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아래채, 경계, 어린왕자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by dkb 하우스

[멈춤, 전망대]


나는 인간이 지은 최초의 집을 시작하면서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최초의 집에 대한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이다. 처음 인간이 지은 집은 동물의 것과 비교해 그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약7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동굴에서 벗어나 이동을 시작하고 집을 지었을 때는 분명 동물들과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가르는 기준이 멈춤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이동을 하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아름다움을 감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 다른 삶과 함께 다른 집에 살고 있을 것이다. 과연 인간 말고도 경치를 찾아 길을 떠나고,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경치를 감상하고, 또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사는지 궁금하다. 이렇듯 우리가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와~’하고 길게 내뱉는 감탄사야 말로 우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즐거운 함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집을 단순한 목적이 아닌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게 했을 것이다. 우리가 경치 좋은 곳을 골라 집을 짓고, 그곳까지 갈 수 없다면 전망대를 만들어 바라보고, 길이 끊어진 곳에는 터미널과 항구를 만들어 앞으로 나아간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우리는 집에 대해 그 의미와 사용을 계속해서 키워가야 한다. 집이 단순한 주거의 개념을 넘어 우리는 집을 통해 멀리 바라보고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충돌하는 곳에 집을 지었다. 좋은 경치와 마주치며 충돌하는 곳에는 집을 짓고, 적과 충돌하는 곳에는 방어할 수 있는 성곽을 쌓았다. 절벽과 바다에 막혀 더 이상 다가 갈 수 없는 충돌하는 곳에는 전망대를 세우고, 그리고 충돌의 돌파구로 먼 곳으로 갈 수 있게 터미널을 만들었다. 이것은 인간이 직립보행으로 이동하는 것에 더해 가던 길을 멈추고 경치를 감상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관측과 예측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동굴 생활에 집착했다면 우리는 직립보행과 멈춤을 단순히 미어캣처럼 일어나 주변의 위험을 살피는데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이동 또한 새로운 도전이 아닌 다른 동굴을 찾는 용도로 썼을지도 모른다.


# 집에 계단을 놓아 높은 곳까지 오르게 하는 것으로 관찰이 가능해진다. 새로운 발상과 행동이 집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중국 류바산 조망 센터 by 슈린 건축 디자인2022 (Multifunctional Service Center of Liuba Mountain Scenic Area by Shulin Architectural Design)


[최초의 집, 아래채]


이제 집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하지만 아직 본론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이번 장에서는 동굴을 집으로 사용하거나 자연 그대로를 집으로 이용하던 것에서 벗어난 최초의 집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누구나 독립을 하여 자신의 첫번째 집을 갖는 설레는 시기가 있다. 독립을 하여 자신의 집을 가지게 되면 좌충우돌하는 부분도 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집을 꾸미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와 같이 7만년 전의 인간도 이와 똑같은 설렘으로 최초의 집을 지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들은 작고 가볍게 시작했을 것이다. 동화 속 아기 돼지 삼형제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집을 지었을 것 같다. 월든(Walden)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지은 작은 오두막처럼 어쩌면 최초의 인류가 지었던 것도 이것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땅을 파고 돌을 나르고 도끼질을 하는 것으로 작고 소박한 집을 지은 것처럼 최초의 인간이 지은 집 역시도 하나의 도전이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동굴을 똑같이 모방해 살다가 동굴 가까이에 최초의 집을 짓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아래채와 닮은 모습이었을 것 같다. 동굴에서 공동 생활을 하면서 독립을 위해 최초의 집을 지었을 것이다. 그래서 본채에 작게 붙은 아래채 같이 지어졌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에 용기를 얻어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의 집은 동굴 주변의 단단한 바위벽에 붙은 형태로 짓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이렇게 하면 구조도 간단하고 적은 노력으로도 쉽게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집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집의 형태를 만들고 다듬어 나갔을 것이다. 이것에 자신감을 얻어 인간은 동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아프리카에서 이동을 시작한 우리는 충돌로 멈춰 서는 곳에 우리의 첫번째 집을 지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동물들이 뛰어 노는 초원을 거쳐 열매가 있는 언덕과 물고기가 있는 강과 바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아프리카를 떠나 더 넓은 대륙으로 나아갔다.


