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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Mar 14. 2024

당연한 것이기에 더 어렵다

52세에 시작하는 자기 계획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즘 나의 입맛이 변했다. 내가 지금까지 좋아해 본적 없던 콩나물이 갑자기 맛있어졌다. 그것도 고춧가루로 빨갛게 무친 콩나물을 따뜻한 밥 위에 올려 먹을 때는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한다. 그동안 무표정하게 대하다가 이제야 제대로 반찬 취급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일이 고맙게 느껴진다.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식탁을 지켜주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평생 이 맛을 모르고 살 뻔했으니 말이다. 무엇이 나의 입맛을 바꾸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기분에만 맞춰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차리는 상 역시 기분대로 놓은 것이 아닌 균형을 지키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 몇 가지는 그대로 두면서 이것의 변화를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때 그때 바뀌는 마음보다 긴 시간을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돌아보니 나는 취미에 대해서도 일관되거나 자유롭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로 시작한 사진이지만 욕심을 부리면서 지금은 라이카를 몇 개 가지고 있을 만큼 여러 번 기변을 했다. 최근 시작한 일 때문에 카메라가 필요해 다시 보니 필요없이 너무 먼 길을 온 것 같이 느껴졌다. 그때는 중요했던 기종도 색감도 그리고 기능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별로 중요하지 않게 다가왔다. 이렇게 여러 대가 되어버린 카메라와 장비들을 꺼내 사진을 찍어 중고나라에 올렸다. 그리고 한 대만 남겨 놓고 사용하기로 했다. 그래도 그것이 무엇이던 하나를 고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라이카가 가진 감성을 포기하고도 오랫동안 사용해 손에 익은 캐논도 있고 디지털의 혁신이라 불리는 소니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처음에 제일 큰 의미를 두기로 했다.


나의 첫번째 카메라는 니콘이었다. 내가 미대에 들어가자 아버지는 아시는 사진관에 부탁해 카메라를 장만해주고 사진 찍는 것도 배울 수 있게 해 주셨다. 나는 이것을 어디든 들고 다녔고 그래서 이것과 엮인 좋은 추억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돈을 모아 디지털 카메라를 장만할 때는 니콘 바디에 탐론 렌즈를 선택했다. 내가 원하는 가격대에 사진도 좋아 잘 썼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니콘에 탐론 조합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최근 가수 이효리가 모교 졸업식 축사에서 후배들에게 '아무도 믿지 마세요'라고 했는데 이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이 말이 내겐 ‘주관을 가지고 사세요’로 들렸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녀의 당부와는 다르게 나의 주관보다 남을 따라하느라 고민을 많이 한듯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좀 더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기분을 살피기로 했다.  


중학교를 다닐 때는 무술을 배우고 싶어 권법책을 사서 가지고 다닌 적이 있다. 가끔 이것을 책상 위해 책을 펼쳐 놓고는 흑백으로 인쇄된 사진의 동작을 따라하곤 했다. 그때는 누구나 그렇듯 이소룡을 동경했고 그의 멋진 포즈와 찡그린 표정을 따라했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구도 무술의 고수는 되지 못했고 우리의 추종과 배움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그때는 이것이 그저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런 줄 알았다. 교재가 부족해서 그리고 혼자서 배우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비디오로 된 교재가 나오고 또 나중에는 이것을 전문으로 배울 수 있는 체육관이 생겨도 우리의 실력에는 차이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것은 그저 유행에서 생겨난 충동으로 잘하고 싶은 바램에 불과했다.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진심 즉 기분이 아닌 마음을 움직일 무언가 강하고 묵직한 한방이 있어야 했는데 우리에게 그게 없었다.


나는 홈페이지를 작게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건축 콘텐츠를 업로드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나는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오픈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닌 홈페이지의 완성이 이 일의 시작에 해당한다. 그때부터는 실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조금씩 실전에 대비하기로 했다. 오늘부터는 업로드에 필요한 콘텐츠를 구하기 위해 업체에 글을 써서 보낼 생각이다. 미리 틈나는 대로 자료를 찾고 모으고 준비하고 있어 이것을 시작하는데 힘들지만은 않을 것 같다.


내가 이것을 준비하는데 그동안의 글쓰기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는 뾰족한 생각도 없이 부족함으로 시작하지만 이리저리 생각을 찾아가다 보면 비어 있던 여백이 채워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인지 글쓰기는 자신이 없지만 못할 것은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난번 글쓰기 주제였던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는 내게 좋은 배움의 시간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건축 전반에 대해 내의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건축의 방향을 찾는 시간이었다. 건축이 기초 위에 층층이 쌓여 올라가듯 우리가 하는 일 역시도 층층이 쌓이고 겹쳐지면서 만들어지고 견고해지는 것 같다.


이제 시선을 멀리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닌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의 마음으로 앞을 보고 달리고 싶다. 그러면서 편안한 자세와 호흡으로 달리기를 즐겨 보고 싶다. 나는 주눅들지 않으며 못할 것 없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내가 먼저 세상을 향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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