를 얻는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 우리는 동굴에서 많은 상상을 하며 긴 관찰의 시간을 보냈다. 즉 동굴은 영화관과 같은 상상의 공간이었다. @맥시코 더 케이브 by 코타파레데스 아키텍쳐 2017 (The Cave by COTAPAREDES Arquitectos)


[아프리카 동굴, 신전]


수 만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동굴에서 우리가 최초로 살았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내가 보기에는 최초의 인류가 동굴에서 위험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그곳이 최상의 생활 공간이 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이것은 동굴이 접근이 쉬운 것도 아니고 모두가 생활하기에도 부족하고 불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굴을 중요한 거점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소수의 사람들이 동굴에 살며 일정한 시기에 여기에 함께 모이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동굴을 신전으로 대하며 위안을 삼지 않았나 상상해 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용기를 얻어 동굴 밖 먼 곳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동굴을 공동 생활의 용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가 공공 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동굴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동굴에서 생활했다면 동굴은 낙서들로 넘쳐나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도 짓궂은 데가 있고 낙서하는 걸 좋아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오래된 과거라고 해서 아이들끼리 몰려다니지도 짓궂은 장난도 치지 않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누군가 벽화를 그리는 것을 보거나 그려 놓은 것을 보게 된다면 이것을 흉내 내거나 따라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먼저 그려진 벽화를 다시 그릴 수도 있고 새로운 그림들로 빈공간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릴 적 나는 친구들을 따라 여름 성경학교에 간 적이 있다. 우리는 예배당에서 잠을 잤는데 그때 우연히 내게 익숙했던 일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다. 우리는 저녁 예배를 마치고 잠을 자기 위해 교회의 벤치를 마주보게 놓아 침대를 만들었다. 내가 놀란 것은 몇몇 아이들이 벤치 위를 이불로 덮어 동굴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놀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집에서 파란색 비치 벤치를 가지고 동생과 놀던 것과 똑같았다. 우리는 이것을 따로 배우거나 본적도 없었지만 똑같이 동굴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것 때문인지 어두운 교회 안이 동굴처럼 느껴졌다. 이불을 감싸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과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박쥐가 동굴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동굴에 있으면 몸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이것 역시도 교회나 신전이 아니면 느끼기 힘든 기분인 것 같다.


# 무릎 높이로 붕 떠 있는 곳은 우리를 경외하고 다짐하게 한다. 동굴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의 용기도 무릎 높이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이태리 카바 아르카리 by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쳐2018 (Cava Arcari by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