# 인류가 지은 최초의 집은 동굴과 닮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집으로 치면 작고 검소한 우리의 아래채와 닮았을 것 같다. @스페인 하우스 케이브by 우모 스튜디오 2012 (House Cave by UMMO Estudio)


[경계, 나눈 것과 펼친 것의 차이]


충돌로 시작한 지구에서 우리는 집과 함께 이동하여 현재를 살고 있다. 그런데 같은 시대 같은 문화라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대저택 투어와 언더그라운드 투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름의 차이 또한 큰 것 같다. 과거에는 집과 땅을 대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한쪽이 땅의 경계가 보이게 땅을 팠다면 다른 한쪽은 땅의 경계가 보이지 않게 땅을 팠다고 할 수 있다. 서민들은 도시에서 동굴처럼 깊게 땅을 파고 건물의 지하로 들어가 살아야 했다. 반면 귀족들은 자신의 땅에 울타리를 치는 대신 땅을 파서 웅덩이를 만드는 것으로 경계를 구분하고 자신의 양을 지켰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경계가 없이 멀리까지 볼 수가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정원에 경계를 없애기도 했다. 프랑스의 대표 정원인 베르사유 정원은 기하학과 대칭의 조형이 만들어내는 스케일로도 유명하지만 정원의 범위를 왕궁에서 멀리 보이는 숲과 운하까지 포함시키기도 했다.


집 역시도 우리가 집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집의 영역이 달라진다. 이것으로 집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기도 한다. 집의 경계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열린 집이 되기도 하고 닫힘 집이 되기도 한다. 시각에 따라 큰집이 작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작은집이 커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열린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우리는 충돌하는 곳에 집을 짓지만 우리는 이 집을 종착점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렇게 집이 멀리 바라보고 새로운 꿈을 꾸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매력적인 장소를 찾아 이동해 왔듯 더 많은 변화를 추구하면 좋겠다. 꿈이 담긴 우리의 집에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우리의 집에 위대함에 걸맞은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 집이 종착점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으로 경계없이 멀리 별들을 바라보고 꿈꿀 수 있으면 좋겠다. @캐나다 드레이크 데본셔 인 by +통통 2015 (Drake Devonshire Inn by +tongtong)


[어린왕자의 여행]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한 장소에서 한사람을 만나게 되면서였다. 디자인 개발 단계에 3D 데이터를 만드는 시기가 되면 외부 업체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함께 일을 했던 곳에서는 별관 2층에 조그만 사무실을 따로 마련하여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주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점심시간이 되면 현장에서 일하는 근무자 한 명이 그곳을 찾아왔다. 그는 양해를 구해 그곳에서 성경 필사를 했다. 그런데 그의 일과와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힘든 현장 일로 피곤도 하겠지만 그리고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더 재미있을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성경 필사는 쉬거나 멈추는 날이 없었다. 그렇다고 적게 하는 날도 없었다. 꼭 어린왕자 같았다.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에서 바오밥 나무의 싹을 캐듯 그는 어린왕자가 되어 그곳에서 성경 필사를 이어갔다.


나는 어린왕자와 닮은 궁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린왕자가 별에서 바오밥 나무의 싹을 캐고, 화산을 청소하고, 석양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듯 궁전에서의 일과도 비슷하게 진행된다. 좁고 휘어진 계단을 지나 있는 침실에서 잠을 깨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드레싱 룸을 거쳐 방들을 차례대로 옮기며 식사와 커피, 미팅, 음악 감상과 그림 그리기 같은 취미를 이어간다. 궁전은 각각의 방들이 한 줄로 이어져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래서 방은 한쪽으로 창이 나 있고 다음 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순서대로 문을 열고 통과해야 한다. 이것을 호텔에 비유한다면 방들이 길게 이어져 있는 스위트(Suite)와 비슷하고 교통수단에 비유한다면 길게 이어진 기차와 같다. 그래서 이렇게 생긴 기차를 탄다면 칸칸이 다른 방으로 이어져 있어 그 안을 이동하는 것이 또 하나의 여행이 된다. 긴 시간을 머무는 우리의 집 역시도 그 안을 재미있게 여행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 집이란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집이 긴 여행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집은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 되어야 한다. @모나코 스칼라 궁전 by 바티룩스 샘 2022 (Palais de la Scala by Batilux 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