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더 나은 사용을 허락받는 것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by dkb 하우스

생명이 시작되는 모든 것은 천천히 배우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서 어린 아이의 걸음에는 생명력, 호기심, 질문으로 가득하다. 어린 아이 때를 회상해 보면 그때는 두려움이 없었다. 이것이 오히려 나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고 미래를 준비시켜 주었다. 성인으로 성장해 마주하는 세상은 어린 아이 때와 달리 우리를 떨게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과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즐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동심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저번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나는 후천적인 이름에 집착하며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다. 나는 가족들을 이름 대신 애칭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 나의 스마트폰에는 아버지는 대장, 어머니는 왕마담, 아내는 태양 위 써니, 아이들은 엄청 클 너, 크기 시작하는 너로 저장해 사용하고 있다. 가족을 제일 앞에서 이끌었던 아버지에게는 ‘대장’이라는 별을 달아 주었고, 집안 대소사를 능수능란하게 해결했던 어머니는 ‘왕마담’으로 풍모를 남겨 놓았다. 내게 태양과도 같으면서 뜨겁지 않게 빛나는 아내는 ‘태양 위 써니’라 부르고, 계속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는 ‘엄청 클 너’와 ‘크기 시작하는 너’로 바꾸어 쓰고 있다. 나는 새로 지은 집에다 몇 개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건축가인 동생의 일을 작게나마 돕게 되면서 동생이 짓는 집에도 이름을 붙여주는 행운을 얻었다. 이렇게 붙인 이름은 사진과 함께 건축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부부를 위해 지어진 집에는 ‘시작하는 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평생을 고향인 시골에서 살다 도시에서 생활을 하게 된 부모님의 집에는 고향의 산과 들을 느끼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들집’이라 지어 주었다. 그리고 집의 이름만 가지고도 집의 모양과 여기서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얕은 담집’이 있다.


내가 이름에 열광하며 이것에 의미를 찾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겪는 일상이며 우리가 매일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름을 가지고 이것을 찾고, 저것을 사고 그리고 모든 것을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름 없이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를 못한다. 심지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 역시도 이름 없이는 어디에도 저장되지 못하며 어떻게도 존재하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마치 우리가 이용하는 엘리베이터에서 조차 원하는 층의 버튼을 눌러야 하듯 이름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름이 곧 생명이고 목숨이다. 이름이 삶이고 운명인 것이다.


꼰대 아이쿠로 활동중인 전익관 대표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우리의 집에 좋은 이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말하는 걸 본적이 있다. 그는 아파트라는 비슷한 구조와 형태를 그대로 감내하며 살기보다 이것을 자기에 맞는 스타일로 바꾸면 집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집의 디자인이나 새로 이사를 가는 집에 아름답거나 의미 있는 이름을 붙일 것을 제안한다. 할리데이비슨 매니아이기도 한 그는 집에서 더 많은 힐링을 받는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집은 아주 특별하다. 그가 이렇게 바뀐 데는 미국 이민시절 한 성공한 미용사를 만나게 되면서다. 이 성공한 미용사는 교육장을 화려하고 깨끗하게 지어 이곳에서 가난하게 사는 미용사들을 가르치며 용기를 주고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감동한 그는 자신의 집을 ‘용기의 집’이라 이름 붙이고 집에 갈 때 마다 용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용기를 얻기 위해 집에 간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집에 대한 용기 또한 아이쿠하고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다. 그는 용기의 집을 지중해의 빈티지 컨셉으로 꾸며 이곳에서 이국적인 삶을 살게 했고 이것의 기록을 위해 강택규 작가를 초청해 사진을 찍고 화보집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우리가 집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집은 용기를 얻는다. 이것으로 우리는 집으로부터 더 나은 사용을 허락 받는다. 우리가 이름을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용기는 이런 집을 원하는 건축주로부터 시작된다. 얼마전 한 젊은 건축주로부터 고맙고 기분 좋은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시작하는 집’으로 이름을 붙여주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운영하고 있는 건축 블로그에 자신이 꿈꾸던 집을 지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후기로 올리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나 역시도 그간의 변화가 궁금했는데 부러울 만큼 그는 집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아름답게 간직하며 키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집을 가족의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기 위해 집이 완성되는 모든 과정을 네이버 카페에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그리고 궁금한 최근의 모습을 건축 블로그에 올려주면서 꿈꾸는 고래 가족의 행복한 유영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집이 ‘나 잘 지내고 있어’ 하고 대답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꿈꾸고 있는 집이 있다면 이것의 의미와 함께 이름을 찾는 것으로 우리의 집짓기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과정을 거치면 남들과 다르면서 자신에 맞는 집이 남게 된다. 집에 없었던 새로운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집은 연어가 되어 강의 원류를 찾아 회유하게 하고 조각칼이 되어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게 한다. 나의 이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이름을 동네 할아버지가 지어주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초등학교 때는 별명이 사과라고 불리면서 내 이름이 과일이 될 수 있음을 그때 알았고, 중학교 때는 교생 선생님이 내게 편지와 함께 시를 적어 주면서 내 이름이 시인이 될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나의 이름에 대해서도 더 나은 사용을 허락 받아야 할 것 같다.



# 우리는 집을 미래를 위한 준비하는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나고 가족의 구성이 바뀌면 더 큰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변화를 준비하고 즐기는 것 역시 멋진 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에는 내가 꿈꾸는 미래의 것들을 비밀로 숨겨 놓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럼 이것이 비밀의 공간이 되어 우리를 설레게 할 것이다. 그 사이에 거울을 놓아 현재와 미래를 구분할 수 있고 이렇게 나누어진 공간에 꿈을 따로따로 나누어 담을 수가 있다. 거울의 맞은편인 비밀의 공간은 내가 맞이할 꿈들이 미리 와서 머물게 해도 좋다. 그러면 이 앞을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꿈에 가까워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위한 비밀의 공간을 만들고 그 문을 조금씩 열어 볼 수 있게 하자. @프랑스 빌레트 아파트 by 미오구이 2023 (Villette Apartment by Miogui)



# 목욕탕은 우리의 일상을 연결시켜주고 어린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익숙하고도 특별한 장소였다. 지금은 이것이 구식이 되면서 예전의 목욕탕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공중 목욕탕에도 우리의 달램이 필요해 보인다.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게 해주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 목욕탕 안에서는 우리 몸의 쌓인 피로를 풀어주고 문을 열고 나온 목욕탕 밖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쉬게 하고 그리움을 달래 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목욕탕 앞에만 앉아 있어도 옛 생각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즐겁고 가벼워질 것 같다. 물을 묻히지 않고도 목욕을 마친 듯한 기분이 들 수 있는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역시 찜질방과는 다른 기분일 것 같다. @일본 코마에유 공중 목욕탕 by 스킴마타 아키텍쳐 + 조 나가사카 2023 (Komaeyu Public by Schemata Architects + Jo Nagas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