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신발끈만 풀리는 나만의 이유를 찾듯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by dkb 하우스

발견이란 우리 주변에 보이는 평범한 것에서 아무도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평범한 것에서 찾는 발견은 우리의 경험을 특별한 것으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런데 발견은 그 기준을 바깥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둬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기준을 바깥인 남에게 두게 되면 다수가 원하는 길을 가게 되면서 아무도 해보지 못한 것들과는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발견을 하기 위해서는 남이 아닌 내가 더 많이 필요하다. 나에게 더 많이 질문하면서 의문을 가지고 우리 주변의 평범한 것들을 바라봐야 한다.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으로 발견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신발끈이 풀렸다. 몇 주전 새로 산 신발인데도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길을 걷고 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발을 보니 신발끈이 풀려 있었다. 새 신발이라 이것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왜 신발끈이 풀리는 걸까?’ 그리고 ‘왜 나는 오른쪽의 신발끈만 풀리는 걸까?’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입에서 질문이 되어 튀어나왔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이것에 대해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발끈이 풀릴 때면 이것을 목격한 주변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지만 이것을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세상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는 네이버 지식인에게 질문도 해보았지만 여기서도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검색에서는 신발끈 매는 법, 신발끈 풀리지 않게 묶는 법 같은 것들 뿐이었고 지식인 답변에서는 내가 오른발을 많이 쓰기 때문이고 오른쪽 신발끈을 약하게 묶기 때문이라 했다. 그런데 이것도 내게는 틀린 대답이었다. 나는 심각한 왼손잡이라 발도 왼쪽을 훨씬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맞다면 대다수가 오른손잡이인 세상에서 오른쪽 신발끈이 잘 풀린다는 정설이 있을 법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이것을 주제로 한 과학 칼럼니스트가 쓴 글을 읽을 수가 있었다. 이것으로 나의 궁금증이 해결될 것 같았지만 운동량이 많은 오른쪽 신발이 잘 풀린다는 같은 결론이었다. 그러면서 수학이나 과학, 구조공학까지 사용한다 해도 신발끈이 안 풀리게 할 수는 없다는 다소 비관적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우리 주변에는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대답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런 대답들은 우리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것에 만족하며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발견에 목말라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이것이 집에 관한 발견이라면 우리는 이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는 자신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이 대신할 수도 남에게서 답을 찾을 수도 없다.


자신의 취향을 아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나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책을 읽겠다며 방 하나를 통째로 서재로 꾸민 적이 있다. 마침 작은 방 하나가 비어 있어 별 어려움 없이 만들 수가 있었다. 나는 여러 브랜드의 전시장을 다니며 내가 원하는 모양의 책장과 테이블을 장만했다. 스탠드와 함께 바퀴 달린 등받이 의자까지 갖다 놓으니 집에 그럴듯한 서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해외 근무를 할 때는 서재가 있는 집을 임대할 정도로 나는 긴 시간을 서재에 빠져 있었다. 많은 시간을 서재에서 보낸 만큼 나는 나의 집에 서재가 영원히 존재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의 집에는 서재가 없다. 대신 거실 중앙에 커다란 이케아 테이블을 놓고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내가 집을 새로 짓는다면 나는 이 테이블의 활용도를 좀 더 높여 보고 싶은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미리 생각하거나 만들어 놓은 것을 그대로 가져다 내 것으로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내 집이 모방이 아닌 더 내 것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거실에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생활하게 되면서 지금 우리집에는 식탁이 따로 없다. 그러면서 소파와 TV도 작아졌다. 이것이 내가 평범하게 보던 것을 낯설게 바꾸어 보면서 집에서 발견한 새로운 변화들이다. 이처럼 나는 더 많은 질문을 던지며 평범해 보이는 세상과 집을 바라보려 한다. 오른쪽만 풀리는 나의 신발끈을 대하듯 불편함과 간지러움을 풀 수 있는 나만의 열쇠를 발견해 보려 한다.


건축은 우리 모두를 감탄하게 한다. 건축에 과학과 기술이 더해지면 건축은 더 특별해지기도 하고 건축에 유명한 건축가의 손을 거치면 다른 행성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조형이 탄생하기도 한다. 발견을 나를 중심에 두고 시작하는 것이다. 집에 대해서도 우리의 상상력을 중심까지 깊이 펼쳐보면 어떨까? 건축은 스스로를 다듬는 것으로 공간의 크기와 밝기를 키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우리의 마음을 머물게 하면서 집은 별이 되어 빛난다. 나의 발견으로 반짝이고 빛나는 집들이 우리 주변에 많아지면 좋겠다.



# 집은 우리에게 음악과 연극이 펼쳐지는 커다랗고 화려한 무대와도 같다. 이곳에서는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무대는 화려함을 뽐내고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이기도 하다. 공간은 새로운 발견들로 가득하다. 드라마틱한 열대의 밀림을 연상시키는 욕실은 상상을 키워준다. 이른 아침 눈을 떠 제일 먼저 맞이하게 되는 초록의 밀림과 여기서 듣는 물소리는 분명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미국 브라이어클리프 레지던스 by 이안누치 스튜디오 2022 (Briarcliff Residence by Iannuzzi Studio)



# 건축이 공간의 크기와 밝기를 키울 때면 한계에 부딪친다. 자연의 혹독한 날씨는 집에서 취할 수 있는 휴식과 활력에 더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집이 고지대에 위치하면 수려한 경치를 집안에서 온전히 감상하기는 힘들다. 추위라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큰 창으로 된 집을 짓지 못하는 것이다. 창의 개수와 크기를 작게 넣는 것으로 집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에 창틀을 연상시키는 블랙 프레임의 그림들을 창문의 형태로 배치하면서 공간의 막힘을 해결했다. 오히려 반대로 그림들 사이로 난 창문을 통해 주변의 수려한 경치를 함께 볼 수 있게 하면서 이곳을 바깥으로 열려 있는 작은 미술관으로 바꾸어 놓았다. @미국 블랙 피크 하우스 by 더 렌치 마인 2022 (Noir Peaks by The Ranch 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