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은 처음엔 영문을 모르다가 시간이 지나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늦게라도 깨달은 것에 고맙기도 하지만 나를 잘 몰라 생긴 일 같아 내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최근 건축에 관해 이런 기분이 든 것은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DDP)를 다시 방문하게 되면서다. 디자인 일을 하다 보니 우연치 않게 DDP를 자주 갈 수가 있었다. 작년 한 해만 하더라도 나는 살바도르 달리전과 팀 버튼 특별전을 보았고 이곳에서 디자인 행사와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가진 의문과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도 풀리질 않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건축을 본다는 기대감에 DDP를 찾았지만 솔직히 나는 그곳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이 가고 횟수가 더해져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낯설고 어색한 것도 눈에 익게 되면서 좋아지게 마련인데 이상하게 DDP는 점점 더 불편하고 비어 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내가 이것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렸다. 거대하게 포장된 겉모습에 집중하면서 그 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남의 눈으로 이것을 대하게 되면서 정작 중요한 나의 감정을 늦게까지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용도를 가지고 태어나듯 건축물 역시도 용도에 맞춰 그 크기가 정해진다. 그만큼 건축은 내부의 공간 활용도가 중요하며 건축물의 외관 또한 용도에 맞게 커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DDP는 그렇지 않았다. 용도도 없이 그리고 공간도 없이 외관만 크게 지어졌다. DDP의 건축을 보면 과거 우리의 잘못된 관행이 그대로 반복된 것 같은 인상이 든다. 우리는 부족한 것을 빨리 채우기 위해 큰 것들을 해외에서 가져다 놓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과거에는 거대한 포플러 나무를 가져다 심었다면 지금은 대형 프로젝트를 해외 유명 건축가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고 있다. 큰 것일수록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무게 또한 크고 신중해야 하지만 이것에는 그침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조급함과 서툶은 문제와 불편함을 만들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DDP의 설계에 하디드의 작품을 선택하면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정형의 건축물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그만큼의 불편한 무게도 함께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디드의 스케치 몇 장을 수천 억원을 들여 가져다 놓았지만 속내는 그만큼 화려하지 못한 것이다.
곡선의 외관을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건축의 내부는 작고 반듯한 모양을 가지게 되었다. 바깥에는 구멍이 송송 뚫려 있지만 안으로 막히면서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대한 외관에 대비되는 초라한 내부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 작아진 공간 마저도 해외의 전시들로 힘겹게 채우며 명맥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비어 있는 우리의 산야에 포플러를 들여와 그곳을 채웠다. 그리고는 불편함을 이유로 이것을 잘라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DDP라는 거대한 포플러를 다시 가져와 심은 듯하다. 마음이 가볍지 않다. 시간이 지나 불편함을 이유로 쉽게 버리는 것도 그렇고 크기만 보고 대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존심만 지키려 하는 것 같아 싫다.
우리는 문화가 층층이 쌓이면서 정체성과 경쟁력이 갖춰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와 건축이 무겁게 가라 앉거나 침몰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기다 하다. 우리는 가벼움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것을 우리가 지혜로 쌓아가는 일련의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로켓처럼 가볍게 쏘아 올릴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만큼의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일본의 일론 머스크로 불리는 IT업계의 풍운아 호리에 다카후미(Horie Takafumi)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으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고정관념을 깨는 그의 사고는 의외로 간단하고 쉬워 보이기까지 하다. 호리에는 1997년 일본이 출전하는 월드컵 최종 예선을 보기 위해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르로 가려고 했지만 비행기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일본에서 말레이시아로 가는 비행기가 적은데다 일본의 응원단만으로도 쿠알라룸프르행 비행기표가 이미 동났던 것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쯤해서 포기하겠지만 그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지도를 펼쳤다. 그러고는 지금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지도를 바라보았다. 조호르바르로라는 도시가 말레이시아에 있다는 선입견을 버리자 다리 하나 건너에 있는 싱가포르가 보였다 한다. 그리고 실제로 월드컵 예선을 보기 위해 말레이시아 대신 싱가포르로 가는 것을 생각하거나 실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호리에는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선택하면서 팀의 승리를 직접 보는 희열을 즐길 수 있었다.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그리고 의심해 봐야 한다. 현실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한가지 방법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우리가 똑 같은 방법으로 포플러 나무를 심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집착으로 외형만 기형적으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지도를 펼치듯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실속으로 연료를 가득 채워 가볍게 비상할 수 있어야 한다.
# 사막의 모래 사구는 바람에 따라 모습을 바꿔가며 천천히 움직인다. 이렇게 시간과 함께 만들어진 움푹한 풍경은 편안한 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공간 역시도 이렇게 시간을 두고 만들어지고 다듬어질 때 깊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축은 실내 크기에 꼭 맞는 외관을 가지게 되면서 평온함을 내부와 외부에서 느낄 수 있다. 모래 사구가 내려 앉은 듯한 공간은 우주선 같은 황홀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앉아 있으면 시웅~하고 하늘을 나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독일 란서호프 실트 헬스 리조트 by 인제호벤 어소시어트 2022 (Lanserhof Sylt Health Resort by Ingenhoven associates)
# 균형 잡힌 건축이 되기 위해서는 기능성과 함께 실내 환경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집의 외관을 리듬감 있게 바꾸는 것으로 현재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다. 정적이었던 벽면의 일부를 열고 닫는 것으로 변화와 역동성을 가질 수 있다. 건축은 사용하는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벽이 가림이나 막힘이 아닌 또 하나의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벽이 열림으로써 바깥의 공간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공간이 움츠리지 않고 맘껏 넓게 기지개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체코 리솔라제 테크니컬 서비스 센터 by 프로그레스 아치텍쳐 2022 (Technical Services Base Lysolaje by PROGRES ARCHITEKTI)
> 참고 자료: 있는 공간, 없는 공간 (유정수, 쌤앤파커스, 2023), 가진 돈은 몽땅 써라 (호리에 다카후미, 쌤앤파커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