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이 오래된 것을 만나면 설렘이 된다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by dkb 하우스

전국민이 1살이 어려진다는 타이틀로 얼마전 만나이 통일법이 시행되었다. 이것으로 그동안 사용하던 연나이 대신 자신의 생일을 기준으로 샘을 하게 되었다. 이젠 모두가 태어나는 날을 0으로 세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이것에 억울한 게 많다. 나이뿐만 아니라 음력으로 생일을 계산하면서 나의 고충은 더했다. 음력 12월을 생일로 쇠다 보니 불편한 것도 많았고 그때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나는 학교부터 친구들까지 모두 이것을 기준으로 사귀고 생활해 왔다. 그러나 실제와 다른 생년월일을 가지게 되면서 나의 주민등록 나이는 한살이 적어졌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내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작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겨울방학 때 생일이 있다 보니 아쉽게도 친구들을 불러 생일 파티를 해본 적도 없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법이 바뀌면서 나는 다시 한살이 더 적어졌다. 신기하게도 나는 태어나고 나서 나이가 자꾸 줄어 든다.


창의력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 후천적인 것으로 학습과 습관으로 바뀔 수 있다 한다.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내 나이도 태어나고 바뀌었으니 후천적인 것이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이름 역시도 후천적이다. 그런데 나는 이 후천적인 이름에 집착하는 것 같다. 일을 하다가도 괜찮은 이름을 발견하면 이것의 의미를 찾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다시 바꾸기도 하니 말이다. 누군가로부터 자신을 소개하는 명함을 받거나 무엇인가가 새로 출시되면 나는 이것들의 이름과 함께 의미를 알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평가에 들어간다. 그러다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이를 참지 못하고 종이에다 적으며 새로운 이름을 구상하기도 하고 펜을 움직여 로고를 새로 그려 보기도 한다. 이름에 창의력을 더해 보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지만 이것을 꿈으로 이루지는 못했다. 먼저 수학을 잘 못했고 또 다른 이유는 공부보다 그림 그리는 걸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건축은 대학을 붙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지만 미술은 이것과 달랐다. 미술은 바로 시작할 수가 있었다. 먼저 그림을 그려서 실력을 쌓아야 미대에 진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미술에 푹 빠져 있었다. 내가 그림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곳은 입시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이었다. 그런데 그림만큼이나 나를 궁금하게 만든 것은 내가 다니던 미술 학원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계단 앞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학원 간판을 보며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 상상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러다 나중에 이것에 아무런 뜻도 의미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충격과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 만약 미술 학원이 이름과 함께 이것에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면 내가 더 많이 설레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회상해 본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의미를 가지고 존재한다. 그중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우리도 각자의 의미를 소중한 꿈으로 키워 나가면 좋을 것 같다. 이 소중한 꿈이 크면 좋겠다. 세상에서 제일 큰 꿈으로 키워 나가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이 닮고 싶은 대상을 찾아 그것과 꼭 닮은 큰 꿈으로 키워 나가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서 세상이 이런 의미 있는 큰 꿈들로 가득차면 좋겠다. 나는 1971년생이라는 나의 사연 많은 나이에 큰 꿈과 어울리는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려 한다. 그렇게 나는 1971년생인 스타벅스(Starbucks)를 친구로 소개시켜 주었다. 꿈과 함께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다.


스타벅스(Starbucks)는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 전문점이 되었지만 스타벅스의 역사는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커피의 하위문화에 매료된 커피 매니아 3명이 시애틀에 1호점을 오픈한 것이 스타벅스의 시작이다. 이들이 유럽식 로스팅을 선택하면서 스타벅스는 곧바로 하나의 문화와 상징이 되지만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다 슐츠가 이곳의 커피향에 반해 사들이면서 오늘의 스타벅스로 변화하게 된다. 고급의 이태리 에스프레소에서 출발한 가볍고 세련된 문화로 스타벅스가 변모하면서 대중이 쉽게 다가가고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가볍고 세련된 문화가 있는 ‘제3의 공간’이 스타벅스가 가진 의미이고 특징이라 하겠다.


‘제3의 공간’을 가져다 큰 꿈으로 키우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이것을 집에다 가져다 놓으면 나의 집은 가벼움과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진다. 1971년생인 나의 기억으로 집에서 제3의 공간은 평상이었다. 나에게 평상은 마당에 내어 손님을 맞이하고 그날의 필요한 것들을 올려 놓는 공간이고 무대였다. 방안에 있으면 어둡고 지루했지만 마당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는 평상은 내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감나무 밑에 놓으면 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어 누워서 숙제를 하기에 좋았다. 우물 옆에 가져다 놓으면 물놀이를 하다 팬티바람으로 올라가 간식을 먹으며 쉬기에 좋았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면 마당 가운데 놓고서 가족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기에도 좋았다. 멀리 틀어 놓은 TV를 평상에서 보는 것 역시 색다른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한쪽발을 평상 바깥으로 쭉 내밀고 앉는 것도 좋았고 평상 가장자리에 앉아 닿지 않는 발을 물장구치듯 허공에다 흔들며 노는 것도 좋았다. 그러다 밤이 되면 마당 한가운데 여럿이 누워 별들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을 실컷 바라보다 잠드는 것도 좋았다. 그 시절 내가 평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 야생에서는 동물들이 늙어서 죽는 일이 거의 없다. 포식자가 주변에 존재하고 그전에 굶거나 병들어 죽기 때문이다. 많은 동물들이 영역을 만들고 방어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이유다. 영역이 자유이고 생명인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워 왔다. 우리는 나무가 만드는 그늘에서 시작해 집을 담으로 감싸는 것까지 공간은 변화해 왔다. 그중 집의 입구인 포치(Porch)는 안과 밖의 경계와 구분이 없을 정도로 역할이 다양하다. 이곳은 궂은 날씨를 피할 수 있게 하고 가족의 활동 공간이며 동시에 이웃과 소통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때는 많은 것들이 집 밖에 있었다. 가구며 살림살이가 마루에 나와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구를 이렇게 바깥에서 보면 오랜 친구를 만나듯 반갑고 그립다. 지금 우리는 많은 것들을 집안에 가두고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베트남 DHY 하우스 by AHL 아키텍쳐 2022 (DHY House by AHL architects)



# 오래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슬픈 일이다. 오랜 기간동안 한자리를 지키던 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것에 관한 기억과 함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을 쓸쓸히 남겨 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것 또한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옛것이 같이 공존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도도하게 세운 기둥이며 곡선으로 만든 계단,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벽면의 장식은 요즘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모든 것을 새것으로 바꾸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것을 계속해서 느끼고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과거의 것과 새로운 것이 같이 공존하면서 역사가 두껍게 자리 잡으면 좋겠다. 새것으로 바꾸면 다시 0으로 세팅하고 시작하는 것이 되지만 새것에 오래된 것을 남기면 오래된 감동과 설렘은 계속 이어진다. @벨기에 공유하우스 by 아틀리에 톰 바니 2021 (Co-Housing in a Townhouse by Atelier Tom Vanhee)


> 참고자료: 하위문화(네이버 지식백과) _ 하위문화 또는 서브컬처(Subculture)는 한 사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전체 문화(Total culture)라 할 때, 그 문화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독자적 특질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집단의 문화이다. 하위문화는 전체적 문화로부터 상대적으로 구별되는 독자성을 가지는 문화로 지배적인 전체문화 속에서는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다양한 하위문화는 문화의 획일화를 방지하고 문화에 동태성과 활력을 불어넣는 작용을 한다.

스타벅스 (컬트가 되라 중, 더글라스 홀트 / 지식노마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